칼 슈미트 2
-정치신학; 정치-신학 또는 그것의 계보학
…(도노소 코르테스)는 도크마티호스(δογματιχϖς, 사색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아고위호스(ἀγωυιχϖς, 투사)로서 논하였다.(PT 58)
MC - 『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 Michel Foucault, 이광래 옮김, 민음사, 1987
PT - Politische Theologie, 『정치신학』, 김효전 옮김, 법문사, 1988
1장 주권의 정의
주권과 비상사태 / 주권과 비상사태의 개념적 결합을 위한 예시로서 보댕과 자연법적 국가학에서의 주권개념 / 자유주의적 법치국가 이론에 있어서 비상사태의 무시 / 원칙(규범)내지 예외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관심이 가지는 일반적인 의미
2장 법형식과 결정의 문제로서의 주권의 문제
국가학에 관한 새로운 문헌들: 켈젠, 크랍베, 볼첸도르프 / 결정에 입각한(기술적 내지 미학적 형식에 대한) 법형식의 특성 / 결정의 내용과 결정의 주체, 그리고 결정 그 자체의 독자적인 의미 / 결정주의적 사고의 예시로서 홉스
3장 정치신학
국가학에 있어서 신학적 관념 / 법적 개념의 사회학, 특히 주권 개념의 사회학 / 한 시대의 사회 구조와 형이상학적인 세계상과의 일치, 특히 군주제와 유신론적 세계상 / 18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초월적 관념으로부터 내면에로의 이행(민주주의, 유기체 국가학, 법과 국가의 동일시)
4장 반혁명의 국가철학(드 메스트르, 보날, 도노소 코르테스)
반혁명의 국가철학에 있어서 결정주의/ 성악설과 성선설의 대립된 명제의 기초에 있는 권위와 무정부주의 이론 / 자유주의적 부르조아지의 지위와 도노소 코르테스에 의한 그 정의 / 정당성으로부터 독재에의 이념사적 발전
슈미트 작업의 가치는 이런 함축적인 발언에서 멈추지 않고 나름의 방법으로 다루는 대상의 다이어그램을 그려나간다는데 있다.
다이어그램 #1. 그 배경과 작도방법 자체
당시 슈미트가 대결하고자 한 상대는 바로 켈젠을 비롯한 법실증주의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결정하는 인격 즉 주권자에 반대하는 이들이다. 슈미트는 입론을 위해 그들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법학적 경향을 설정하는 것에서부터 그의 작도를 시작하는 것 같다. “결정주의적 유형의 고전적 대표자는 홉스이다.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을 만든다(『Leviathan』26장이라는데, 찾지는 못했다).’ …권위 대 진리라는 대립은 다수가 아니라 권위라는 … 대립보다도 시원적이며 명확하다. 구체적인 국가주권 대신에 추상적으로 통용되는 질서를 확립하려는 모든 시도를 배격하는 결정적인 논점을 제출했다. … 하나의 권력이 다른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면 그것은 단지 한 쪽의 권력보유자가 다른 권력보유자에게 복종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 ‘…복종·명령·권리와 권력은 인격의 속성이지 권력의 속성은 아니기 때문이다(『Leviathan』42장, 나중에 찾겠다-_-;;).’(PT 39~40)” 슈미트는 결정과 결정권을 보유하는 구체적인 인격 그리고 그에 의해 행사되는 주권과 법이 실재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을 통해 이른바 정치신학이라는 전장으로 나아간다. 법실증주의자들이 근거하고 있는 기술적 명확성은 사물적이고 비인격적인 합목적성을 가질 뿐이고 거기에 결정을 모르는 미학적 형식 또한 주권과 법의 형식 즉 정치의 형식이지는 않다.
이어서 슈미트는 세계에 대한 독특한 설명방법 세 가지를 먼저 묘사해낸다. 물질적 과정의 유심론적인 설명 방법, 정신적 과정의 유물론적인 설명 방법, 그리고 사회-심리학적 방법. 앞에 소개한 두 가지는 쌍을 이루고 있다. 두 가지 방법은 인과적 관련을 확인하려는 방법이 서로 대칭적인 꼴을 띄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립을 상정하고 어느 한 쪽을 다른 한 쪽으로 환원시켜서 무화시키는 방법. 이는 결국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를 예정하고 있는 방법이므로 슈미트가 입론을 위해 필요로 하는 방법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슈미트는 투쟁의 과정을 묘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이고 초월적이며 예정된 정당성 확보를 선언하려는 인물은 아닌 것이다. 나머지 방법에 대해서는 슈미트가 그 누구보다도 잘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 …수법으로 볼 때, 그것은 가장 적절히 문학의 영역에 할당되는 일종의 사회학, 즉 방법상 … 문학적으로 재기넘치는 비판과 다를 바가 없는 일종의 사회-심리학적 초상화이다(PT 48).”
그는 이러한 방법과는 다른 이른바 ‘개념의 사회학’이라는 방법을 제기한다. “철저한 개념성이라는 이념적인 것이 사회적 현실의 반영인가 아니면 사회적 현실이 일정한 사고 양식, 따라서 행동양식으로서 채택되는 것인가 하는 것은 이 때 문제가 되지 아니한다. 오히려 정신적이면서도 실질적인 두 개의 동일물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는 이 방법을 17세기에 적용할 경우 그 목표는 “[a)] 군주제의 역사적·정치적 존립이 서유럽 인간의 당시의 총체적인 의식상황에 대응하고 있던 것, [b)]그리고 역사적·정치적 현실의 법학적 형태화가 형이상학적 개념과 합치되는 구조를 가지는 하나의 개념을 발견한 것을 보이는 것”이 될 것이라고 밝힌다. 동일성을 띈 거대한 바탕면의 존재는 푸코의 에피스테메 개념과도 닮아있으나 여기서 슈미트는 그가 다룰 범주를 정확히 이렇게 규정하는 것을 통하여 그의 작업이 주권 구성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음을 이렇게 이야기한다1). “특정한 시대가 구축하는 형이상학적 세계상은 그 정치적 조직 형식으로서 간단하게 이해되는 것과 그 구조를 같이 한다(이상 PT 49).” 평면 위에 놓인 것 가운데 형이상학과 정치적 조직만을 보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그는 그의 입론이 상대를 진정한 것에서 갈려져 나간 파생적인 것으로 다루는 이른바 변증법적인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 쪽의 일방적 승리를 예정하고 있는 변증법적 논리에는 이러한 바탕면보다는 나선형의 상승하는 면이 존재할 뿐이다. 어쨌든 현실정치와 철학 또는 형이상학은 동일한 바탕면 위에 동시에 존재한다. 그의 다이어그램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그의 결론을 엿보게 될 경우(물론 내가 보기에 마치 선언처럼 그의 결론들은 이 논문의 앞쪽에 배치되어있다)그의 결론들은 분명 거대한 바탕면 자체에 대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런 명제가 그런 결론 가운데 하나다. “주권자란 비상사태를 결정하는 자이다(PT 17).” 누구도 이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자들마저도 이러한 속성을 띄고 있는 주권적 권능을 파괴하는 것을 주장할 뿐이다.
#2.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이행
홉스는 정치철학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연과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매우 첨예한 수학적 논쟁에도 참여했던 사람이었다(여기서 분노에 찬 홉스는 그답지 않게 오류를 연발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법학이나 국가학에 침투하게 되면 그것들은 인격에 의한 결정이라는 핵심적인 요소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데, 홉스는 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슈미트에 따르면 이는 17세기의 정치와 형이상학 모두가 기초하던 동일성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의 완전한 동일성이 형이상학적·정치적 및 사회학적인 관념들을 관철하고 있으며 주권자는 인격적 단일체이며 궁극적인 발동자로서 요청된다….” 따라서 “최선의 헌법은 단 한 사람의 현명한 입법자가 혼자 생각해낸 작품이다(이상 PT 50).” 리바이어던의 인격성은 홉스가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했던 것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슈미트는 곧바로 18세기 말로 넘어간다. 17~18세기에 신의 개념이 신의 초월성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데 반해 18세기 말부터 19세기의 동일성의 평면은 신의 내재성에 기초하고 있다. 헤겔이 좋은 예이리라. 객관적인 것이 세계에는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재성을 전제로 하는 국가를 추출해 내는 것. 이런 헤겔처럼 내재론적 범신론으로 향하는 경향이 나타나거나, 형이상학에 무관심한 실증주의자들의 득세. 따라서 “이제 기계는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즉 이 시기는 자연과학적 일관성이 정치적·법학적 관념 속으로 침투한 시기다. 주권자의 초월적 인격은 소멸되었다. 이것이 루소에게서 민중이 제헌 권력의 소유자가 된 이유다. 또한 민중은 초월적 정당성을 대신하는 또 다른 정당성의 소유자가 된다. 슈미트는 시이예스의 이런 말을 인용해 놓았다. “국민이 어떻게 의사를 만들더라도 의사를 만들면 충분하다. 그 형식은 모두 선이며 그 의사는 항상 최고의 법이다.” 인민 또는 국민이 보유하는 정당성은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이어 슈미트의 설명은 결정과 국가적 통일의 양태의 변화로 향한다. “민중으로 표시되는 통일체는 결정주의적인 성격을 가지지 못(이상 PT 51)”한다. 아니 결정이 사실상 필요없다. 인민의 ‘의사는 항상 최고의 법’이므로. 따라서 국가구성의 형태는 정당한 초월적 군주의 명령에 의해 결단되었던 형태에서 국민의 구성과 같은 유기적인 통일체의 구성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더 자세하게 그가 공격하는 각각의 논의들에서 드러나는 19세기의 내재성 관념은 다음과 같은 형태들을 띄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동치된 양자는 서로에게 완전히 내재해 있다. 1) 민주주의의 명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 2) 유기체 국가이론: 국가와 주권의 동일성 3) 크랍베의 법치국가론: 주권과 법질서의 동일성 4) 켈젠: 국가와 법질서의 동일성. 이와 같은 내재성의 관념들은 새로운 필연적인 정당성 개념을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1848년의 혁명 이후 모든 국법학은 모든 권력을 인민의 입헌 권력에게 돌리게 되었고, 도노소 코르테스마저도 정당성의 새로운 근원을 의미하는 이 내재성에 굴복할 수밖에는 없었다. “국왕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 전통적 의미에서의 정당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코르테스에게 남은 길은 단 하나, 즉 독재뿐이다(PT 53).”
동일성의 평면과 근본적 대립
물론 슈미트가 거대한 동일성을 다루었다고 해서 그가 푸코적 의미에서 에피스테메 위에 존재하는 배치들의 다이어그램을 그렸다고 하기는 힘들다. 제일 처음 짚이는 차이점은 동일성의 평면 위에 있는 어떤 것을 다룰 것인지를 지적하는 부분일 것이다. 슈미트는 그가 분석하고자 하는 동일성의 평면 위에 존재하는 것들은 정치와 형이상학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푸코의 경우 그가 다루는 영역은 이른바 인문과학의 전 영역이다. 르네상스시기의 모든 학은 물론 근본적으로 신학이다. 고전주의시기의 경우 그가 정리한 영역은 일반 문법, 박물학, 부의 분석이며 이것은 근대에 들어 각각 언어학, 생물학, 정치경제학으로 이행했다. 즉 푸코의 작업대상은 인문과학 전체다. 슈미트는 정치적 영역의 이행에 주목하고 푸코는 훨씬 더 폭넓게 인문과학 전체의 이행에 주목한다.
또 슈미트는 거대한 동일성이 특수한 각 시기별로 형이상학과 정치에 동시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이행 과정이 통과해 온 근원적 대립을 주목한다. 근본적으로 슈미트가 그린 이행의 원인은 자연과학적 사고의 관입이다. “자연과학적인 사고의 논리일관성은 정치적 관념들 속에도 침투하고 계몽기에 더욱 지배적이었던 본질적으로 법학적·윤리적 사고를 배척하였다(PT 51).” 슈미트는 초월적 결정권을 윤리적이고 법학적인 사고의 본질적 내용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주권자란 비상사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그리고 “법이념은 자신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형태와 형식을 필요로 하(PT 35)”며, 그 특수한 형태와 형식은 바로 결정이다. “구체적 사실은 구체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PT 37).” 그런데 이러한 주권의 형식은 변화하질 않았다. 단지 정치적 담론의 영역에 자연과학적 사고가 관입되어 주권적 형식에 대해 다른 판단을 하고 있는 존재들이 생겨났을 뿐이다. 어쨌든 이러한 관입 이후 주권을 둘러싼 전쟁의 핵심은 이것을 옹호하는가 아니면 공격하는가가 되었다. 물론 프랑스 대혁명 이후 1848년까지 있었던 다중의 근본적인 변형이 정치와 형이상학이 기초하는 동일성을 변화시킨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언제나 주권적 결정자는 실존한다. 군주에서 인민으로 이행했을 뿐이다. 슈미트는 주권을 둘러싼 근본적 대립이 1848년 다중의 변형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이러한 작업을 실행한 것 같다. 그러나 『말과 사물』에서 푸코는 인간을 둘러싼 영역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근원적 대립 및 그것을 야기한 관입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려고 하는 것 같다. 즉 인간은 ‘지식의 근본적 배치가 변화된 결과였다(It was the effect of a change in fundamental arrangement of knowledge. MC 440).’ 어쨌든 양측이 다루는 영역은 현격하게 차이가 나며 그에 따라 동일성의 평면 위의 존재들을 밝혀내는 방법상의 유사성은 두 작업의 유사성 그리고 두 작업에서 사용된 이른바 ‘동일성’의 연관성을 증명해주는 근거가 될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동일성과 근본적 대립이 존재하고 근본적 대립의 양상이 동일성의 이행과정에 영향을 받아 변하는 모델은 분명 『말과 사물』의 푸코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푸코에게서도 타자와 동일자 사이의 근본적인 대립은 분명히 존재한다. ‘광기의 역사가 타자의 역사 - 문화에 대해서, 타자는 내부적인 동시에 이질적이며, 따라서 배제되어야 하고(내부적 위험을 없애기 위해서) 곧 폐쇄되어야 한다(자신의 타자성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 하고 한다면, 사물의 질서에 대한 역사는 동일자의 역사 - 문화에 대해서, 동일자는 분산적이며 동시에 상호 연관적이고 따라서 표지에 의해서 구별되어야 하고 동일성별로 수집되어야한다 - 가 되어야 할 것이다(MC 22).’ 이처럼 『말과 사물』과 쌍을 이루는 것으로 되어 있는『광기의 역사』를 더해서 생각해 볼 경우에 타자와 동일자 사이의 대립은 명쾌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타자와 동일자를 가르는 권능의 측면에서 푸코와 슈미트는 만날지도 모른다. 즉 저러한 집행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주권적 층위는 명백히 실존하는 것이다2). 그리고 우리는 앞 문단의 논의에서 푸코에게 존재하는 근본적 대립으로 나아가질 못했기 때문에 에피스테메의 이행에 따라 변동하는 근본적 대립의 실제 양태가 푸코에게도 발견될 수 있으리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근본적 대립이 무엇인지에 대한 두 명의 답은 매우 다르며 지성사를 그리는데 있어서 근본적 대립의 위치 또한 매우 다르다. 슈미트의 경우 근본적 대립의 지점인 주권적 권능의 올바른 위치 문제는 무엇보다도 주권적 권능이 어떤 형태에서 어떤 형태로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그의 서술을 끌고 가게 된다. 푸코의 경우 근본적 대립은 결국 주권적 권능의 작동에 의해 결정되는 타자와 동일자의 문제이다. 따라서 그가 그려내는 것은 주권적 권능의 이행 형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타자가 되거나 동일자가 되는가라는 좀 더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은 모두 근본적 대립의 이행 과정을 다루기 위해 어느 정도 지속성을 띈 동일성의 평면들을 추출해내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슈미트와 푸코가 각각 제시한 지성사를 다루는 모델은 모두 매우 파격적이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저 근본적인 대립이 나타난 것인가? 그것을 만들어낸 힘들과 그것들의 이행 과정을 추적하는 것을 니체 이래로 우리는 계보학이라 부른다.
-한국어판 26쪽에 있는 '토론‘이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담론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게 쓰인 것 같다. “국법학상 이론·개념이 정치적 사건·변화의 인상을 받고 변용될 경우 토론도 우선 현재의 실천적 관념에서 어떤 당면 목표에 따라 전통 관념을 수정하게 된다.” 토론이라기보다는 이는 어떤 언설로 이뤄진 정치적 장을 의미하는 담론이라는 개념을 쓰는게 좋을 것이다. 말 그대로 쌍팔년도 번역이라 어쩔 수 없는 건가. -_-;
토론의 반대는 독재이다… 코르테스는 자유주의자를 경멸하지만 무신론·무정부적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불구대천의 원수로서 경의를 표하며 거기에 악마적인 위대성을 인정한다. 그는 프루동을 악마로 여겼다. 이에 대해 프루동은 일소에 부치고, 종교재판에 빗대어 마치 그가 화형대 위에 있다고 느끼기라도 하듯 도노소에게 “점화!"라고 외쳤다(PT 63).
PT - Politische Theologie, 『정치신학』, 김효전 옮김, 법문사, 1988
D - die Diktatur, 『독재론』, 김효전 옮김, 법원사, 1996
슈미트가 생각하는 정확한 국가학적 분석이 어떤 것인지를 밝히고 난 후 남은 문제는 이제 이 논문에서 슈미트가 실행한 자유주의에 대한 공격과 반동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의 사실상의 전쟁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밝혀보는데 있다. 즉 그의 이른바 ‘개념의 사회학’이 어떤 식으로 그가 공격하거나 다루는 대상의 일종의 ‘에피스테메’ 자체의 일치를 다루는가, 그리고 그 위에서 대결하는 것의 형태가 어떤지를 밝혀냈는가에 대해 분석해 봐야 할 것이다.
반동주의자와 아나키스트
슈미트가 칭송해 마지않는 도노소 코르테스는 ‘도그마티호스(δογματιχως, 사색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아가위호스(άγαυιχως, 투사)로서 논하였다(PT 58).’ 즉 그의 태도는 ‘모든 관헌에게 복종하는 루터파와 다르다(PT 58).’ 그의 손에서 신학은 다시금 정치성을 띄게 되는 것이다. 종교재판관의 정신적 후계자에게 ‘너희들의 에히도로스 모두를 사랑하라(마태 5:44, 누가 6:27)’는 ‘너희들의 폴레미오스 모두와 투쟁하라’로 변형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신비적 결합·유추·신탁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슈미트가 이 논문에서 시도한 ‘개념의 사회학’과 닮아있다고 한다. 즉 그는 상대의 형이상학적 핵심이라는 동일성을 파악하고 거기서 무엇이 파생되는지 살피는 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세 카톨릭 체제를 옹호했다는 것 때문에 반동주의자를 낭만주의자로 부를 수는 없다. 낭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의 원초적 관념이자 형이상학적 핵심인 ‘영원한 대화’는 그들에게 잔혹한 희극성을 띈 환상에 불과하니까. 영원한 대화는 영원히 결정을 회피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국왕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 권한을 의회에 의해 제한했던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7월 왕정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물론 이러한 모순이 모든 존재자의 유기적인 본성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모호한 타협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카톨릭 정치신학자의 생각이리라. 그것은 결정을 유보하는 것을 지지하는 또 다른 형태의 담론. 그는 이러한 타협만을 말하는 자유주의자들을 경멸한다. 코르테스는 자유주의를 이렇게 정리한다고 한다. ‘입법부뿐만 아니라 민중 전체가 토론하며, 인간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클럽으로 변하고, 이리하여 진리는 토론을 표결한 결과 저절로 생겨나온다는 것이 정치생활의 이상(PT 63)’이다. 결정적인 대결과 피비린내나는 대결은 의회의 토론이 되고, 결정은 영원한 토론에 의해 영원히 기다려야 하는 것이 된다. 그의 문제의식인 결정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자들은 정치를 토론과 경쟁으로 환원시키게 된다. ‘토론하는 계급’, 그리고 경쟁하는 계급. 이러한 특성은 자유주의의 결정에 대항하는 형이상학으로 인해 가능한 일이 된다.
그러나 코르테스에게도 그가 경의를 보내는 적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적과 코르테스를 비롯한 반동주의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악마로 취급했다. 슈미트는 그 완전한 적이 완전한 모습을 띄게 된 것은 바쿠닌부터라고 이야기한다. 코르테스와 동시대에 살던 프루동은 아직 가장의 권리나 가족원리를 고수하는 도덕주의적 소시민이라고 한다. 바쿠닌에게서 드디어 신학에 대한 투쟁에 절대적 자연주의의 원리가 도입되는 것이다. 슈미트에 의하면 바쿠닌의 가장 극적인 의미는 바로 생명에 대한 그의 관념에 있다. ‘생명은 자연적인 정당함을 지니며, 자신 속에서 스스로 정당한 형태를 창조한다(PT 64)’. 따라서 아나키스트들에겐 인간에게 악의 인장을 찍어댄 신학자들이야말로 오히려 악마다.
쌍방의 대결은 (2-1에서)앞서 살펴봤던 대로 19세기의 정치적 ‘에피스테메’와 국가의 주권이라는 같은 배경 위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물론 19세기의 정치적 에피스테메만을 어느정도 공유하고는 있는 자유주의라는 관입물과는 경멸과 몰인정의 관계만이 성립된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주권 개념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것인 국가라는 배경까지 더해질 경우 본질적으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군주제 자체와 군주적 정당성을 사라지게 만든 초월적인 정치신학의 내재적인 정치신학으로의 이행 또는 초월자의 신민에서 입헌권능을 내재하게 된 인민으로의 다중의 위치 변경이라는 근대의 정치적 ‘에피스테메’ 속에서 카톨릭 정치신학자는 국가 주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재가 실현되어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맞서 아나키스트들은 정치신학자들의 말을 곧바로 받아친다. 그것도 저들과 같은 말로. “모든 정부는 본질적으로 독재이다3)1).” 양측은 모두 주권 개념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다. 즉 그들은 모두 이 명제를 인정한다. “주권자는 비상사태를 결정하는 자이다(PT 17).”이 명제가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 반동적인 정치신학자들과 아나키스트 사이에는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다중의 상태 위에서 발동가능한 주권적 권능의 극한인 독재인가 주권의 파괴인가가 이 전쟁의 핵심적인 대립 사항이다. 어쨌든 아나키스트들 역시 결국 이 전쟁 속에서 전쟁을 결정하는 반-정치신학적 정치신학자이자 반-독재적 독재자라는 점은 너무나 명백한 것이다.
자유주의적 국가학 공격
1·2장에서 다루고 있는 슈미트 당대의 논적들은 안타깝게도(?) 국가에게서 주권 개념을 배제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이야기하는 자들뿐이었다. 이들과 슈미트는 근원적으로 내재적 권능을 보유하고 있는 다중의 상태에 대해서는 동의할지언정 주권이 국가 내부에서 장악하고 있는 권능에는 동의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투쟁의 종결인가, 아니면 여전히 이어지는 'Bellum Omnium Contra Omnes(Hobbes, Leviathan, 13)'인가? 제헌 권능이 어쨌든 인민에게 내재하게 된 19세기의 정치적 ‘에피스테메’를 제외하면 이들의 공통점은 없다. 이들의 핵심적인 대결 지점은 주권 자체의 유무 또는 국가 내에서의 주권 즉 예외 상태의 원리적 타당성이다.
- 주권의 존재
독재는 비상사태에 맞서 결정과 집행을 행하려는 정치적 행위다. 그리고『독재론』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따르자면 독재는 위임적 독재와 주권적 독재로 나뉠 수 있다. 위임적 독재는 현행 법질서 내부에 존재하는 장관의 독재이며 주권적 독재는 입헌권능을 완전히 보유하고 있는 주권자의 독재다. 여기서 주권자임의 특성은 보댕의 논술과 17세기 자연법을 다룬 학자들에게서 추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보댕에게 주권자란 이전의 법률에 구속되지 않고 입헌권능을 소유하고 있는 자이며, 자연법주의자들에게 국가의 주권이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을 소멸시키고 공공의 질서와 안전을 결정하며 어떤 경우에 그것이 파괴되는지를 정의하는 것이다. 즉 ‘법질서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질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정상적인 상태가 창조되어야 하며, 또한 이 정상적인 상태가 실제로 존재하는 가의 여부를 명확하게 결정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이다.’ 또한 법의 집행에 있어 필연적인 결정하는 자의 존재를 강조하듯 이어서 슈미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법은 상황의 법이다(이상 PT 23).’
예외를 거부하는 합리주의자들에게 결국 예외상태를 선언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는 것인 주권자는 그 존재가 거부되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상태를 구별하는 능력 없는 정상상태는 생각할 수조차 없으리라. 이에 따라 유기체주의는 매우 나이브한 것으로서 기각되게 된다.
- 국가의 주권 즉 예외의 원리적 타당성
크랍베의 법주권론과 같은 논의는 주권의 소재를 인간에게서 합리적 법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에서도 주권개념은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결정을 행하는 예외적인 것이 구체적인 집행자와 질적 차이를 지니고 있는 합리성과 필연성의 법칙 자체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슈미트와 자유주의는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켈젠의 신칸트주의. 그의 방법은 근본적으로 사회학과 법학의 완전한 분리에서 출발한다. 슈미트는 켈젠을 이렇게 재현한다. ‘국가의 법학적 고찰은 순수하게 법학적인 것이어야 하며 규범적으로 타당한 것이어야 한다(PT 28).’ 따라서 국가는 헌법이다. 여기서 예외를 발동하는 주권적 권능의 자리는 없다. 모든 것은 헌법이라는 최고의 형식적 규범에서 출발하고 그것이 지정하는 형식적 질서 속에서 통일된다. 슈미트는 이를 예정조화라고 비꼰다. 그리고 실정적 규정의 명령성을 통해 켈젠의 규범적 법학의 체계를 비웃는다. ‘주권 개념은 단호히 배제되어야 한다(PT 30)’고 말해 법 실현의 명령성과 독자성을 무시하는 켈젠은 슈미트에게 호되게 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 크랍베의 법주권론. 앞서 말했듯 이것은 주권의 소재를 규범으로 돌리는 행위이며 켈젠의 신칸트주의적 법학과 닮아있다. 슈미트의 공격은 명료하다. ‘결정은 모든 법적 지각의 일부를 이룬다.’ 그리고 ‘구체적 사실은 구체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이상 PT 37)'. 결정적으로 ’법이념은 자신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형태와 형식을 필요로 한다(PT 35).‘
결정의 층위가 실존한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내고자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쌍개념인 숙려와 행동, 그리고 베버의 세 가지 형식개념까지 등장한다. 베버의 형식 가운데 첫 번째는 규범적인 규제처럼 법학적 인식의 선험적 조건으로서의 형식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합리적 훈련을 통한 규칙성이고. 여기서 세 번째의 형식 개념이 등장한다. 합목적성에 의해 지배되는 기술적 형식말이다. 어쨌든 19세기 이후 형식은 객관적인 것으로 이행한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그것이 내포한 객관성은 결코 주권적 권능의 소멸을 의미할 수는 없다. 숙려와 행동의 쌍개념을 떠올려보라. 숙려는 법적 규범의 형식에 적합하다. 그러나 행동은 합목적적인 기술적 형식화에 적합하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 주권자다. ‘모든 [사법적] 변형에는 권위의 개념이 존재한다(PT 37).’ 그리고 주권자의 결정에 의해 ‘무엇이 규범이며 무엇이 규범적인 정당성인가 하는 것이 결정된다(PT 38).' 결국 결정이라는 예외적 형식은 객관성이라는 일종의 에피스테메 위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 슈미트의 논점으로 보인다. 객관성이 결정의 차원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저들의 주장은 결국 부당하다. 독재론에서 인용(D 29)되었던 의결과 집행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구별이 다시 인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집행의 본성인 합목적성은 결국 기술적 형식에 따라 이뤄질 때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결정의 층위가 실존한다는 것을 밝히는 부분은 이 논문에서 슈미트가 투사로서 말하는 부분이다. 즉 1·2장과 4장의 기술 방식은 전혀 다르다. 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1·2장의 기술을 4장의 관찰 대상과 같은 것으로 다뤄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지형 속에서 1848년 결정적으로 이뤄진 다중의 변형과 함께 객관성이라는 공통된 전제 즉 일종의 에피스테메를 목도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는 분명 다중의 변형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양측 모두에게 당연한 것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성의 존재다. 이 위에 양측의 논의 모두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슈미트와 자유주의자들은 같은 지평 위에서 전투를 벌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주권적인 것의 존재와 예외의 타당성을 밝히는 작업은 그것이 대응하는 작업과 함께 모두 객관성의 존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만 하는 것이다. 대결의 지점은 그 객관성이 어떠한 구체적인 형태를 띄고 있는가에 있을 뿐이다. 대결 지점은 인격적 국왕과 객관성 사이가 아니라 객관성의 내부에 존재한다. 비인격적이고 규범적인 객관성에 기초한 합목적성인가 집행적이고 기술적인 객관성에 기초한 합목적성인가? 이 전투를 요약하면 이렇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