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시계가 멈춰도 아이들은 자란다 - 열일곱 꽃다운친구들의 갭이어 이야기
이수진.정신실 지음 / 우리학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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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내가 제일 많이강조한 것은 일기쓰기와 책 일기였다. 학교에서 내 주는 기본적인 숙제야 해 가야 하겠지만 변화무쌍한 인생에서 길잡이가 되어주고 배움의 동력이 되어주는 것이 책을 읽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과 내 생각을 글로 전달하고 정리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식을 넓히고 감성을 넓힌다는 독서교육 프로그램 없이 그냥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고 모르는 단어 찾아보고, 가끔은 북카페에 가서도 읽으며 책은 재미있는 것, 내가 원할 때 읽고 배우는 일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살짝 성공한 듯 보였다. 아들은 검색이라는 이름으로 원하는 물건을 찾았고, 원하는 축구 용어와 야구 용어를 찾았고, 원하는 축구 중계 목록과 축구 책 싸게 사는 방법들을 찾았다. 다양한 설명서를 읽고 레고를 조립했고, 1000피스짜리 직소퍼즐을 잘 맞추는 방법을 사이버 상에서 전수받았다.

 

이런 것들이 수학의 정비례와 반비례보다, 영어 단어 몇 개 보다 앞으로의 삶에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좀더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삶의 교훈으로 삼을 만한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함께 역사를 읽고 사극도 보고, 엄마가 읽은 책들을 쉬운 말로 나누는 가족 티타임 시간도 가졌다.

 

초등학교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중학생이 되니 초등학교 때 했던 많은 일들이 미루어졌다. 하루에 책 한 권은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지고 독서는 생각날 때마다 하는 잔소리가 되어버렸다. 중학교 1학년 때 배우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국어가 좋지만 영어, 수학을 어디까지 기본으로 해 둬야 나중에 손해를 덜 볼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자유학년제라 시험도 안 보는데도, 내 아이는 그 흔한 영수학원 하나 안 다니는데도 영어와 수학 얘기를 하며 에너지를 쏟다 보니 함께 책 읽을 시간은 줄고, 힘든 영수하느라 지쳤다고 아들은 다른 것은 시키지 말라고 아우성이다. 뭘 크게 시킨 것도 없는데 말이다.

 

학교에서 이렇게 많이 공부하고 왔는데 또 공부를 해야 하다니! 선생님은 저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기발하고 창의적인 수행평가들, 학원 하나 안 다니는 내 아이가 이렇게 바빠보이는데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학교 공부에 독서에, 그 많은 스펙들을 쌓는지 신기했다. 아마도 내가 너무 게으르든지, 내가 너무 마음이 좋아서 아이를 그냥 풀어줘서 그렇겠지.

 

한편으로는 아이가 참 불쌍하다 싶었다. 나중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실감하지 못하는 두루뭉술한 선고유애 같은 말장난 때문에 관심도 없고, 어렵기도 한 저 많은 과목의 시험준비를 해야 하고, 영어, 수학은 해도해도 끝이 없다고 자꾸 하라고 하고......

 

학교에 적을 두었으니 적을 두는 동안에는 학교 생활에 충실하면서 성실하게 사는 버릇을 연습해 둬야 나중에 좀 힘들고 불편한 일이 있어도 참고 넘길거라고 시험 때면 시험 준비, 수행 때는 수행 평가 준비를 하라고 하지만 그것도 참 어렵다. 어디까지가 기본이고, 어디까지가 성실한 것인지 아이와 엄마의 기준은 참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렇게 정신없는 아이들에게 중3이 되면 진로고민이 찾아온다. 내 아이도 곧 겪을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목적 없이 충실하기만 해서야 어디 조용히, 깊이 고민할 틈이라도 있을까 싶다. 고등학교 들어가면 더 정신없다고 미리미리 정하고 가자는데 그러기에는 아이들의 경험치도 너무 얕고 접한 정보도 별로 없고. 빠져봤어야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아는데, 아이들은 무언가 빠져보기도 전에 정신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하지 않았던가!

 

이런 내 아이에게 1년을 쉬게 해 주고 싶었다. 부모가 여력이 되는 만큼 함께 책 읽고, 동네를 어슬렁거려도 보고, 같이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내일 걱정 없이 밤새 이야기도 해 보고......

그런 여유 속에서, 아니면 심심하다 심심하다 지쳐서 자기를 돌아보고 앞으로 재미있게 살 궁리를 해 주면 좋겠다 싶었다. 사실 큰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언젠가 때가 오면 이렇게 인생의 여백 한 장면 만들어 스스로 채워가게 해 주고 싶었다. 아이가 선택해야 가치 있는 여백의 시간이기에 초등학교 졸업할 때는 그냥 말만 했고, 중학교 들어가면서는 중학교 졸업하고 1년 쉬는 경우,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면서 아무 때나 1년 쉬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대학을 가도 좋고, 안 가도 좋고, 사업계획이 확실하면 사회에 바로 나가는 것도 괜찮다고 했었다.

 

말은 이렇게 해 놓고도 사실 좀 두려웠다. 정말로 아들이 1년 쉰다고 하면 내가 그 모든 것을 참아낼수 있을까? 빠듯한 살림살이에 아들의 여백을 뭔가 특별하고 멋진 활동들로 채워줘야 할텐데 돈은 얼마나 들까?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놀기만 하다 끝나버릴수도 있겠지?  그런 시간을 내가 오롯이 지켜보며 벼텨낼 인격이 될까? 친척들은 난리도 아니겠지.

 

내 아이의 내신등급이 인격 등급이 되고, 부모까지 같은 등급으로 묶여지는 고등학교에서 내 아이를 목적 없이 혹사시키기보다는 1년 쉬면서 자기 관심사를 찾고 자기 목적을 찾게 해 주고 싶으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 그래도 남들 다 가는 무난한 길로 가는게 제일 안전하지 싶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 두번씩 이리 출렁 저리 출렁 마음이 요동치는 요즘 때마침 이 책을 접했다. 내가 내 소중한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고 함께 걸어가 보고 싶은 길을 먼저 걸어본 이들의 이야기는 오지탐험을 앞둔 여행자가 오지 여행기를 읽는 심정보다도 더 절실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 '나만 이런 생각을 하며 산게 아니구나', '용감하게 도전하고 그 결과도 아름다웠구나' 먼 이국 땅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것 마냥 반갑고 고마웠다. 어찌나 힘이 되는지! 내 아들이 '꽃다운 친구들'이라는 모임에서 함께 활돋하는 1년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쉰다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세삼 느끼게 해 주는 절절한 단락들이 참 많았다. 나의 용기보다는 내 아이의 용기가 중요하고, 내 결정보다는 내 아이의 결정이 중요하고, 우리는 그저 지켜보며 응원해야 한다는 것도 세삼 와닿았다. 아들이 결정하면 친척들의 왈가왈부를 최선을 다해 막아주고 옆에 있어주는 일을 하면 되는구나! 그런데 그게 참 힘들겠구나! 그래도 해 볼 만한 가치가 있겠구니! 이 책은 내가 읽는게 아니라 나와 아이가 함께 읽고, 부부가 함께 읽고 아이의 입을 바라보고 기다려야 하는 일이구나!

 

아마 내 아이는 이 책의 주인공인 '꽃다운 친구들'처럼 1년 쉼을 거부할 수도 있다. 아니면 몇 년 후에 쉼이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 모든 청소년들이 당장 꽃친과 같은 여백을 꿈꾸든 꿈꾸지 않든 이 책은 많은 이들에게 참 의미있는 길을 열어주는 책인것 같다. 어떤 길을 가든 아이의 길은 아이가 앞장서 가며 우리를 손짓하게 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부모가 그토록 바라는 아이의 행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아이는 존중받아야 할 꽃같은 친구들이다. 때로는 내 생각과 감정이 앞서 이 기본 전제를 잊어먹고 부산떠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책이다.

많은 부모들이 내 아이의 열일곱의 삶이 어떠하기를 바라든 이런 점을 생각하며 함께 읽고 나와 내 아이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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