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데이즈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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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게 된 후기에서, <바그너의 경우>에 두 개의 추신과 하나의 후기를 덧붙인 니체에 대해 제프 다이어는 자기 파괴적인 충동, 영원회귀라는 폐쇄적인 순환에서 벗어나려는 충동의 형식적인 표현이라고 원주를 달아놓았다. 묘하게 설득당하며 웃을 수밖에. 그렇지 어떤 강박, 충동으로서의 글쓰기.

 

이어서 제프 다이어는 10년 전 <가디언>지에 본인이 쓴 문장을 인용한다. “글쓰기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게 된 날, 너무도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 든 나머지 그것을 완벽한 행복과 구별할 수 없게 될 날을 늦추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가 니체의 글쓰기 속에 내장된 강박을 알아챈 비밀이 이렇게 고백된다.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을 위해 아껴둔 그의 계획을 읽고 또 웃는다. 그 계획과 관련해 그가 <지속의 순간들>에 기록한 글에 나도 우선 만족한다. “그가 있는 이곳은 그가 언젠가 도착했을 그 어디만큼 좋았다. 일단 그런 결론에 이르고 나면, 필요한 베개는 오직 단단한 땅 그 자체뿐이다.”

 

존 버거가 각본과 주연을 맡은 영화 <나를 집까지 데려자줘>(1993)에는 극중 버거가 누구의 소유도 아닌 땅에 묻히고 싶다고 말하는 놀라운 순간이 있다.” 나도 작가가 인용한 이 문장에 멈칫했다. 체리스가 발견한 죽은 사람이 누운 콜로라도의 사막은 그런 땅이었을까.

 

어제 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도어즈의 <The End>를 들었다. 반복듣기로 들었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직전에 마트 키오스크 계산대 위에서 가져온 맥주를 무르고, 오렌지 주스 1.8L만 계산하고 가져온 나를 칭찬했다. <The End>를 배음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오렌지 주스를 맥주처럼 마셔대는 나를 칭찬, 아니 애도했다. 도어즈의 다른 음악을 듣고 싶었지만, 참았다. “음악의 신 디오니소스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니까. 편의점 주류 냉장고 앞으로 데려갈 갈 확률이 아주 높으니까.

 

황혼이 슬그머니 밤으로 깊어지는어둠의 순간들을 포착해내기란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제프 다이어는 이 책에 그 순간들을 담아낸다. 이 책에 목차가 없는 것이 납득된다. 기우는 석양빛을 어떻게 일별할 수 있을까. 20대 중반 짐 모리슨의 사라짐은 황혼이 단지 시간의 레일에 따라 다가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여하간 흥미로운 주제이고, 흥미로운 독서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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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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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살아봐’ 누군가의 덤덤한 말. 직접 부딪혀 봐야 (아마도 취약할수록) 알아지는 것들이 있다는 의미다. 그렇게 알아지는 것들 중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 자체를 뒤집는 것들이 있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마이너스 일 수 있다는 것, 하나 빼기 하나가 열이 될 수 있다는 것. 세계가 부조리하다는 것. 필연과 우연(어쩌면 지독한 필연)이 복잡하게 얽힌 인생사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불명확하고, 매사에 아귀가 딱딱 맞게 돌아가는 것이 실상 드물다. ‘더 살아봐’의 ‘더’가 시간이나 나이의 축적이 아니라, 경험의 쌓임과 그 사이사이에 얹어진 쓰디쓴, 종래에는 달짝지근해질 지혜의 넓이라는 걸, 알게 되는 때가 온다.

이 책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속 보스 카라마와 그의 탄자니아 동료들은 이 진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사람은 매순간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 세계는 불확실하고, 부조리하다는 것. 고정되지 않은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부조리한 세계를 함께 살아가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은 알고 있다. 신념으로 굳게 간직하고, 실천으로 통제하고 관리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냥’ 아는 것처럼 보인다. ‘허당미’ 농후한, 그들의 장난기 가득한 혹은 무심하기 이를 데 없는 말과 행동에, 매사에 ‘그냥’이라고 말할 것 같은 그들의 힘 빼기에, 나는 그들의 앎과 삶의 비밀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 문화인류학 교수 오가와 사야카는 홍콩의 청킹맨션을 거점으로 살아가는 탄자니아인 들의 삶을 현장 연구하여 그들이 수행하는 공존의 형태를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에 담았다. 저자는 에필로그에 연구 과정을 되돌아보며 “카라마와 그의 동료들에게 매력이 있다는 사실만은 전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고 겸손하게 쓴다.

넘치게 통했다. 게으르고, 놀랄 만큼 적당주의자고,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덜 된 인간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카라마와 늘 사건사고 속에 있는 그의 동료들에 나는 빠져들었다. (아마 이건 내가 그들 못지않게 덜 된 인간이라 더 그들에게 친화력을...) ‘모른 척’의 배려, ‘겸사겸사’의 도움, ‘가볍고 단속적인’ 연결을 지속시키는 공존의 지혜를 그들은 삶으로 일군다.

그리고 이 책으로 통한 것이 또 있으니, 인류학과 ‘오가와 사야카’라는 저자의 발견이다. 나는 왜 인류학의 연구 대상을 원시나 고대 사회로 제한해 생각해왔을까.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인간의 삶 역시 인류학의 연구 대상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현실을 한발 물러나 바라보게 한다. 인류학자의 눈에는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보편타당한 경제 모델이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보자면 자본주의 또한 한시적인 경제 시스템이다.

자본주의 키드로 나고 자란 우리는 자본주의적인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와 교환 방식을 자연화한다. 이전에는 화폐로 거래되지 않았던 것들의 거래 또한 자연화한다. 물과 친절이 거래된다. 그 영역은 확대된다. 몸도, 마음도, 태도도, 그리고 삶도 자본주의 방식으로 교정된다. 이런 변화는 당연한 걸까. 우리는 돈으로 거래 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품목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거래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일어나는 삶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오가와 사야카는 청킹 맨션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한다. 청킹 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은 자본주의와 정보기술 시스템 안팎에서 새로운 공존 시스템을 만들어 간다. 그 커먼즈는 난민, 저소득 국가에서 온 이민자, 불법 체류자, 불법 노동자, 이동 중인 교역인 등 거주 안정성이 미약한 그들의 불안정한 지위와 무관치 않다. 그렇다면 그들의 커먼즈는 그들만의 예외적 상황에서 발현된 특수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삶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소속감이 휘발되어가는 작금의 현실에서 비정주성의 감각과 그 적응 방식의 혼재는 이미 보편적다. 때문에 그들의 커먼즈를 작동시키는 아이디어와 정서는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영감과 이정표가 되어준다.

청킹 맨션의 보스와 그 동료들은 부조리한 세상사와 부침 많은 인간사, 그 결과인 삶의 유동성을 ‘알고 있다’. 아마도 더 살아봐서 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유동성과 불확실성에 부응하며 상호부조 할 수 있는 삶의 기술들을 만들어간다.

한 사례로 이들의 플랫폼인 탄자니아 홍콩 조합을 들여다보자. 우선 조합의 맴버쉽은 본인이 탈퇴하지 않는 이상 어디에 있든 유지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서로 돕는 인간을 구별, 평가하는 기준을 명확화하기와 상호 부조의 기준, 준칙을 명확화하기” 어느 쪽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헌도와 신용도로 자격과 혜택을 등급화하거나,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다. 무임승차자를 탈락시키지 않는다. 기여도에 따라 권력과 권위가 발생하거나, 누군가가 부채감과 부담을 갖지 않도록 한다. 거래와 분배 과정에서 위계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 이렇게 카라마와 그의 동료들은 특정한 누군가에게 쏠릴 수 있는 믿음과 기대를, 그리고 권위와 권력을 평등하게 나누어 갖는다. 이들의 조합은 개방성과 자율성을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수평적 네트워크이다.

명문화된 명확한 의무와 책임을 대신해 이들의 열린 공동체를 이끄는 것은 “겸사겸사”와 “적당히”와 “무리하지 않는다.”의 논리다.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 믿음은 “각기 다른 인간들이 갖고 있는 서로 다른 가능성에서 주고받기의 기회를 발견해 내는 ‘지혜’에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상대를 불문하고 도울 수 있을 때 겸사겸사, 적당히, 무리하지 않고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돕는다. 누군가를 본인의 한계 안에서 도움으로써, “분명히 누군가가 도와준다.”라는 자신들의 믿음조차 겸사겸사 무리하지 않고 증명한다. 이 우발적인 도움의 만다라는 자력으로 순환하며 국경을 초월한 연계 플레이로 작동한다.

보스 카라마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야. 유형이 다른 이런저런 동료가 있는 거야.” 이런저런, 동료.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자본주의의 배제 논리와 불능을, 자본주의가 누락시키고 있는 것들을, 이 시스템 안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다채로움을, 인간의 복잡함을, 그들의 도약과 좌절을, 그들의 웃음과 눈물을. 그래서 서로 도와야 한다는 걸 보스와 동료들은 안다. 아주 작더라도 하나 더하기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그 경우의 수를 계급과 국적을 넘어 확장시키는 것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라는 것을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은 알고 있다.

오가와 사야카는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청킹맨션 탄자니아 인들이 구축하고 있는 공유 시스템을 최근 확산되고 있는 공유 경제 아이디어와 비교해 분석한다. 공유 경제 모델의 아이디어와 시스템 모형, 그리고 작동원리에서 유사한 점과 상이한 점을 도출해내는 저자의 분석이 무척 흥미롭다. 특히 청킹 맨션의 커먼즈와 자본주의 내의 공식적인 공유경제가 다르게 접근하는 신용 이슈가 인상적이다. (신용에 관한 관점이 둘 사이의 차이를 결정적으로 가르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그 차이는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의 상이함에서 비롯된다.)

홍콩 탄자니아인 들이 구축한 커먼즈를 분석하면서 저자는 커먼즈와 공유 경제 담론의 이슈들을 인용하고 설명한다. 저자의 분석들을 통해 커먼즈, 공유, 연결, 특이점, 기본 소득, 기술 등 다양한 쟁점들을 확인할 수 있는 점 또한 이 책의 미덕이다. 그럼 이 책은 읽기 어려운가? 전혀 그렇지 않다. 유수의 학예상을 수상한 인류학 명저임에도, 이 책은 무척이나 명랑하고 그만큼 아주 재미있다. (한디디 작가는 무지막지하게 재미있다고 표현했는데, 실로 그렇다. 여기에 더해 지금은 적당한 표현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데, 낯설고 매우 묘한 매력이 있다. 보스 카라마와 저자 사야카. 예사롭지 않은 두 인물의 매력이 결합한 화학 반응이리라. ) 홍콩 탄자니아 인들이 직조하는 삶의 역동성을 옮긴 생생한 묘사 자체도 이 책의 미덕이다.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내 사고의 빈곤함을 여실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파산, 회생불능이라는 섬뜩한 말이 떠도는 금융 자본주의 한복판에 사는 나로서는 청킹맨션의 탄자니아 인들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여러 생각을 할 수 수밖에 없었다. 신용과 신뢰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혼용해 사용하는 문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결과 우리 안에서 변형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신용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삶의 기회를 부여하거나 박탈하는 시스템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청킹 맨션의 보스와 동료들, 그리고 저자는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들은 말한다. ‘세상의 누구도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누군가는 반드시 도와준다.’고 말한다. 이 아이러니 사이에, 이 아이러니 사이에 놓인 긴장을 건너는 그들의 사뿐한 행보에 그들의 지혜가 놓여있다. 이들은 상대를 믿지 않아도, 상대가 못 가진 것을 내가 가졌을 때, 상대를 돕는다. 평가 경제 시스템을 거부하며, 설렁설렁 헐렁하게 나의 잉여분을 나눈다. 득과 실을 따지지 않는다. 나눔은 단순하다.

제도에 기대지 않고, 상호간의 우발적인 도움으로 유지되는 공존의 네트워크. 읽을수록, 들여다볼수록, 곱씹을수록 수상쩍고, 매력 있다. 그야말로 힙하다.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것”이란 사전적 의미에 따른다면 청킹맨션의 보스와 그의 동료들이야말로 힙하다, 의도한 것이 아니어서 더욱. 이들은 누구도 믿지 않으면서, 누구도 배재하지 않는 열린 커뮤니티를 비공식적으로 이어간다. 제도 밖의 그들은 제도 밖의 안전망을 구축한다. 이국에서의 한시적인 삶이라는 타인들의 일방적인 시선과는 무관하게, 그들은 이 안전망을 토대로 지금 여기에서 삶의 역동성을 만들어내며, 그것을 그들 방식대로 누리고 즐긴다.

청킹맨션 탄자니아 인들은 효율성과 편의성을 “함께 살아가는 것”보다 우위에 두지 않는다. 이들은 신뢰를 등급화하지 않는다. 숨통이 트인다. 의무와 권리, 신뢰와 불신, 베풂과 갚기, 선의와 악의, 투입과 산출. 무수한 이항대립으로 꽉 조여진 사고가 느슨하게 헐거워지는 느낌. 책이 선사한 이 느낌 자체가 신선하고 소중하다. 자산 크기와 신용 평가로 성원권을 정교하게 등급화 하는 사회에서 청킹 맨션들의 사람들, 그 만남과 관계, 타자에 대한 태도는 그 자체로 영감이 된다. 이 영감은 새로운 삶에 대한 상상력으로 확장된다. 이 상상력은 “가리봉 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를 함께 읽는 우리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왜 안 되겠는가? 어쩌면 이미 누군가가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장미 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혹시 한디디 작가?

추천사를 쓴 한디디 작가의 말대로 청킹맨션의 카라마와 동료들이 실천하는 커먼즈는 삶을 여행하기 위한 자유의 기반이 된다. 삶을 여행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을 청킹맨션의 탄자니아 인들은 알고 있다. 그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건 우리의 몫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상상하는데 이 책은 더 없이 좋은 안내서이다.

이 책처럼 자본주의 안에서, 혹은 그 가장자리에서, 혹은 그 틈새에서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자본주의에서 조금은 빗겨나간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이 책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는 반갑고 고맙다. 이 책은 뭔가를 소생시킨다. 북돋는다. 뭐든 하고 싶어 하게 책이다. 정말이지 수상쩍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수상쩍은 책이다. 나도 수상쩍고 싶다. 맘껏 수상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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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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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이 아시아에서 즐기거나 큰돈을 갖고 있거나 평온하게 살아가면 수상쩍은 일을 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해. 그래서 나는 사야카에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르쳐준 거야. 우리는 성실하게 일하기 위해 홍콩에 온 게 아니야 새로운 인생을 찾아서 홍콩에 왔어.”

카라마,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254면

이 책 덕분에 30년을 미루고 미룬 영화 <중경삼림>을 봤다. 중경삼림은 청킹맨션(중경빌딩)과 그 주변의 빌딜 숲이라는 의미. 책을 받고 청킹맨션에 대해 알아보니, 홍콩의 근현대사가 그야말로 압축된 장소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쉴 새 없이 오가는 혼종의 장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어떤 얼굴들을 찾고 있다. 카라마는 2000년대에 초엽에 홍콩에 왔으니,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 그는 아직 탄자니아에 있었다. ‘새로운 인생을 찾아서’ 그가 홍콩에 도착한 것은 조금 후이다. 그가 곧 머물게 될 장소를 내가 2025년에 먼저, 아니 나중에, 보고 있다.

영화 속 중경삼림은 고이기를 거부하며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공간이다. 아래의 사야카의 분석 속 표현처럼 영화 속에는 ‘만만치 않은 타자’들이 수없이 스쳐간다. 빠르게 스쳐가는 조명의 빛살들처럼 명멸하는 ‘미지의 가능성’에서 우발적인 응답들을 발견해 내고, 이 응답들로 점멸하는 네온 불빛 같은 커먼즈를 구축한 청킹맨션의 보스와 그의 동료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더더더 ^^

“신기하게도 이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어떤 ‘융통성’ 같은 것이 관찰된다. 이 ‘융통성’은 이들이 구축한 시스템에 의해, 이들이 타자와 살아가는 가운데 길러온 지혜에 의해 저절로 재귀적으로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256면

“그들의 상호 부조는 동포에 대한 지원을 자연스러운 행위로 간주하는 사회 규범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이 가진 미지의 가능성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포함한 자신의 기회를 발견해내려는 ‘만만치 않은 타자’의 우발적인 응답에 달려 있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25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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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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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 경제의 작동방식인줄로만 알았던 인풋과 아웃풋의 자본주의 운영원리가 인간의 모든 관계에 침투한 지금,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모형, 이 모형을 인류학으로 접근해 풀어낸 책, 어떤 내용일지 몹시 궁금하다.



“이 책은 일단 무지막지하게 재밌다.” 한디디 작가는 추천의 말을 호방하게 시작한다. 증여와 교환, 돌봄을 둘러싼 풍성했던 정동이 이해관계로 급속히 졸아든 이 때에, “예금 0원, 주소 불명, 직업은 사기꾼, 취미는 방랑”인 사람을 위한 커먼즈. 이 커먼즈는 가능할까, 이 커먼즈는 어떤 모습일까.



누구도 믿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열린 커먼즈를 구축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엮어가는 커먼즈적 삶의 특징은 허당미! 아, 궁금증이 배가된다.



나도 이제 곧 청킹맨션의 보스가 알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우쭐)) 춤추는 판다 티셔츠를 입고 유쾌하게 브이를 한 인스타 사진이 표지에서 짤린, 그 보스((신비로워)). 카리스마가 너무 넘쳐 이름도 카라마인 그 보스((이건, 제가 죄송)), 지금 만나러, 아니 읽으러 간다.



PS 청킹맨션도, 보스도, "알고 있다"도, 책 표지도 힙하다.

이 힙한 책이 인류학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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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사겸사' 부담 없이 가볍게 돕고 도움을 받으며 (때로는 속고 속아주며) 누군가에게 부담이나 권위가 집중하지 않는 수평적인 공생의 네트워크를 만든다.



(중략)



자신이 도운 당사자에게 보답을 기대하는 대신,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더 넓은 세계로 이전함으로써 세계 자체를, 커먼즈로 만드는 셈이다.

추천의 말, 한디디, 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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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라는 착각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이정표
안호기 지음 / 들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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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진보를 추구한다는 것은 절대로 화합할 수 없는 모순이다.” 이 책은 그 모순들을 세세히 드러내고, 깊이 들여다본다. 더 나아가 대안으로 탈성장을 제안하고, 그 가능성과 결과들을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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