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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평점 :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몹시도 막막했다. 나에게 일을 가르쳐 줄 사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입사하게 된 작은 회사였는데, 그 회사에서도 처음 시도해보는 일을 나에게 맡겼다. 상사가 있긴 했지만 거래처와의 관계를 위해 데려다 놓은 사람으로 실무를 하나도 몰랐다. 모르는 건 인터넷을 찾고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내 앞에 산재한 일들을 헤쳐나갔다.
대학을 졸업해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일이라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이게 나의 첫 단추라 생각하니 잘못 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과도한 열정은 너무 빠르게 타오르고, 빠르게 재가 되었다. 한 두달 매일 같이 야근을 하며 일에만 매달렸는데도 진척이 없었고, 여전히 나는 미로 속을 헤매는 심정으로 일을 해야 했다. 당시에는 일 생각만해도 울컥하는 답답함이 올라왔고 매일 아침 눈을 떠서 회사를 가야한다는 사실이 겁이 났다. 결국 반년만에 나는 포기를 했다. 좀 더 큰 조직으로 이직을 했고, 스타트업에 대한 공포도 생겼다.
아마 그때 나에게 방향을 알려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당시 나에겐 차고 넘치는 열정이 있었으니 뭔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일을 통해 성장하는 기분을 오롯이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가와카미 데쓰야의 소설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는 사회 초년생의 성장기를 담은 이야기다. 책 표지는 마치 서점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다룬 힐링류 소설인 줄 알았는데, 웬걸... 스펜서 존슨의 초 베스트셀러 <선물>을 깨달음을 주는 자기계발서였다.
오모리 리카는 갓 대학을 졸업하고 모두가 알 법한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출판유통회사인 다이한에 입사했다. 하지만 자신은 책을 좋아하지도 않고 출판유통에 대해 흥미조차 없었다. 연수가 끝나고 처음 배치 받은 곳은 오사카 지점. 도쿄에서 나고 자라 생활권을 벗어난 적이 없는 리카에게는 충격적인 전개였다. 마치 '팔려가는 송아지'가 된 심정으로 오사카에 도착한 그녀는 상사와 거래처를 만날 수록 자괴감에 빠져든다. 안그래도 없었던 자신감은 더욱 바닥을 치고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상사에게 울분을 터트리는데, 상사는 이런 리카의 모습을 보고 '고바야시 서점'에 다녀올 것을 제안한다.
흔한 동네 골목에 있는 작디 작은 책방 '고바야시 서점'으로 간 리카는 그 곳에서 열정이 넘치는 주인 유미코를 만난다. 유미코는 가게가 가진 단점을 특유의 성실함과 신뢰, 인간관계로 극복한 사람이다. 책을 좋아했기에 깊이 있게 책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사람들을 제 발로 찾아가 영업하는 방식으로 작은 서점이지만 시내의 큰 서점, 게다가 글로벌 체인망을 가진 온라인 서점보다 더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그녀. 유미코의 이야기를 들으며 리카는 서툰 자신을 다독이며 힘차게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책에서 좋았던 부분은 책과 전혀 가깝지 않은 삶을 살았던 리카가 이런 단점을 역으로 활용해 다양한 기획을 내며 책으로 사람들과 교류하는 즐거움을 얻어가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낯선 곳에서 생활을 시작했을 때 책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 교류하며 일상의 활기를 되찾았던 경험이 있어 무척이나 공감되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서점들도 이런 이벤트들을 풍성하게 해주면 좋을 텐데, 하는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 기획안이 나올 수 있게 방향을 잡아준 유미코의 일화들은 그저 놀라웠다. 책방을 살리기 위해 우산장사를 해야했던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고 매출 순위가 높아 출판사의 초청을 받을 정도로 성장한 이야기.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우산을 판매하고, 작은 서점에 자리 잡고 있다. 팔다보니 우산이 너무 좋아졌기 때문이고, 자신을 신뢰하고 찾아주는 고객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서이다.
유미코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일본 요식업계의 전설이라는 우노 다카시가 쓴 <장사의 신>이 떠올랐다. 같은 물건이라도 꼭 필요한 순간을 캐치해 제시하고, 작은 점포의 한계를 뛰어넘어 효율적으로 매출을 올리는 비법이 너무나 닮았다. 고바야시 서점 이야기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니 역시 장사의 신들의 비법은 어쩌면 통하는게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섬에 있는 서점> 같은 책을 매개로 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완전히 결이 다른 이야기였지만 이건 또 이것 나름대로 재밌고 의미있는 독서였다. 장사를 준비하는 자영업자들은 물론, 사회 초년생들에게 첫 발을 내딛을 용기를 줄 만한, 마인드 셋에 도움이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