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동생이 낯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이러쿵저러쿵 외모품평을 당하고, 일방적인 모욕과 공격을 당하는 대상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누리꾼들은 샤오원을 만난 적도 없으면서 마치샤오원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거기다 자신들의 상상을 보태어 점점 더 심하게 비난하고 조롱했다. 광케이블 선만 통과하면제멋대로 타인을 모욕하고 희롱할 자유라도 생기는 듯 비열하고 추잡한 표현을 쏟아냈다. 그 대상이 미성년자인 어린 소녀인데도 말이다. 혹은 샤오원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법률이 과도하게 샤오원편을 들어 비호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더욱더 강력하게 ‘공정한 태도‘로 정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여기는지도 몰랐다. - P53

아이는 인터넷의 누리꾼 하나하나를 씹어먹고 싶었다. 책임지지도못할 글을 닥치는 대로 써댄 놈들이 증오스러웠다. 그들이 여가 시간에 심심풀이로 휘갈겨 쓴 글들이 응집되어 결국 단두대보다 무서운 칼날이 된 것이다. 샤오원은 매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난도질당했다. 그들이 휘두른 칼날은 샤오원의 피와 살을 한 방울씩, 한 점씩 빨아내고 발라내어 서서히 고통을 주면서 죽인 것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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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마저 앗아간 극도의허기를 잠시라도 잊기 위해 그는 무언가를 씹어서 연하게 만들어목구멍으로 넘기는 상상을 한다. 강주룡의 손은 목구멍으로 들어가고 그는 천천히 자신을 씹어 먹는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간수의 소리를 듣자 강주룡은 몸을 세우고 저항하는 인간의 자세를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타인에게 폭력적이기보다는 차라리 자기를 잡아먹는 뒤집어진 인간, 하지만 저항의 존엄을 끝까지 상실하지 않는 인간. 그가 바로 강주룡이다. - P242

박서련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수많은 장면 중 하나에 불과했을 평양 을밀대의 지붕 농성 사진을 흘려버리지 않고포착했다. 먼 과거의 케케묵은 이야기일 것이라는 짐작과 달리 당시 그녀들이 외치던 구호와 오늘의 노동자들이 외치는 구호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앞에서 강주룡을 찾아낸 박서련의 매서운눈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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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추억이 남은 곳을 둘러보러 왔건만, 섬은 뒤틀린 논리를 내세워 우리를 가두는 감옥으로 변해버렸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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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 명을 희생하지 않으면 이 <방주>에서 탈출할 수 없다.
누가 희생양이 될 것인가?
그야 물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어야 한다. - P87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옳았다. 이 지하 건축물은 그야말로 지금묵시록에 예언된 순간을 맞이했다. 우리는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얄궂게도 구약성서 속 노아의 일화와는 달리, 홍수가 일어나는 곳은 방주다.
구원은 여기에 없었다. - P193

"영화에도 나오잖아.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자기는 연인이 있다든가 가족이 있다면서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 그거, 가족이나 연인이 없으면 죽어도 된다는 소리잖아. 이 세상 사람 모두에게 인권이 있다지만, 개중에서 희생자를 뽑는다면 제일 사랑받지 못하는사람이 뽑히겠지?
그건 데스 게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지혜나 체력이 모자란 사람이 탈락하는 데스 게임이 있잖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죽어야 하는 건, 그것과 마찬가지로 잔혹한 일 아닐까.
그리고 방재안전 캠페인을 보면 흔히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같은 소리를 하잖아? 게다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소중한 사람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것처럼 그 소리를 연발하지."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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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을 때, 나는 사람이 죽어 귀신이 되면 다른 귀신들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귀신이 되고 나서야 귀신은 가장 고독한 존재이며 공간과 시간 속에서 어떤 사람이나사건과도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시간의 분과 초 사이의 틈새로만 흘러 다니다가 나뭇가지 끝에 박쥐들과 함께 조용히 매달려 잠을 자고, 매미와 함께 흙속에서 편안하게 매복한다.
고정된 형상과 냄새, 온도, 색깔이 없기 때문에 탐색과 관측이 불가능하며, 무게도 질감도 없다. 사람들이 탁자 가득 제물을 차리면서 귀신들과 외로운 혼귀들을 먹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그런 제물은 인간의 사욕일 뿐이다. 사람들은 안전함이 부족할수록 죽음을 더 두려워하게 되고, 귀신들에게 바치는 제물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제사상 위의 제물도 갈수록 풍성해진다.
사실 제물이 풍성할수록 귀신들은 더 고독하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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