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
정승익 지음 / 메이트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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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우리 학교 전교 1, 2, 3등은 성향이나 공부 양상이 너무나 달랐다. 1등은 타고난 이과 천재, 그러면서도 소설 쓰기를 좋아해서 매일 1등이 노트에 쓴 소설을 아이들이 돌려 읽었다. 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물리학과를 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 이 친구는 소설 쓰기 취미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면 곽재식 같은 SF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3등 역시 타고난 천재였다. 나와 꽤 친한 친구였는데 X JAPAN 히데에게 빠져 4개월 만에 일본어를 마스터하는 타고난 언어감각과 전국 수학 올림피아드 상위권에 드는 수리감각을 겸비한 친구는 당연한 듯 서울대 수학교육과에 진학했다. 타고난 천재라고 느끼는 건 친구의 생애는 덕질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돌에 빠져 공상을 하는 시간이 어쩌면 공부하는 시간보다 더 길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재의 면모는 심심할 때 드러난다. 그녀는 잠이 안올 때 수학 문제를 풀거나 법전을 읽었다. 1등과 3등은 그야말로 배움이라는 행위 자체에 빠진 아이들이었다.


  



반면 2등은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아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의 입지는 언제나 불안정했다. 3등 친구가 탈덕하는 날에는 언제 2등의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 (3등은 저질 체력이라 체육점수에서 평균을 깎아먹어 이런 역전은 자주 일어나진 않았다.) 2등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쉬지 않고 학원을 다녔다.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특목고를 갔고 아마도 좋은 대학에 갔겠지만, 가성비로 따지면 1, 3등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떨어지는 아이었다.




물론 사교육은 이미 성적이 좋은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심화 학습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뒤처지는 아이에게는 공교육보다 세심하게 처진 부분을 보완할 도구로 활용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불안 때문에 필요 여부에 대한 판단도 없이 휩쓸리듯 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의 저자 정승익은 EBS와 강남구청에서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영어강사이다. 공교육 교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교육의 최전선에 있는 것도 아닌, 공교육의 연장에 가까운 보편 교육 복지 서비스 제공자에 가까운 그의 위치는 사교육 현상을 통찰력 있게 분석하면서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게 만들었을 것 같다. 




유튜브에서 저자의 콘텐츠를 본 적이 있는데 마인드 자체가 올바른 사람이라 느꼈다. 맹목적인 물질주의를 경계하고 타인의 욕망을 따라가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그래서 자기만의 철학과 가치관이 확실히 선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에도 이런 올곧은 생각이 논리정연하게 풀어져있다.




책은 사교육을 줄여야하는 이유에서 시작해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부모 실천 가이드와 학생들의 실천 가이드가 담겨있다. 사교육을 줄여야하는 이유는 매우 현실적이다. 자녀 교육에 거의 2억에서 많게는 6억 가까이 지출하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은 정상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높은 편에 속하는 건 사교육 과열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이렇게 자식에게 올인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어떠한가? 인서울 명문대는 상위 7%에게만 열려있는데 사교육이 인서울에 입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면 상위 7%만큼의 비용을 사교육에 쓸 수 있나? 




앞서 떠올린 학창시절 친구들처럼 공부는 부모가 아닌 아이가 하는 것이다.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우고 집중할 수 있는 아이만이 자연스럽게 공부를 잘할 수 있다. 이런 성향은 사교육을 한다고 바뀌는게 아니다. 특히 저자가 지적하는 하위권의 딜레마는 정말 뼈를 때린다. 학원이 레벨테스트를 해서 상위권 애들만 걸러내 가르치는 건 안될 애들을 애초에 버리는 것이라는 것. 사교육의 목적이 뭔가라는 회의감이 들 정도다.




'자식은 키우는 게 아니라 알아서 크는 겁니다.'




저자는 이어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부모 훈련을 알려준다. 부모 뜻대로 아이가 자랄 것이라는 건 부모의 바람이자 욕심일 뿐, 아이도 자아가 있는 인격체이다.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살아간다. 그런 욕구가 부모의 욕심에 의해 좌절된다면 당장은 착하게 따를지 몰라도 언제 혼란을 느끼고 방황할 지 모른다. 게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의 선택에 의존하는, 전혀 독립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자라는 건 너무 비극이지 않은가? 저자는 부모는 살아가는 데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사람이어야 하고 사회에서 부딪히는 좌절에서 아이가 빠르게 극복할 수 있게 감싸주고, 인생의 좋은 롤모델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는 사교육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생겨야 한다. 공부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작은 성공을 만들어 성취감을 느껴가며 공부에 더욱 몰입해가야 사교육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직 아이가 어리지만 영유아 시장에도 사교육은 그 마수를 뻗치고 있다. 특히 책육아라는 명목 하에 커져가는 전집 시장의 마케팅, 뇌발달을 시켜준다는 수백만원에 호가하는 교구, 천만원에 육박하는 영어 콘텐츠 패키지. 아이를 자기 뜻대로 빚으려는 부모의 욕심은 끝이 없고, 남들은 다 한다는데 내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나 불안을 느끼는 부모들을 타깃으로 영유아 사교육 시장은 무럭무럭 성장해가고 있다. 마치 부동산을 못가져 순식간에 '벼락 거지'가 됐다고 느꼈던 영끌족들을 보는 기분이다. 나 역시 이런 유혹에 빠졌다가 아이의 뇌발달에 맞지 않는 조기 교육이 '초독서증'을 불러올 수 있다는 글을 읽고 정신 차렸었다. 




학부모가 되면 이런 유혹에 더욱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럴때마다 이 책을 펴고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막연히 다른 사람들을 따라 사교육을 시키고 있었다면,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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