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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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의 색이 생각나는 책을 겨울 내음이 날 때가 돼서야 완독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안엔 420여 쪽이란 방대한 분량에 맞게 드넓은 시와 철학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21명의 시인과 21명의 철학자를 엮어 설명하는 이 책은 나와 같이 시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정작 시를 잘 모르고, 철학에 대해 궁금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에게 딱이었다. 구어체로 쉽게 쓰여 있어 술술 읽히기도 했다.

 

아렌트, 비트겐슈타인, 사르트르 등 내가 아는 철학자부터 메를로 퐁티, 바디우, 데리다와 같은 (내게) 새로운 철학자까지, 여러 철학자의 사상이 한국 시인들의 시와 함께 어우러지며 인생을 새롭게 보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중 내 마음에 띈 것은 여러 철학자와 시인이 언급하는 타자와 나의 관계, 그 안의 사랑이다. 정현종 시인의 두 줄짜리 시, ‘이란 시를 읽고 메를로 퐁티가 말하는 고독성을 살펴보자. 정현종 시인이 가고 싶다던 사람들 사이의 섬은 우리의 서로 다름으로 인해 나오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메를로 퐁티는 나의 경험은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건 타자를 제공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나의 경험이 그렇지 않을 경우, 나는 고독에 대해서조차 말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다가갈 수 없는 타자가 있다고 선언할 수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라 말한다. 결국 내가 고독한 이유는 내가 혼자여서가 아닌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내가 다가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가 막연히 체감하고 있는 것들을 시인들은 단어와 상징들로 우리에게 되새기고. 철학자들은 보편적 논리로 우리의 사고를 명확히 만들어준다.

 

420여 쪽이란 분량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땐 이걸 언제 다 읽나라며 막연해했다. 그러나 매일 하루에 한두 챕터씩 읽어가며 그 막연함은 내 삶을 돌이켜보는 원동력으로 바뀌게 됐다. 책의 저자가 말하듯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시인과 철학자들을 좋아할 순 없을 테다. 그러나 내가 겪었듯, 어떤 철학자의 글이나 시인의 시는 나의 고민을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읽고 그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이제 철학적 시 읽기가 예전보단 두렵지 않은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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