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맨손 잡기가 양식이나 낚시와는 다른 차원의 잔인성을 갖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혹자는 이를 원시 채집 행위나 천렵 풍습을 예로 들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물살이들을 한정된 공간에 억지로 가두어 놓고 수백 명의 사람이 동시에 달려드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채집이나 천렵은 세상에 없다. 축제에서 맨손 잡기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행위다. - P223
닭, 소, 말, 양, 돼지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행복하게 사육되지 못하는 것은 개선해야 할 문제이지 다른 생물을 똑같이 학대할 수 있는 근거가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세상의 모든 동물 학대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비겁한 논리다. - P231
르포 작가한승태가 쓴 『고기로 태어나서』의 한 대목을 빌리자면 "우리가 이런저런 윤리나 논리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모두에게공평하게 잔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야기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니까. 먹거리로서의 살생을 포기할 수 없다면 적어도 오락거리로서의 살생과 학대부터 없애 나가야 한다.(‘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의 정당성에 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하겠지만 거기까지 다루지는 않겠다. 그것이 이 글의한계일 것이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해 온 일이 지적받으면아무렇지 않았던 과거가 무안해지고 아무래져야 하는 미래에포기해야 하는 특권들이 아쉬워서 반발심이 들기 마련이겠지만, 자연을 함부로 대해 온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아니,이제 겨우 치르기 시작한 2020년만 보더라도 더 암울해진 미래를 맞지 않기 위해 우리는 아무래져야 한다. - P231
몰라도 일상생활에 하등 지장 없고 그래서 알 필요 없는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해 두고 싶어서였다. 무관심 속에서 조용히 사그라지고 있거나 소수의 사람들이 성실히 지켜 나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어떤 세계에서는 여전히 절실하고 또 많은 이들의 생계나 자부심을 떠받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 P279
정말이지 이런 걸 만나는 순간이 너무 좋다. 어딘가에 ‘한국감연구회‘라는 단체가 있고, 한쪽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과일 선발대회’가 열리고 거기에 입상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있다. 감 박피기를 개발하는 사람이 있고, 얼레 가방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고, 전국을 다니며 연싸움을 하는 이들이 있고, 한때 만든 대금을 끼고 다니며 군밤 옆에 펼쳐 놓는 이가 있다. 축제장 음지의 꽃인 품바도 있고, 그 품바에 위로받는 팬들이 있고, 썰렁한 관객석 앞에서 열창하는 무명 트로트 가수들이 있고, 아이들을 달래 가며 공연하는 마술사가 있고, 만만찮은 지역민들의 입담을 능숙히 받아치는 노련한 사회자들도있다. 우리가 아는 세계, 아니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바깥에서 생각보다 수많은 취향과 노력이 질서를 이루어 이 세계를떠받치고 있다. 우리 또한 누군가들이 아는 세계의 바깥이겠지. 아마도 많은 부분에서 서로가 서로의 바깥일 대금 아저씨와 우리는 대금 버스킹이 펼쳐지는 시간 동안 잠시 마주 서 있다가 연주가 끝나고 한 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새해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건강하세요!"라는 평범하지만 다정한 말들로. - P282
축제는 이런 지방 도시들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자시도하는 분투일 테지만, 거듭된 축제들을 통해 지자체 스스로도 이제 알고 있을 것 같다. 축제를 통해서는 인구 유출을막는 것도,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도, 하다못해 축제 자체의수익을 내는 것도 무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지자체들이 축제를 포기할 수 없는 건, (본문에서도 잠깐 말했듯) 불황일수록 그나마 유일하게 노력해 볼 구석이 관광 마케팅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뻥축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실력의 축구팀이 그나마 기댈 곳은 바로 그 ‘뻥축구‘인 것처럼. 게다가축제는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여러 시도 중 상대적으로 예산도덜 들고,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당장 흥행에 실패하더라도(바로 증명할 수 없는) 경제적 파급 효과라든가 (딱히 계산하기힘든) 지역 이미지 제고 효과라든가 주민 통합 및 문화 이벤트제공 같은 무형의 이득으로 낙관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지역 축제는,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지만 별다른 대안이없는 지방 중소도시들의 최후의 보루이자, 다들 하는 마당에안 할 수도 없어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뽑아내야 할 숙제 같은것이다. - P2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