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좀 받쳐주는 친구들은 소위 ‘파인아트’를 하기 위해 일찌감치 유학길에 올라 부러움을 샀고,
그렇지 못한 대부분을 위해 취업 설명회가 열렸다. 의외로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전집 그림책의 삽화, 학습만화 어시스턴트, 애니메이션 채색…. 꿈에 그리던 일은아니었지만, 시궁쥐처럼 겨우 먹고살 수 있는 정도에 만족할 수 있다면 선택지야 많았다. 세상은 요즘 애들 눈높이만높다고 비난하면서 우리더러 자꾸 시궁쥐로 살라고 윽박질렀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납작 엎드린 채로, 혹시나냄새가 날까 봐 머리와 몸을 박박 닦으면서, 얌전한 시궁쥐가 되자고 다짐했다. - P29

즉 ‘물 만지는 일‘이란 사소하게 일일이 고생스럽고 낮은 나지 않는데 품은 들면서도 시시포스의 노동처럼 지겹게 계속되면서도걸핏하면 하찮게 취급되는, 그런 여성들의 노동을 의미했다. - P66

왜 남자들은 자기 외모와 상관없이 모든 여자들을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대부분의 동물은 교미를 하고 싶은 수컷 쪽에서 구애를 하고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거늘, 왜 인간수컷은 그러지 않는 걸까. - P77

"왜 그런 애들 있잖아. 하나도 잘난 데 없는 주제에 잰 왜 저렇게 성격이 좋지, 싶게 어딘가 관대한 애들. 키도 작고, 생긴 것도 별로고, 좋은 직업도 없는데 애가 열등감이없고 점잖고 유순해. 근데 얘들이 실은 좆도 없는 게 아니지. ‘그게‘ 있는 거야. 믿는 구석. 기억을 잘 더듬어봐. 그런애들은 항상 커!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어떻든 이미 수컷으로 가진 게 있기 때문에 열등감이 없는 거야."
뭔가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민주는 맥주를 천천히 마시며 말을 계속했다.
"근데 그 반대도 있다? 좋은 차도 있고, 멀쩡한 직장도있고, 돈도 잘 벌고 모든 게 다 잘났는데 항상 초조한 애들이 있어요. 모든 걸 다 가졌는데 뭐가 그렇게 억울하니, 하고 묻고 싶어지는 애들 말이야. 인생에 부족한 게 하나도없는데 성격이 왜 이따위인지 싶은 애들은 말이지, 사실은너무나 무언가가 부족한 거야! 아까 말한 쓸데없이 관대한애들과 너무나 정반대인 육체를 지닌 거지. 부단한 노력 끝에 모든 것을 손에 넣었는데 왜 여전히 주리고 목마르겠어.
아무리 근사한 걸 손에 넣어도 ‘쥐좆‘을 극복할 수가 없는거지." - P104

민중은 생각보다 빨리 취직이 되었다. 대학도 학점도경력도 민주보다 못한 민중이지만, 젊은 나이에 가장이 된그를 면접관들이 남자의 책임감 운운하며 높이 평가해준덕분인지, 두 번째로 지원서를 낸 회사의 가족으로 따뜻하게 받아들여졌다. 어려서부터 민중보다 훨씬 책임감이 강했던 민주가 50번째로 면접을 보았을 때 결혼하면 일을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50번째로 받은 것과는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항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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