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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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단 한권의 소설만을 발표했던 하퍼 리의 신간, 

'파수꾼'의 발간 소식은 지난 여름동안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치매에 걸린 하퍼 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둥, 

각종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나 또한 의심 반, 기대 반으로 교보문고로 달려가 파수꾼 초판 1쇄를 구입해왔다. 


 

'파수꾼'을 읽기에 앞서, 왠지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앵무새 죽이기'를 복습하며 (집에 있던 책이 사라져서 새로 구입함 ㅠ)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의 감동을 다시금 느껴보기로 했었다.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하던 시기 미국에서 특히 그랬겠지만, 

그 이후에도 다양한 사회에서 '앵무새 죽이기'는 교과서와도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은 나를 포함한 수 많은 개인에게도 삶의 지표가 되어주었음에 틀림없다. 


다른 명작들과 함께 '앵무새 죽이기'는 

나의 마음 속 정말 소중한 책 진열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 그런 책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파수꾼'을 읽고나서 

'애티커스 핀치'를 변절자로 만들어버렸다며 혹평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이 책을 굳이 읽은 다음에,

'앵무새 죽이기'를 소중한 책 리스트에서 파기(?)시켜야 하는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었다. 

안 그래도 마음에 등불이 될 만한 책도 별로 없는 마당에, 

그나마 있던 이야기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선뜻 '파수꾼'을 읽기가 겁이 났었다.


하지만 무엇이 달고 쓴 지는 직접 먹어보아야만 알 수 있는 법.

이미 호기심이 두려움을 넘어선 뒤였기 때문에, 

나는 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기어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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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부터는 책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이야기로부터 받은 인상은,


다 자란 진 루이즈가 철없고 패기만 가득한 지금 나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나와 다른 것을 믿는 사람들과는 이야기조차 하기 싫어하는 내 모습. 

하지만 삼촌은 끊임없이 진 루이즈를 다독인다.

그들과 대화 해야만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나이를 먹어 갈수록 전혀 성장하지 못한 고집불통 노인네가 될 뿐일 거라고.

그런 말들이 나에게 하는 말인 것만 같아 가슴을 마구 후벼팠다.


나도 진 루이즈처럼 법률적 용어나 기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지식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그냥 가슴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신념이 되었던 것이다.


세대 갈등이든, 이념 갈등이든 어떤 것이든 간에 

그렇게 세상에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갈등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다만 그것이 내 부모님이 되었을 때는, 

정말 큰 상실감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아이에게 커다란 사람으로 각인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부 모습을 이상화해서, 

그들의 부모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거나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갈등의 씨앗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갈등에 그저 '사랑한다'는 말로 모든 것을 덮어 버리려는 아버지의 행동은,

사실은 이것이 더 이상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좁혀지지 않을 생각의 골.


그저 그렇게,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만이

진 루이즈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아마도 하퍼 리가 진 루이즈이고, 

또한 진 루이즈는 같은 생각을 하고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수 많은 청년들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로는,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다. 


많았지만, 특히 한 구절을 꼽는다면, 

애티커스 핀치가, 행크 때문에 화가 난 진 루이즈에게 던진 말이다.


「글쎄다, 아내를 속여서 장 볼 돈을 가로채면서도 식품점 주인을 속일 생각은 떠올리지도 못하는 남자들이 있지. 사람들은 정직을 작은 칸들에 나눠 다니는 경향이 있단다, 아가. 여러 가지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정직하면서도, 다른 점에서는 자기 자신도 속이곤 하지.」 - 335 p.


행크를 위한 변명이기도 하지만, 이는 역시 애티커스 핀치, 

자기 자신을 위한 변명이기도 한 것 같았다.


그 커다란 양심에는 절대로 견줄 수 없는 사소한 욕심에 너무도 쉽게 내어주고마는 것이 

인간의 정의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신이 아니니까.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의 작은, 또는 커다란 양심을 지켜줄 '파수꾼'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우리가 한 사람의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퍼 리는 인종차별과 갈등이 심각하던 당시 사회의 모습을 비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이것이 해결되려면 오랜 시간에 걸친 인종과 세대간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도 이런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가

사회를 더디지만 발전하도록 부추겨온 동력임은 분명한 것 같다.




세 번째로는,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선악 구도가 단순한 전작에서의 감동보다

그 경계가 불명확하고 복잡한 '파수꾼'에서의 감동이

더 오래갈지도 모르겠다.


두 작품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르다는 점에서 

서로 전혀 다른 작품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들이 연결된 작품이고 더 나아가서는

'파수꾼'이 '앵무새 죽이기'를 완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기 합리화에 빠진 나이든 애티커스 핀치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앵무새죽이기'를 통해 남겼던 교훈의 색이

바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포함해서 세상은 여전히,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앵무새를 죽여서는 안되는 거라는

그 교훈이 정말 필요하다.


다만, 그 이상적 교훈과 현실주의의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어야 할 지는 과제로 남아있으며

'파수꾼'은 그 일단면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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