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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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성별에 관한 논쟁을 할 때 나를 가장 무력하게 만드는 말이 있다.

 

남자는 어쩔 수 없이 ~ 할 수 밖에 없어’ ‘여자는 그렇게 태어났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든 반박하고 싶어 이리저리 머리 속에서 근거를 찾아봤지만 점점 더 혼란스러워질 뿐이었다. 분명 과학은 가장 납득할 수 있고 타당한 분야라 배웠는데 그 분야에서 권위를 지닌 사람들이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일반적인 특징을 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는 이런 내 혼란을 잠재웠다.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자연의 법칙은 잘못되었다고 말이다.

 

책은 진화심리학계에서 주장하는 논거들을 하나씩 반박해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자연의 법칙이라 믿는 진취적이고 야망적인 남성, 그리고 수동적이고 가정적인 여성이데올로기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고 마리 루티는 주장한다. 여성에게 번식 의무를 세뇌하기 위해 진화심리학계에서 자연의 법칙이라 간주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충격을 받은 진화심리학계의 주장엔 순전히 다윈주의적 관점에서만 보면, 여성들은 크고 강하고 성적으로 공격적인 남성, 즉 유능한 겁탈자와 짝짓기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본인의 아들도 크고 강하고 성적으로 공격적인 남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략) 따라서 (겁탈이 그 여성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무능한 겁탈자 아들을 낳지 않도록 여성의 저항이 자연 선택되었을 것이다라는 주장이 있었다. 즉 강간을 당해서 여성이 저항하는 것은 더 튼튼하고 유능한 아들을 낳기 위한 여성의 자연 선택적인 특징이라는 것인데, 이는 강간이 효과적으로 설계된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화심리학계의 이러한 주장은 오직 번식이라는 요건만이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작용한다고 보는 듯하다.

 

내가 읽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던 부분은 이 부분뿐만이 아니었다. 진화심리학계는 남성이 여성의 순결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자연 선택 중 하나라 주장하기도 하고, 여성과 달리 남성의 바람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의 근거엔 통계 자료 일부분만 활용한다든지,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는다. 인류는 지금도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윤리를 위해 나아가고 있는데 이런 빅토리아 시대에 머물러있는 듯한 주장이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의 자연법칙은 매우 강력해서 여전히 우리가 결혼을 해야할 일로 간주하게 만들고,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괴롭힐 때 남자애니까 그러는 거야. 어쩔 수 없지라 생각하게 만든다.

 

페미니즘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해지며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려는 순간 진화심리학은 그사이에 끼어들며 남자는 정말로이렇고, 여자는 정말로저렇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말한다. 그럴 때 우리는 젠더에 관한 생산적인 논의를 다시 시작하기 어려워진다. 변화하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원래’ ‘어쩔 수 없이’ ‘남자는, 여자는이란 수식어가 아니라 자연 법칙은 누가 정하는가’ ‘문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고민이다. 근래 나온 여성학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라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의견에 크게 공감하며 이 책을 같은 주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많은 엄마들이 이렇게 말해. ‘남자아이가 총을 갖고 노는 것을 막기는 불가능해라고.‘ 하지만 가능해. 총을 뺏고 총을 가지고 놀면 안 된다고 말하기만 하면 돼. 정말 간단하지."
많은 엄마들이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은 남자 아이가 총을 갖고 놀지 못하게 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 P150

이러한 신화들의 힘이 약해지려는 징후를 보이는 순간 (중략) 과학이 끼어들어 남자들은 ‘정말로‘ 이렇고 여자들은 ‘정말로‘ 저렇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말한다. 그럴 때 우리를 사회적,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제약해왔던 젠더와 성에 관한 규범들을 완하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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