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스맨의 재즈 밀리언셀러 클럽 144
레이 셀레스틴 지음, 김은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이번엔 황금가지 출판사의 신간, 액스맨의 재즈를 읽게 됐다.

나는 책을 고를 때 상당히 신중한 편인데, 제목, 작가, 역자, 그리고 출판사까지 내 맘에 쏙 드는 책만을 골라보는 편이다. 지난번 포스팅했던 책들도 그런 이유로 고르게 됐었다. 이번엔 어릴 때부터 셜록홈즈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언니가 산, 황금가지에서 나온 검은색 표지의 전권이 본가에 있었고 자연스럽게 읽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추리소설을 좋아하게 되어서 아르센 뤼펭이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열심히 읽었었다. 사실 셜록홈즈는 다른 출판사에서도 단편을 엮어서 내거나 하는 식으로 출판이 되기는 하는데, 그 어떤 것도 황금가지 판을 따라갈 수가 없다. 완벽한 번역은 물론이거니와 원본에 삽입됐던 그 삽화가 참 한 몫을 하는데 진짜 어두운 밤에 셜록홈즈 한 권이랑 따뜻한 차 한 잔이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을 정도였다. 그러한 이유로, 그러니까 왠지 모를 출판사에 대한 신뢰감과,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한다는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을 기대하면서 황금가지 페이스북을 통해 신간 액스맨의 재즈의 서평단에 신청하게 됐던 거였다. 책은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다. 좀 두껍지만 사실 뒷부분은 완전 흥미진진해서 순식간에 휘리릭~ 지나가게 된다. 추리소설은 밤마다 자기 전에 노란 불 켜놓고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서 숨죽이며 읽는 게 묘미라 생각되어 그렇게 일주일을 읽었다.

20세기 초 뉴올리언스: 어떤 사건이라도 당장 일어날 것 같은, 황량한 도시!

이 소설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미국 뉴올리언스의 특징을 정말 생생하게 재현하고, 소재로서 소설에 정말 잘 녹여냈다. 여러 인종들이 모여 사는 도시, 그렇기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도시, 왠지 모르게 흐리고 텁텁한 날씨가 연상되는 도시, 부패한 지배자들의 손안에 놓인 착잡함이 묻어나는 도시.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책에서 그린 20세기 초의 뉴올리언스는 딱 이런 느낌이었다. 어떤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추리소설로서는 최고의 배경이 아닌가? 액스맨 사건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 정말 납득이 된다.

나도 재작년 11월에 뉴올리언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느낀 뉴올리언스는 이상하게 따뜻한데 이상하게 황량한, 그런 분위기였다. 전자의 이유는, 재즈의 도시답게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재즈소리가 흥을 돋우고, 사람들의 표정이나 제스처에서도 왠지 모를 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후자의 이유는, 보는 그대로 도시의 색 자체가 날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필름 한 장 낀 것처럼 흐렸고, 재즈가 울리지 않는 골목은 부두교와 관련된 물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등 으스스했기 때문이었다. 이주민들이 모여 산다는 것, 그것도 이런 도시 분위기에 한 몫 했었겠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셜록홈즈의 발자취, 초자연적 현상이란 있을 수 없다는 과학적 신념!

다음으로 이 소설은 앞서 내가 찬양한 셜록홈즈의 광팬이 만들어낸 책이 분명한, 덕심이 묻어나는 책이라는 점에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여주인공 아이다가 셜록홈즈를 좋아하며 탐정사무소에서 일한다는 설정만 본다 하더라도 고개가 끄덕여질 거다. 그 밖에 범인을 쫓고,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이 왠지 모르게 셜록홈즈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다가 셜록홈즈를 따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겠지.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 현상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실은 과학적으로 분석 가능한 현상으로 서서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정말 셜록홈즈의 현대판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액스맨이 도끼를 들고 재즈를 연주하지 않는 집에 쳐들어가 무차별하게 사람을 죽이고 의미를 알 수 없는 타로 카드를 꽂아둔다라는 이 초자연적 현상이 어떻게 이해 가능한, 현실의 일로 밝혀지는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이런 조건들 때문에 늘 내가 셜록홈즈가 쓰여지던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으며 이제 새로운 셜록홈즈 시리즈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던 그 마음이 왠지 레이 셀레스틴의 소설을 통해 충족된 느낌도 들었다. (, 재단에서 선정한 새로운 작가가 신작을 발표를 하고 있긴 하지만, 왠지 아쉽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등장하는 인종차별문제

주요 인물 중, 범인을 쫓는 인물은 총 네 명으로 추릴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들은 인종으로 구별된다. 흑인인 루이스와 아이다, 이탈리아인인 루카와 백인인 마이클이 있다. 사실 뉴올리언스는 오랜 기간 노예제도를 비롯한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했던 남부지방의 대표격인 도시이며, 지금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이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만 해도, 청소를 해 주는 분이나 서빙해주시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흑인이나 히스패닉 인종의 주민이었다. 지금은 노예제도는 존재하지 않지만 경제적, 직업적 격차로 차별의 흔적이 남아있는 듯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소설에서도 놓칠 수 없었던 문제였을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출신과 인종이라는 배경이 있고 그 배경이 어떤 식으로든 사건의 진행과 그들의 삶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특히 여주인공 아이다는 흑인 치고는 밝은 피부색 때문에 흑인에게서도, 백인에게서도 이중적 차별을 받게 된다.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내며 탐정이라는 꿈에 도전하는 그녀가 정말 멋졌다. 이런 역사를 반영한 인종차별이라는 구체적인 설정은, 지금까지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기에, 이 소설이 좀 더 현실적일 수 있도록 해 줌과 동시에 사회성도 잃지 않게 해 주는 것 같다.

주요 인물들에 대한 대략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미리 얻고 싶지 않다면 아래 내용은 읽지 않는 것이 좋겠다

우선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루이 암스트롱이 루이스라는 이름으로 젊은 흑인 재즈 연주자로 등장한다. 솔직히 루이 암스트롱을 모르는 사람은 진짜 거의 없다고 봐도 무관할 거 같다. 바로 이 점에서 여러 사람들의 공감과 몰입도를 최대로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작가가 참 영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튼, 고아이고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고 재능을 발휘하는 루이스를 책 읽는 내내 응원하게 됐었다.

다음으로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사립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며 셜록홈즈의 광팬으로 나오는, 아이다가 있다. 특히 셜록홈즈를 좋아한다는 설정이 맘에 들었다. 아이다는 피부색이 밝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또 다른 차별의 대상이 되는데, 그 아픔을 견뎌내며 동시에 끈기 있게 진실을 추구하는 호기심과 노력이 정말 멋진 여성이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인 마이클은 액스맨 사건을 전담하게 되는 형사이다. 흑인 여성과 가정을 이룬 백인으로서 차별의 대상이 되며 그 사실을 숨기느라 전전긍긍한다. 또 다른 인물인 루카의 죄에 대해 증언을 해서 형을 살게 한 바 있어서 그가 출소하자 자신을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한다.

루카는 감옥에서 갓 출소한 전직 부패 형사로, 일전에 몸담았던 마피아 보스 카를로의 부탁으로 범인을 쫓기 시작한다. 사실 부패 형사라고 해서 뭔가 선과 악의 대립 구도인가라는 생각을 처음엔 하게 했지만, 그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증언한 마이클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그저 돈을 모아 고향으로 떠나겠다는 생각을 하는, 어찌 보면 동정심이 가는 캐릭터다.

묘하게 끊어지는 듯한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다. 각 장의 인물들이 따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서 처음에는 여러 인물의 배경과 성격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로 모이게 되기 때문에 나처럼 사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 재미있는 건, 그 전 장이 루이스와 아이다의 이야기였다면 다음 장에서 루이스는 멀리 길가에 보이는 흑인 청년으로 등장하게 된다거나, 지난 장에 있었던 살인사건이 경관에 의해 보고되는 식으로 이어진다는 거다. 약간 느낌이 예전에 방영했던 테마극장?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추리소설의 진정한 묘미라 할 수 있는, 범인 추리하기도 흥미진진했다. 초반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등장했던 우미글리아니가 범인일까? 이렇게 어리숙한데? 그리고 뜬금없이 어디에선가 나타나 도우미를 자청하는 초짜 형사 케리도 의심스럽다. 아이다가 추적하고 있는 모피업자 존인가? 주요 인물들이 범인을 추적하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인물이 사실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는 뒤통수를 탁! 맞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이래서 이 인물을 이렇게 심어 둔 거로구만! 뭐 그런.

이처럼 액스맨의 재즈는, 정말 쉬이 썼다고는 말할 수 없는, 입체적인 줄거리와 재미를 담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CWA 존 크리시 대거 상을 수상했다더니, 정말 그 명성대로 추리소설로서는 정말 완벽한 구성을 갖춘 이야기였다. 레이 셀레스틴의 다음 소설에서는 어떤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질까? 정말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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