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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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이 아시아에서 즐기거나 큰돈을 갖고 있거나 평온하게 살아가면 수상쩍은 일을 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해. 그래서 나는 사야카에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르쳐준 거야. 우리는 성실하게 일하기 위해 홍콩에 온 게 아니야 새로운 인생을 찾아서 홍콩에 왔어.”

카라마,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254면

이 책 덕분에 30년을 미루고 미룬 영화 <중경삼림>을 봤다. 중경삼림은 청킹맨션(중경빌딩)과 그 주변의 빌딜 숲이라는 의미. 책을 받고 청킹맨션에 대해 알아보니, 홍콩의 근현대사가 그야말로 압축된 장소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쉴 새 없이 오가는 혼종의 장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어떤 얼굴들을 찾고 있다. 카라마는 2000년대에 초엽에 홍콩에 왔으니,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 그는 아직 탄자니아에 있었다. ‘새로운 인생을 찾아서’ 그가 홍콩에 도착한 것은 조금 후이다. 그가 곧 머물게 될 장소를 내가 2025년에 먼저, 아니 나중에, 보고 있다.

영화 속 중경삼림은 고이기를 거부하며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공간이다. 아래의 사야카의 분석 속 표현처럼 영화 속에는 ‘만만치 않은 타자’들이 수없이 스쳐간다. 빠르게 스쳐가는 조명의 빛살들처럼 명멸하는 ‘미지의 가능성’에서 우발적인 응답들을 발견해 내고, 이 응답들로 점멸하는 네온 불빛 같은 커먼즈를 구축한 청킹맨션의 보스와 그의 동료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더더더 ^^

“신기하게도 이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어떤 ‘융통성’ 같은 것이 관찰된다. 이 ‘융통성’은 이들이 구축한 시스템에 의해, 이들이 타자와 살아가는 가운데 길러온 지혜에 의해 저절로 재귀적으로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256면

“그들의 상호 부조는 동포에 대한 지원을 자연스러운 행위로 간주하는 사회 규범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이 가진 미지의 가능성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포함한 자신의 기회를 발견해내려는 ‘만만치 않은 타자’의 우발적인 응답에 달려 있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25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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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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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 경제의 작동방식인줄로만 알았던 인풋과 아웃풋의 자본주의 운영원리가 인간의 모든 관계에 침투한 지금,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모형, 이 모형을 인류학으로 접근해 풀어낸 책, 어떤 내용일지 몹시 궁금하다.



“이 책은 일단 무지막지하게 재밌다.” 한디디 작가는 추천의 말을 호방하게 시작한다. 증여와 교환, 돌봄을 둘러싼 풍성했던 정동이 이해관계로 급속히 졸아든 이 때에, “예금 0원, 주소 불명, 직업은 사기꾼, 취미는 방랑”인 사람을 위한 커먼즈. 이 커먼즈는 가능할까, 이 커먼즈는 어떤 모습일까.



누구도 믿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열린 커먼즈를 구축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엮어가는 커먼즈적 삶의 특징은 허당미! 아, 궁금증이 배가된다.



나도 이제 곧 청킹맨션의 보스가 알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우쭐)) 춤추는 판다 티셔츠를 입고 유쾌하게 브이를 한 인스타 사진이 표지에서 짤린, 그 보스((신비로워)). 카리스마가 너무 넘쳐 이름도 카라마인 그 보스((이건, 제가 죄송)), 지금 만나러, 아니 읽으러 간다.



PS 청킹맨션도, 보스도, "알고 있다"도, 책 표지도 힙하다.

이 힙한 책이 인류학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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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사겸사' 부담 없이 가볍게 돕고 도움을 받으며 (때로는 속고 속아주며) 누군가에게 부담이나 권위가 집중하지 않는 수평적인 공생의 네트워크를 만든다.



(중략)



자신이 도운 당사자에게 보답을 기대하는 대신,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더 넓은 세계로 이전함으로써 세계 자체를, 커먼즈로 만드는 셈이다.

추천의 말, 한디디, 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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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라는 착각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이정표
안호기 지음 / 들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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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진보를 추구한다는 것은 절대로 화합할 수 없는 모순이다.” 이 책은 그 모순들을 세세히 드러내고, 깊이 들여다본다. 더 나아가 대안으로 탈성장을 제안하고, 그 가능성과 결과들을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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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라는 착각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이정표
안호기 지음 / 들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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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말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전망을 3개월 전 전망치(1.5%)에서 0.7%p 낮춰 발표했다. 언론들은 성장률 쇼크, 최악의 내수 경기, 성장률 반토막 등 자극적인 타이틀로 기사를 쏟아냈다. 이 기사들은 성장 지속은 정상적 각본이고, 현상유지나 저성장은 비정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생각해본다. ‘매년’ ‘모든’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면 그 결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아니 우선, 그것은 가능하긴 한 걸까?

생산의 측면에서 보면 지구라는 자원(?)은 한정된 것이기에, 무한대의 자원 공급처가 될 수 없다. 자원은 고갈되고 있고, 고갈될 것이다. 이 엄연한 현실은 무한 성장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소비의 측면에서 보면 전 세계 인구가 구매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은 한정된다. 풀가동 생산은 잉여 생산물을 남긴다. 재고는 기업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쓰레기로 쌓인다.

이렇게 생산과 소비의 관점에서 살펴봐도 우상향 경제성상률 그래프의 영속은 막연한 희망사항에 가깝다. 여기에 더해 경제 성장과 삶의 질과의 상관관계, 성장과 분배 문제, 성장이 지구에 초래하는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자본주의가 최대의 과제로 떠받들어온 ‘성장’이라는 수사가 의심스러워진다. 성장 일변도로 달려 온 국제 사회에서 기후, 환경, 정치, 인권 부분에서 이상 징후들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당연시해온 성장 담론을 깊이 들여다볼 적기이다.

이 책 <성장이라는 착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그 성장 담론을 본격적으로 해부한다. 책 표지의 제목 글자들은 달콤한 살구 빛 거품 속에 안온하게 들어앉아 있다. 마치 무한 성장이라는 혼미한 도취에 빠진 자본주의 키드들의 허상을 구현한 듯하다.

저자 안호기 선생은 경향 신문에서 경제와 환경 분야 취재로 오랜 경력을 쌓고 편집국장을 지냈다. 저자는 우선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글로벌 경제의 현주소를 다양한 데이터로 보여주며 저성장의 원인을 분석한다. 과연 정체기에 들어선 경제를 성장시킬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성장이 아닌 탈성장을 해법으로 제안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탈성장의 이유는 명료하다.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자원 매장량의 한계와 잉여 생산물의 축적, 환경에 초래한 결과들을 고려하면, 지금까지 이어져온 성장은 지속 불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성장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고 초가속으로 내달리며 회피했던 성장의 그늘들이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본주의의 성장 신화의 배후에는 저렴하게 이용해온 착취의 역사가 있다. 자본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취약한 지역, 취약한 사람들의 자연, 노동, 식량, 에너지를 헐값에 이용해 이윤을 쌓았다. 그리고 성장의 비용, 즉 환경오염, 과잉 노동, 빈곤, 질병은 그 취약한 이들에게 전가했다. 이렇게 성장은 차별과 폭력, 착취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또한 성장은 반드시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성장이 창출한 경제적 부는 기여도에 합당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성장할수록 국가 간, 계급 간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을 자본과 정부는 은폐한다. 부의 양극화는 정치 구조를 왜곡하고, 미세한 차별과 혐오를 공기처럼 분사한다. 세대, 계급, 성별로 얽힌 복잡한 갈등과 신뢰 하락은 공동체 붕괴와 각자도생으로 이어진다. 이런 배경 속에서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잃은 정치는 이권화 되고, 대립은 극단화된다. 우리는 이것을 지난 7개월간 뼈저리게 경험했다. 국제 사회의 사정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오늘의 미국은 어제의 우리였고, 내일의 또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

이쯤에서 묻게 된다. 누구를 위한 성장이고,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성장의 의미를 묻고, 성장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할 때라고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탈성장은 무엇인가? 저자는 다양한 정의와 쟁점으로 탈성장을 소개한다.

특히 인상적인 정의는 탈성장의 어원에 대한 것이다. 탈성장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la decroissance' 또는 이탈리아어 ‘la decrescita'는 재앙처럼 닥친 홍수 후에 강이 정상적인 흐름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거대한 홍수가 자본주의라면, 정상을 되찾는 과정이 탈성장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선대의 지혜 속에 현실의 해법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저자에 따르면 탈성장은 마이너스 성장이나 경기 침체와 다르다. 탈성장은 경제 규모의 축소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자원의 낭비와 환경 파괴를 줄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탈성장은 모든 사람의 더 나은 삶의 보장하기 위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생산과 소비를 줄여 환경과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의 이윤, 과잉 생산, 과잉 소비 대신 사회적, 생태적 복지를 우선시 하는 것이다. 탈성장은 단순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 없는 번영, 성장 없는 행복을 기획하는 일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성장의 한계를 분석하고 탈성장의 필요성과 그 의미를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국내외 언론 보도, 석학들과 연구자들의 책과 논문을 풍요롭게 인용한다. 덕분에 독자는 성장과 탈성장 담론의 방향과 내용을 다각도로 비교하며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의 현 상황, 그리고 그 결과들, 예측되는 미래를 그린 지표와 통계를 다양한 인포그래픽로 보여 준다. 경제전문 대기자의 경제 분석에 붙여진 그래프와 통계표는 경제에 문외한 나와 같은 독자도 현실 사회경제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해준다.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진보를 추구한다는 것은 절대로 화합할 수 없는 모순이다.” 이 책은 그 모순들을 세세히 드러내고, 깊이 들여다본다. 더 나아가 대안으로 탈성장을 제안하고, 그 가능성과 결과들을 예측한다.

개인의 성장조차 경제적 기준으로 단일하게 측정하는 사회에서 탈성장 담론은 낯설다. 하지만 기후 변화, 환경 문제, 노동 문제, 빈곤 문제, 경제적 양극화, 극우의 준동, 차별과 혐오의 발흥 등 산적한 과제에 대해 더 이상 ‘성장 이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이제 우리는 안다. 그 성장 이후라는 약속의 공허함을 우리는 안다.

자자는 자본주의 성장 이데올로기의 역사적 뿌리와 그 전개 과정을 드러내며, 그 해체과정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탈성장주의가 반식민주의와 궤를 같이 해왔음을 보여줌으로써 탈성장주의의 오랜 역사 또한 확인시켜준다. 우리의 관심과 실천이 성장 이데올로기에 과도하게 쏠려 탈성장 담론을 간과되어 왔다.

사회 변혁은 익숙하지 않은 길로 단 한 걸음 나아가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탈성장 담론이 더욱 본격적으로 공유되고 확산되는데 이 책이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이미 시민 사회에서는 생태, 공유, 연대, 관계, 인권, 평등, 지역, 돌봄을 쟁점화하는 탈성장주의의 실천들은 이어지고 있다. 이 시민 사회의 운동들과 더불어 탈성장 담론의 활발한 논의 또한 더욱 확장되리라 믿는다. 탈성장 담론을 처음 접하거나 그 다양한 의제들을 심도 있게 학습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풍부하고 심도 있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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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소포스의 책 읽기 - 철학의 숲에서 만난 사유들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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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사랑하는 필로소포스가 철학의 숲으로 들어가 사유의 나무들 사이로 오래도록 거닐고 머물며 잉태한 사유의 열매들이 페이지마다 붉게 열려있다. 사유의 정원으로 초대된 독자는 손을 뻗어 그 열매를 베어 물고, 사유의 과즙을 음미한다. 이 사유의 과실들은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열매가, 누군가에게는 지혜의 열매가, 누군가에게는 실천의 열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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