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사 감식요원들은 족적 자체를 감식하고, 프로파일러는 족적의 방향을 보죠. 지난 3월 주택 침입 살인방화사건 현장에서 발자국은 방이 여러 개일 경우 모두 작은방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큰방에는 주로 남자가 있고 작은방에 여성이나 아동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 행위를 보고 공격성은 굉장히 높지만 그렇다고 대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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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이 좀 받쳐주는 친구들은 소위 ‘파인아트’를 하기 위해 일찌감치 유학길에 올라 부러움을 샀고,
그렇지 못한 대부분을 위해 취업 설명회가 열렸다. 의외로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전집 그림책의 삽화, 학습만화 어시스턴트, 애니메이션 채색…. 꿈에 그리던 일은아니었지만, 시궁쥐처럼 겨우 먹고살 수 있는 정도에 만족할 수 있다면 선택지야 많았다. 세상은 요즘 애들 눈높이만높다고 비난하면서 우리더러 자꾸 시궁쥐로 살라고 윽박질렀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납작 엎드린 채로, 혹시나냄새가 날까 봐 머리와 몸을 박박 닦으면서, 얌전한 시궁쥐가 되자고 다짐했다. - P29

즉 ‘물 만지는 일‘이란 사소하게 일일이 고생스럽고 낮은 나지 않는데 품은 들면서도 시시포스의 노동처럼 지겹게 계속되면서도걸핏하면 하찮게 취급되는, 그런 여성들의 노동을 의미했다. - P66

왜 남자들은 자기 외모와 상관없이 모든 여자들을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대부분의 동물은 교미를 하고 싶은 수컷 쪽에서 구애를 하고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거늘, 왜 인간수컷은 그러지 않는 걸까. - P77

"왜 그런 애들 있잖아. 하나도 잘난 데 없는 주제에 잰 왜 저렇게 성격이 좋지, 싶게 어딘가 관대한 애들. 키도 작고, 생긴 것도 별로고, 좋은 직업도 없는데 애가 열등감이없고 점잖고 유순해. 근데 얘들이 실은 좆도 없는 게 아니지. ‘그게‘ 있는 거야. 믿는 구석. 기억을 잘 더듬어봐. 그런애들은 항상 커!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어떻든 이미 수컷으로 가진 게 있기 때문에 열등감이 없는 거야."
뭔가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민주는 맥주를 천천히 마시며 말을 계속했다.
"근데 그 반대도 있다? 좋은 차도 있고, 멀쩡한 직장도있고, 돈도 잘 벌고 모든 게 다 잘났는데 항상 초조한 애들이 있어요. 모든 걸 다 가졌는데 뭐가 그렇게 억울하니, 하고 묻고 싶어지는 애들 말이야. 인생에 부족한 게 하나도없는데 성격이 왜 이따위인지 싶은 애들은 말이지, 사실은너무나 무언가가 부족한 거야! 아까 말한 쓸데없이 관대한애들과 너무나 정반대인 육체를 지닌 거지. 부단한 노력 끝에 모든 것을 손에 넣었는데 왜 여전히 주리고 목마르겠어.
아무리 근사한 걸 손에 넣어도 ‘쥐좆‘을 극복할 수가 없는거지." - P104

민중은 생각보다 빨리 취직이 되었다. 대학도 학점도경력도 민주보다 못한 민중이지만, 젊은 나이에 가장이 된그를 면접관들이 남자의 책임감 운운하며 높이 평가해준덕분인지, 두 번째로 지원서를 낸 회사의 가족으로 따뜻하게 받아들여졌다. 어려서부터 민중보다 훨씬 책임감이 강했던 민주가 50번째로 면접을 보았을 때 결혼하면 일을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50번째로 받은 것과는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항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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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서 집안 어른들이 아들보다 딸이 훨씬 믿음직하다, 딸 가진 부모는 비행기 탄다더라 이런 말 자주 하셔. 요즘 세상에 어느 며느리가 시부모 아프다고 간병해주거나 노후를 책임지겠어? 그래서 딸이 ‘가성비‘가 좋다고생각하게 된 거지. 아들보다 돈 적게 들여 키워도 나중에 며느리가 안 해주는 돌봄 노동을 딸이 대신 해주잖아. 자발적으로 결혼 안 하고 ‘비혼‘으로 부모하고 살면서 실질적으로부양하는 딸들도 생기니까, 딸이야말로 투자 대비 효율이좋다는 걸 알게들 된 거지."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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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고생하며 삶을 일궈온 이야기는 너무 흔해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로 치부된다. - P6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여성은 없다. 이를 경제활동과 노동의 범주에 넣는다면 모든 여성이 경제활동인구며, 취업자고, 노동자였다" - P51

54년생 딸들은 10대에 여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20대에 엄마가 돼 가사노동을 도맡았다. 30대에 다시 공장에서 일했다. 40대에 외환위기를 겪으며 비정규직이 됐다. 50대 이후부터 청소·요양·간병 등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했다. - P54

일을 주제로 이야기하자고 했을 때 처음엔 무슨 할 말이있을까 싶었어요. 우리 때는 여성이 하는 일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고, 밖에서 사냥을 해와야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일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그래도 내가 집에 있음으로써 가족들이 다 편한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나 그냥 노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 P91

그 공백은 사회를 멈춰 세우고도 남을 만큼 크지만, 그만큼 중요한 그 노동은 너무도 값싼 비용으로 유지돼왔다.
모두가 꺼리는 적은 임금, 열악한 근무환경, 불안정한자리, 감염 위험, 직업을 낮잡아 보는 인식을 고령층 여성들이 감수해온 덕에 이사회가 유지됐다. ‘반찬값이라도벌어야 하니까‘, ‘애들한테 폐 끼치기 싫으니까‘, ‘우리 집엔 내가 없으면 안 되니까‘라는 마음으로, 마치 집을 꾸리고 지켜온 것처럼 고령층 여성들은 이 사회를 꾸리고 지켜온 것이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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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맨손 잡기가 양식이나 낚시와는 다른 차원의 잔인성을 갖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혹자는 이를 원시 채집 행위나 천렵 풍습을 예로 들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물살이들을 한정된 공간에 억지로 가두어 놓고 수백 명의 사람이 동시에 달려드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채집이나 천렵은 세상에 없다. 축제에서 맨손 잡기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행위다. - P223

닭, 소, 말, 양, 돼지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행복하게 사육되지 못하는 것은 개선해야 할 문제이지 다른 생물을 똑같이 학대할 수 있는 근거가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세상의 모든 동물 학대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비겁한 논리다. - P231

르포 작가한승태가 쓴 『고기로 태어나서』의 한 대목을 빌리자면 "우리가 이런저런 윤리나 논리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모두에게공평하게 잔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야기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니까. 먹거리로서의 살생을 포기할 수 없다면 적어도 오락거리로서의 살생과 학대부터 없애 나가야 한다.(‘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의 정당성에 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하겠지만 거기까지 다루지는 않겠다. 그것이 이 글의한계일 것이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해 온 일이 지적받으면아무렇지 않았던 과거가 무안해지고 아무래져야 하는 미래에포기해야 하는 특권들이 아쉬워서 반발심이 들기 마련이겠지만, 자연을 함부로 대해 온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아니,이제 겨우 치르기 시작한 2020년만 보더라도 더 암울해진 미래를 맞지 않기 위해 우리는 아무래져야 한다. - P231

몰라도 일상생활에 하등 지장 없고 그래서 알 필요 없는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해 두고 싶어서였다. 무관심 속에서 조용히 사그라지고 있거나 소수의 사람들이 성실히 지켜 나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어떤 세계에서는 여전히 절실하고 또 많은 이들의 생계나 자부심을 떠받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 P279

정말이지 이런 걸 만나는 순간이 너무 좋다. 어딘가에 ‘한국감연구회‘라는 단체가 있고, 한쪽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과일 선발대회’가 열리고 거기에 입상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있다. 감 박피기를 개발하는 사람이 있고, 얼레 가방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고, 전국을 다니며 연싸움을 하는 이들이 있고,
한때 만든 대금을 끼고 다니며 군밤 옆에 펼쳐 놓는 이가 있다. 축제장 음지의 꽃인 품바도 있고, 그 품바에 위로받는 팬들이 있고, 썰렁한 관객석 앞에서 열창하는 무명 트로트 가수들이 있고, 아이들을 달래 가며 공연하는 마술사가 있고, 만만찮은 지역민들의 입담을 능숙히 받아치는 노련한 사회자들도있다. 우리가 아는 세계, 아니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바깥에서 생각보다 수많은 취향과 노력이 질서를 이루어 이 세계를떠받치고 있다. 우리 또한 누군가들이 아는 세계의 바깥이겠지. 아마도 많은 부분에서 서로가 서로의 바깥일 대금 아저씨와 우리는 대금 버스킹이 펼쳐지는 시간 동안 잠시 마주 서 있다가 연주가 끝나고 한 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새해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건강하세요!"라는 평범하지만 다정한 말들로. - P282

축제는 이런 지방 도시들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자시도하는 분투일 테지만, 거듭된 축제들을 통해 지자체 스스로도 이제 알고 있을 것 같다. 축제를 통해서는 인구 유출을막는 것도,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도, 하다못해 축제 자체의수익을 내는 것도 무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지자체들이 축제를 포기할 수 없는 건, (본문에서도 잠깐 말했듯) 불황일수록 그나마 유일하게 노력해 볼 구석이 관광 마케팅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뻥축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실력의 축구팀이 그나마 기댈 곳은 바로 그 ‘뻥축구‘인 것처럼. 게다가축제는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여러 시도 중 상대적으로 예산도덜 들고,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당장 흥행에 실패하더라도(바로 증명할 수 없는) 경제적 파급 효과라든가 (딱히 계산하기힘든) 지역 이미지 제고 효과라든가 주민 통합 및 문화 이벤트제공 같은 무형의 이득으로 낙관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지역 축제는,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지만 별다른 대안이없는 지방 중소도시들의 최후의 보루이자, 다들 하는 마당에안 할 수도 없어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뽑아내야 할 숙제 같은것이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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