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 : 마리 A.의 기억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4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이 위대한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처음 접했던 건,


타인의 삶 이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마리 A.의 기억이라는 시를 읽으며 '타인의 삶'을, 그러니까 그 연인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 주인공.

그 장면은 정말 너무 로맨틱했다.

대체 어떤 시이기에, 그리고 시라는 것이 과연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움직이는 일이 가능한 걸까?

딱딱하게 얼어붙어있던 내 마음도 녹여줄 수 있을까.......

난 당장 컴퓨터를 집어들고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해 내가 알 수 있는 정보는 너무 한정적이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나마 마리 A.의 기억 번역본이라도 읽어보고 싶어서

이런 저런 사이트를 뒤져보며 겨우 찾아낸 번역본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책을 사서 읽고 싶다는 열망이 차올랐지만,

이렇듯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그만두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티초크라는 정말 완벽한 출판사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애정, 번역자에 대한 존중, 독자에 대한 배려로 가득함) 에서 브레히트의 시선을 출판한 적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설레는 마음에 주문을 하고, 드디어 받아보았을 때의 기쁨이란!


출판사에서 아름다운 표지 3개를 만들어서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도록 한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시도했고, 나는 가장 맘에드는 표지를 골랐다는 특별함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은 정말 너무 소중한 책이 되기에 충분했다.

특히 다양한 사진과 그림, 그와 관련된 설명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시에 빠져들도록 만들었다고나 할까.

이 시는, 브레히트가 살던 그 시절, 그의 생각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흔들리는 기차에서 읽었음에도 삽시간에 읽어제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첫 번째 시였던 (이 순서 역시 엄선된 것이겠지) '마리 파라의 신생아 살인에 관하여'라는 시부터 정말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이 시를 통해서 내가 감히 판단해온 수 많은 도덕적 가치들이 도전받았고, 축복받는 삶과 축복받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그 누구도 마리 파라를 비난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대했던 마리 A.의 기억을 펼치기 전, 아, 정말.

브레히트 시집을 사도록 만들었던 타인의 삶의 그 장면이, 설명과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 주인공 비즐러다. 그렇게 감정 이입하며 이 시를, 제대로 된 번역의 시를 읽게 됐다. 

머릿 속으로 그려지는 풍경. 그리고 사랑했던 그대의 얼굴보다는 그대를 사랑했던 사실만이 기억에 남는 추억. 그냥 뭔가 엄청나게 멋진 시라고 생각한다.


아, 그리고 내 마음을 움직인 또 하나의 시. '시에는 안 좋은 시대'다.

시의 마지막 연에 너무나 공감했다.


내 안에 서로 다투는 것이 둘 있으니, 그것은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과

페인트 공의 연설에 대한 공포다.

하지만 후자만이

나를 책상으로 가게 만든다.


_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 86p


지금도 시에는 안 좋은 시대지. 시에 좋은 시대가 오기는 올까? 

개인적 낭만이냐, 사회적 시선이냐.

내 안에도 늘 두 생각이 다툼을 벌인다.

그렇다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의 사회적 투사가 될 마음은 없다.

난 그만큼 용기가 없는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개인적 행복에만 안주하려고 하니,

정의감이 내 발목을 잡는다.


여튼, 브레히트는 둘 다를 쓴게 아니었을까. '후자만이' 그를 책상으로 가게 만든다고는 했지만.

어떤 사상을 따랐다기 보다는 그는 본능적으로 타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표현했던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책 첫 페이지의 브레히트 소개글에서와 같이.


이번 생에 나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큰 고민을 했었는데 어느 정도 해소가 된 느낌이랄까.

브레히트는 나처럼 고뇌하는 청춘들에게

공감을 통한 안도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이라는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시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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