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의 상상력 - 질병과 장애, 그 경계를 살아가는 청년의 한국 사회 관찰기
안희제 지음 / 동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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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론병’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내가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애정하는 김초엽 작가님의 추천사뿐이었다. 추천사엔 ‘기다려온 사려 깊은 이야기’라 쓰여 있었다. 사려 깊은 소설을 쓰는 김초엽 작가님이 추천하는 사려 깊은 이야기는 얼마나 사려 깊은 것일까, ‘사려‘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하며 표지를 펼쳤다. 

안희제 작가의 이야기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글이었다. 장애인과 통합교육을 하는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이런 저런 장애와 관련한 글을 읽으며 어느 정도 ‘난 다른 사람과 달라’ 란 생각을 갖고 있던 나였다. 그러나 난치의 상상력 속 이야기는 저런 생각을 가졌던 찰나가 부끄러워지게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같은 세상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느낀 세상과 장애인이 느낀 세상은  큰 온도차가 있던 것이다. 나를 헉하게 만들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코로나19 참사의 수많은 기사, 비평, 칼럼에서 활용된 ‘질병’, ‘기저 질환’은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으로만 나타난다. 이어 글의 맥락에서 기저 질환은 꼭 치료해야한다는 얄팍한 이해에 놓인다. 그러나 이런 사고 방식은 질병이 완치 혹은 사망이라는 허구의 이분법에 갇혀있는 것이며 기저 질환의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 

- 텍스트를 통해 음성 지원을 할 때 ‘밥상 위에 찻잔이 있다.’ / ‘짙은 갈색의 나무로 만든 밥상 위에 커피가 담긴 하얗고 동그란 찻잔이 있다.’의 해석은 완전히 다르다. 또한 sns에서 자주 보인 7일 북커버 챌린지(부연 설명 없이 책 표지의 사진만 올리는 것) 역시 시각 장애인을 배제하는 챌린지라 볼 수 있다. 

- 리프트가 달린 버스를 만들기보다 ‘진짜 다리 갚은’ 의족을 만들어 전시하는 것에 기업이 집중하는 이유는 장애인을 ‘치료’해 사회의 정상성에 포섭시킴으로 차별 구조를 은폐하기 위함이다. 

내가 일상적으로 ‘이정도면 괜찮지 않나?’라 생각했던 부분들이 절대 괜찮지 않은 부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론 서평이 아닌 책의 전문을 모두 옮기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에도 나는 비장애인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기에 장애인의 경험을 온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순 없다. 그러나 이는 이해가 필수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저 같은 사회 공동체에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배제되는 구성원을 없애고 모두가 같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중심점을 만들고 싶은 의지,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런 담론을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꺼냈을 때 불편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고 모두 공감하고 여러 대안책을 제시하는 그런 이상적인 사회가 되게끔, 이 사려 깊은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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