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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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 경제의 작동방식인줄로만 알았던 인풋과 아웃풋의 자본주의 운영원리가 인간의 모든 관계에 침투한 지금,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모형, 이 모형을 인류학으로 접근해 풀어낸 책, 어떤 내용일지 몹시 궁금하다.



“이 책은 일단 무지막지하게 재밌다.” 한디디 작가는 추천의 말을 호방하게 시작한다. 증여와 교환, 돌봄을 둘러싼 풍성했던 정동이 이해관계로 급속히 졸아든 이 때에, “예금 0원, 주소 불명, 직업은 사기꾼, 취미는 방랑”인 사람을 위한 커먼즈. 이 커먼즈는 가능할까, 이 커먼즈는 어떤 모습일까.



누구도 믿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열린 커먼즈를 구축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엮어가는 커먼즈적 삶의 특징은 허당미! 아, 궁금증이 배가된다.



나도 이제 곧 청킹맨션의 보스가 알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우쭐)) 춤추는 판다 티셔츠를 입고 유쾌하게 브이를 한 인스타 사진이 표지에서 짤린, 그 보스((신비로워)). 카리스마가 너무 넘쳐 이름도 카라마인 그 보스((이건, 제가 죄송)), 지금 만나러, 아니 읽으러 간다.



PS 청킹맨션도, 보스도, "알고 있다"도, 책 표지도 힙하다.

이 힙한 책이 인류학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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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사겸사' 부담 없이 가볍게 돕고 도움을 받으며 (때로는 속고 속아주며) 누군가에게 부담이나 권위가 집중하지 않는 수평적인 공생의 네트워크를 만든다.



(중략)



자신이 도운 당사자에게 보답을 기대하는 대신,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더 넓은 세계로 이전함으로써 세계 자체를, 커먼즈로 만드는 셈이다.

추천의 말, 한디디, 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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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라는 착각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이정표
안호기 지음 / 들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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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진보를 추구한다는 것은 절대로 화합할 수 없는 모순이다.” 이 책은 그 모순들을 세세히 드러내고, 깊이 들여다본다. 더 나아가 대안으로 탈성장을 제안하고, 그 가능성과 결과들을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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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라는 착각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이정표
안호기 지음 / 들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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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말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전망을 3개월 전 전망치(1.5%)에서 0.7%p 낮춰 발표했다. 언론들은 성장률 쇼크, 최악의 내수 경기, 성장률 반토막 등 자극적인 타이틀로 기사를 쏟아냈다. 이 기사들은 성장 지속은 정상적 각본이고, 현상유지나 저성장은 비정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생각해본다. ‘매년’ ‘모든’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면 그 결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아니 우선, 그것은 가능하긴 한 걸까?

생산의 측면에서 보면 지구라는 자원(?)은 한정된 것이기에, 무한대의 자원 공급처가 될 수 없다. 자원은 고갈되고 있고, 고갈될 것이다. 이 엄연한 현실은 무한 성장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소비의 측면에서 보면 전 세계 인구가 구매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은 한정된다. 풀가동 생산은 잉여 생산물을 남긴다. 재고는 기업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쓰레기로 쌓인다.

이렇게 생산과 소비의 관점에서 살펴봐도 우상향 경제성상률 그래프의 영속은 막연한 희망사항에 가깝다. 여기에 더해 경제 성장과 삶의 질과의 상관관계, 성장과 분배 문제, 성장이 지구에 초래하는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자본주의가 최대의 과제로 떠받들어온 ‘성장’이라는 수사가 의심스러워진다. 성장 일변도로 달려 온 국제 사회에서 기후, 환경, 정치, 인권 부분에서 이상 징후들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당연시해온 성장 담론을 깊이 들여다볼 적기이다.

이 책 <성장이라는 착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그 성장 담론을 본격적으로 해부한다. 책 표지의 제목 글자들은 달콤한 살구 빛 거품 속에 안온하게 들어앉아 있다. 마치 무한 성장이라는 혼미한 도취에 빠진 자본주의 키드들의 허상을 구현한 듯하다.

저자 안호기 선생은 경향 신문에서 경제와 환경 분야 취재로 오랜 경력을 쌓고 편집국장을 지냈다. 저자는 우선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글로벌 경제의 현주소를 다양한 데이터로 보여주며 저성장의 원인을 분석한다. 과연 정체기에 들어선 경제를 성장시킬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성장이 아닌 탈성장을 해법으로 제안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탈성장의 이유는 명료하다.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자원 매장량의 한계와 잉여 생산물의 축적, 환경에 초래한 결과들을 고려하면, 지금까지 이어져온 성장은 지속 불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성장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고 초가속으로 내달리며 회피했던 성장의 그늘들이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본주의의 성장 신화의 배후에는 저렴하게 이용해온 착취의 역사가 있다. 자본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취약한 지역, 취약한 사람들의 자연, 노동, 식량, 에너지를 헐값에 이용해 이윤을 쌓았다. 그리고 성장의 비용, 즉 환경오염, 과잉 노동, 빈곤, 질병은 그 취약한 이들에게 전가했다. 이렇게 성장은 차별과 폭력, 착취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또한 성장은 반드시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성장이 창출한 경제적 부는 기여도에 합당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성장할수록 국가 간, 계급 간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을 자본과 정부는 은폐한다. 부의 양극화는 정치 구조를 왜곡하고, 미세한 차별과 혐오를 공기처럼 분사한다. 세대, 계급, 성별로 얽힌 복잡한 갈등과 신뢰 하락은 공동체 붕괴와 각자도생으로 이어진다. 이런 배경 속에서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잃은 정치는 이권화 되고, 대립은 극단화된다. 우리는 이것을 지난 7개월간 뼈저리게 경험했다. 국제 사회의 사정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오늘의 미국은 어제의 우리였고, 내일의 또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

이쯤에서 묻게 된다. 누구를 위한 성장이고,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성장의 의미를 묻고, 성장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할 때라고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탈성장은 무엇인가? 저자는 다양한 정의와 쟁점으로 탈성장을 소개한다.

특히 인상적인 정의는 탈성장의 어원에 대한 것이다. 탈성장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la decroissance' 또는 이탈리아어 ‘la decrescita'는 재앙처럼 닥친 홍수 후에 강이 정상적인 흐름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거대한 홍수가 자본주의라면, 정상을 되찾는 과정이 탈성장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선대의 지혜 속에 현실의 해법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저자에 따르면 탈성장은 마이너스 성장이나 경기 침체와 다르다. 탈성장은 경제 규모의 축소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자원의 낭비와 환경 파괴를 줄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탈성장은 모든 사람의 더 나은 삶의 보장하기 위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생산과 소비를 줄여 환경과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의 이윤, 과잉 생산, 과잉 소비 대신 사회적, 생태적 복지를 우선시 하는 것이다. 탈성장은 단순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 없는 번영, 성장 없는 행복을 기획하는 일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성장의 한계를 분석하고 탈성장의 필요성과 그 의미를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국내외 언론 보도, 석학들과 연구자들의 책과 논문을 풍요롭게 인용한다. 덕분에 독자는 성장과 탈성장 담론의 방향과 내용을 다각도로 비교하며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의 현 상황, 그리고 그 결과들, 예측되는 미래를 그린 지표와 통계를 다양한 인포그래픽로 보여 준다. 경제전문 대기자의 경제 분석에 붙여진 그래프와 통계표는 경제에 문외한 나와 같은 독자도 현실 사회경제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해준다.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진보를 추구한다는 것은 절대로 화합할 수 없는 모순이다.” 이 책은 그 모순들을 세세히 드러내고, 깊이 들여다본다. 더 나아가 대안으로 탈성장을 제안하고, 그 가능성과 결과들을 예측한다.

개인의 성장조차 경제적 기준으로 단일하게 측정하는 사회에서 탈성장 담론은 낯설다. 하지만 기후 변화, 환경 문제, 노동 문제, 빈곤 문제, 경제적 양극화, 극우의 준동, 차별과 혐오의 발흥 등 산적한 과제에 대해 더 이상 ‘성장 이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이제 우리는 안다. 그 성장 이후라는 약속의 공허함을 우리는 안다.

자자는 자본주의 성장 이데올로기의 역사적 뿌리와 그 전개 과정을 드러내며, 그 해체과정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탈성장주의가 반식민주의와 궤를 같이 해왔음을 보여줌으로써 탈성장주의의 오랜 역사 또한 확인시켜준다. 우리의 관심과 실천이 성장 이데올로기에 과도하게 쏠려 탈성장 담론을 간과되어 왔다.

사회 변혁은 익숙하지 않은 길로 단 한 걸음 나아가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탈성장 담론이 더욱 본격적으로 공유되고 확산되는데 이 책이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이미 시민 사회에서는 생태, 공유, 연대, 관계, 인권, 평등, 지역, 돌봄을 쟁점화하는 탈성장주의의 실천들은 이어지고 있다. 이 시민 사회의 운동들과 더불어 탈성장 담론의 활발한 논의 또한 더욱 확장되리라 믿는다. 탈성장 담론을 처음 접하거나 그 다양한 의제들을 심도 있게 학습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풍부하고 심도 있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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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소포스의 책 읽기 - 철학의 숲에서 만난 사유들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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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사랑하는 필로소포스가 철학의 숲으로 들어가 사유의 나무들 사이로 오래도록 거닐고 머물며 잉태한 사유의 열매들이 페이지마다 붉게 열려있다. 사유의 정원으로 초대된 독자는 손을 뻗어 그 열매를 베어 물고, 사유의 과즙을 음미한다. 이 사유의 과실들은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열매가, 누군가에게는 지혜의 열매가, 누군가에게는 실천의 열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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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소포스의 책 읽기 - 철학의 숲에서 만난 사유들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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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대통령 대선 전후를 이 책과 함께 보냈다. 내란세력은 여전히 준동했고, 몇몇 대선 후보들은 최소한의 품위마저 장착하지 않고 정치와 시민을 모욕했다. 쏟아지는 기사와 논평들을 접하며 분노와 우려를 왕복한다. 회오리치는 감정에 휩쓸려 나 또한 사안들을 성급하게 판단하기 바쁘다. 사유는 없고, 날것의 감정만 출렁인다. 들끓고, 내뱉고. 기사 속 인물들과 나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러다 자기 전에 이 책을 펼치면, 신기하게도 내게 필요한 문장이 있었다. 사적인 울림을 주는 문장부터 정치 이슈로 복잡해진 마음을 정돈시켜주는 문장까지. 내가 잊거나 놓친, 해보지 못한 사유가 책 속에 있었다. 오래되고 내밀한 주된 관심사로 걸어 들어오는 저자들(이런 순간은 정말 감동이다), 궁금했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난감했던 분야의 실마리를 제공해준 책들, 환한 통찰로 이끈 문장들, 막연히 안다고 여겼던 것들이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준 페이지들.

언론인 고명섭 선생은 책속에 76권의 책을 담았다. 그가 읽고, 다시 쓴 책들은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철학, 과학, 미학, 사회학, 역사학, 시학, 신화학 등 전문서이다. 해당분야의 비전공자는 섣불리 손을 뻗어 펼치기 어려운 주제이고 책인데, 너무 흥미로워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쉽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읽는 내내 탄복했다. 읽어들 보시면,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저자는 책이 쓰여 진 시대적 배경, 책이 차지하는 지식사적 위치와 의미, 해당 책이 전하려는 요지와 저자가 그 책을 통해 길어낸 통찰을 유려한 문장으로 전한다.

저자가 선택한 책들은 저자의 사유를 거쳐 저자의 팬 끝을 통해 저자의 문장으로 재탄생한다. 한 권의 책은 필로소포스를 경유해 또 다른 책이 된다. 책 표지가 표현한 그대로 지혜를 사랑하는 필로소포스가 철학의 숲으로 들어가 사유의 나무들 사이로 오래도록 거닐고 머물며 잉태한 사유의 열매들이 페이지마다 붉게 열려있다.

그 사유의 정원으로 초대된 독자는 손을 뻗어 그 열매를 베어 물고, 사유의 과즙을 음미한다. 이 사유의 과실들은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열매가, 누군가에게는 지혜의 열매가, 누군가에게는 실천의 열매가 된다. 우리는 사유와 언어로 살고, 깨닫고, 실천하는 존재들이다. 철학의 숲으로 들어가니 사유의 향연이 열리고 있었다. 눈부시고 첨예하며, 달콤하고 쓰디쓴, 풍요로운 지혜의 향연.

아리스토텔레스를 알았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경탄), 이준석의 TV토론을 보고 상한 마음을 <위대한 수사학의 고전들> 편을 보고 위로받았다. 현재의 이스라엘과 <미쉬나>의 유대인과 레비나스의 타자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다, 너무 아득해져서, 멈췄다. 1장은 예술론과 정치론, 종교론을 중심으로 근현대사유의 기반을 톺아본다. 2장과 3장의 흐름이 머무는 곳들에서 공감의 탄성이 연이어 나왔다. 플로티노스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저자 문장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4장의 타이틀을 보고 영성과 정치라는 낯선 조합이 궁금했는데, 이내 수긍하고, 현실 정치에서 삭제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하게 됐다.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사유한 막스 베버의 정치 윤리관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 사유와 유럽 사유의 차이를 언어로 분석한 줄리앙의 연구도, 영성으로 한국 현대 정치사를 분석한 김상봉 교수의 책도 무척 흥미롭다. 휠더린과 한용운을 다시 읽고 싶어져 마음이 급해진다.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다룬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는 젊은이들의 피와 함께 리영희 선생의 혼을 먹고 자랐다고 말한다. 이 장에서 저자가 일별하는 한국 현대사와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쟁취한 독립이고, 어떻게 이룩한 민주공화국과 헌법이며, 어떻게 지켜낸 민주주의인가. 저자 말대로 선대의 피와 혼이 살린 국가이고 민주주의이다. 저자의 우려처럼 ‘거짓이 활보하고 추한 권력이 위세를 부리는 시대’이다. 하지만 저자의 단언처럼 ‘수난과 저항과 투쟁 속에서 형성해 온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우리 영성의 알맹이다’

저자의 안내대로 사유의 숲을 걷다보면 지혜의 나무들 아래로 뻗은 뿌리들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종교와 과학, 정치학와 역사학, 신화와 미학, 철학과 문학. 이 책의 미덕은 학문들 간 사유의 맥락이 시공간을 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이데거 철학 속 휠더린의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동물학과 중세 연금술과 근대과학의 연결고리, 레비나스의 현상학 속 유대교 법전, 19세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완성시키는 20세기의 르네 지라르. 동서양의 사상이 만나 발효되는 다산의 ‘논어 읽기’. 이런 발견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인간이 지혜를 찾아 심은 사유의 씨앗들이 풍성하게 자라 울창한 사유의 숲이 되었다. 지혜의 나무들은 어느 것 하나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타 학문들과 주고받는 영감과 그 화답들은 서로에게 양분이 되어 사유의 숲을 더욱 울창하게 가꾼다. 이 책이 말하는 철학의 숲은 단지 비유가 아니다.

우리를 분노와 불안으로 내몬 정치가 망각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 각자도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책은 일깨운다. 사유하지 않는 정치가와 시민은 공화국의 가장 위험한 존재이다. 저자에 의하면 한나 아렌트는 평범한 악의 근원을 ‘사유 능력 없음’에서 찾았다. 사유 능력이란 상상력, 즉 나를 뛰어넘어 타자의 처지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김상봉 교수는 영성을 세계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정신의 능력으로 정의한다. 레비나스에게 주체는 존재자 전체를 장악하는 근대적 주체가 아니라 무한을 향해 나아가는 윤리적 주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다양한 학문을 횡단하는 이 책이 보여주듯 우리는 선대부터 이어온 사유의 얼개가 주조한 존재들이다. 사유의 유산과 능력을 폐기해버린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들이 되는 걸까. 우린 어떤 존재들이 되길 원하는가. 안팎으로 어수선한 지금이야말로 차분하게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다행히 이렇게 은혜로운 사유의 숲이 책 한 권에 숨 쉬고 있다. 힘차게 가지를 뻗으며 푸른 잎과 다채로운 꽃들로 수런거리는 지혜의 나무 아래를 걷고 싶다면, 이 책을 펼치시라. 내 시선과 손이 그 나무들에 닿는 순간, 내 정신에도 푸른 잎이 돋아난다. 나도 그 숲의 일원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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