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을 피해자와 유족의 것으로 만드는 겁니다. 예전의 재판은 재판관과 변호인, 검찰의 것이었습니다. 피해자나 유족의생생한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가 전혀 없었지요. 몇 명을 죽였다든지, 어떤 식으로 죽였다든지, 계획적인지 우발적인지, 그런 표면적인 부분으로 모든 것이 정해졌습니다. 그 범죄 때문에 누가 얼마나 슬퍼하고 얼마나 괴로워하느냐에 상관없이 말이지요. " - P175
"우리는 듣고 싶네. 피고에게 사형을 구형한다는 말을. 가령 사형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법정에 사형이라는 말을 울려퍼지게 하고 싶네." - P181
"유족은 단순히 복수를 하기 위해 범인의 사형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 상상해보기 바란다. 가족이 살해당한 사람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 범인이 죽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유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을 손에 넣으면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를 풀 수 있는가? 사형을 원하는 것은 그것 말고는 유족의 마음을 풀 수 있는 길이 없기때문이다. 사형을 폐지한다면, 그렇다면 그 대신 유족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묻고 싶다." - P188
"가령 사형 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유족의 승리가 아니다. 유족은 그것을 통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다만필요한 순서, 당연한 절차가 끝났을 뿐이다. 사형 집행이 이루어져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겼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일도 없다. 그렇다면 사형이 아니라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는않다. 만약 범인이 살아 있으면 ‘왜 범인이 살아 있는가? 왜 범인에게 살아 있을 권리를 주는가?‘라는 의문이 유족의 마음을끊임없이 갉아먹는다. 사형을 폐지하고 종신형을 도입하라는의견도 있지만, 유족의 감정을 털끝만큼도 이해하지 못한 말이다. 종신형에서 범인은 살아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매일밥을 먹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어쩌면 취미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상상하는 것은 유족에게 죽을 만큼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번씩 끈질기게 말하지만, 사형 판결을받는다고 유족의 마음이 풀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유족에게범인이 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흔히 ‘죽음으로 속죄한다‘는 말을 하는데, 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범인의 죽음은 ‘속죄‘도 ‘보상‘도 아니다. 그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단순한 통과점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곳을 지났다고 해서 앞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극복하고 어디로 가야 행복해질지는 여전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통과점마저빼앗기면 유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형 폐지란 바로 그런것이다." - P189
"히루카와의 사형이 집행된 이후, 뭔가 달라진 게 있나요?" 나카하라는 즉시 대답했다. "아니요. 아무것도...... 무엇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래?‘ 하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그렇겠지요. 그리고 히루카와도 결국 진정한 의미의 반성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사형 판결은 그를 바꾸지 못했지요." 히라이는 약간 사시인 눈으로 나카하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형은 무력(無)합니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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