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불온한(?)이 책은,저자 서현이 본업인 건축을 통해 조명한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건축이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우리가 가진 건축들은 우리 시민들의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지식에 대한 질문이 없는 국립 도서관,
예술의 엄숙주의를 벗어 던지지 못한 세종 문화 회관,
민의를 막아서는 국회 의사당 건물,
병영과 연병장의 구조로 이루어진 학교,
돈의 사투가 벌어지는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삶의 방식에 대한 사유나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을 발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핀란드의 국립 대학인 헬싱키 미술 대학이 부수지 않고 고쳐 쓰고 있는 도자기 공장 건물이나 ,
판자촌을 밀어내는 대신 마을 공동체 개선 사업을 진행한 인도네시아 캄풍의 모습은 도시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건축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시민들이 살기에 쾌적하고 편안한 도시가 관광객들에게도 환영받는다.
"도시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의 공간이 아니라 차분한 삶의 터전"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마구 잡이 개발과 토건 사업이 끊이지 않는 우리 도시들에게 보내는 한 건축가의 절박한 호소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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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소더비 경매에서 고흐의 작품이 717억원에 팔렸다는 소식이 들린다.
고흐는 상상조차 못했을 가격의 그림은 '알리스캉의 가로수길'로,아시아의 새 주인에게 낙찰되었다고 한다.

그림 속의 알리스캉은 고흐가 정착한 아를에 있던 고대 로마의 유적이다.
이 유적엔 포플러가 길게 늘어선 길이 있었는데,
고흐는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날의 이 길을 풍경화로 담아내었던 것이다.

고갱 역시 이 알리스캉의 풍경을 그렸다.
인상주의를 극복하려 했던 고갱의 추상적 시도가 엿보인다는 '알리스캉의 풍경'은 ,자연에 대한 묘사를 넘어 화가의 "마음의 풍경"을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1888년9월,고흐는 아를의 '노란 집'에 정착한다.
그는 이 곳에서 마음 맞는 동료들을 모아 함께 그림을 그리는 화가 공동체를 꾸리고 싶어했다.

고흐는 브루타뉴와 퐁타방에서 작업하던 고갱과 에밀 베르나를 초대했고,고갱이 이에 응함으로써 자신의 유토피아를 출발시키는 듯 했다.

결과는 알려진대로다.
겨우 9주를 아를에 머문 고갱과의 작업은 불화 속에 끝났고 절망 속에서 고흐는 자신의 귓불을 자른다.

저자 이택광은 이 상처의 시간에 꽃핀 두 천재의 만남과 불멸의 작품들을 하나씩 조명한다.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시절, 고흐와 고갱이 희망과 좌절을 거듭하며 일궈낸 눈부신 미학의 세계가 이 책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저자의 말대로 그것은 "반 고흐의 신화에 가려진 고갱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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