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고수 - 신 변호사의 법조 인사이드 스토리
신주영 지음 / 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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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푹 빠져서 보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법에 푹 빠져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우영우. AI처럼 법률과 각종 판례를 다 꿰고 있어 남들이 보지 못한 시각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통쾌함이 살아있는 드라마다. 특히 우영우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떠올릴 때 바다 위로 솟구치는 돌고래들을 볼 때면 찌는 더위에 사이다 한 모금을 마신 듯 청량한 마음이 들고는 한다.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생각도 던지는 묵직함도 있는 이 드라마를 보면, 작가는 대체 저런 장면들을 어떻게 생각해냈는지 새삼 궁금했다. 문지원 작가의 전작 역시 법정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 <증인>이라 나는 작가가 변호사 출신이거나 법을 공부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의 인터뷰를 보니 모두 다 법을 소재로 한 관계자들의 책을 참고했다고. 그 중 하나가 신주영 변호사의 에세이 <법정의 고수>다. 



이 책의 5장에서 7장을 채우고 있는 '높고 단단한 벽, 그리고 계란들'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2회 분량으로 비중 있게 다뤄졌던 '소덕동 이야기'의 원작 에피소드다. 파주 신도시 건설과 함께 신도시 주민들의 교통 대란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까지 연결되는 제2자유로 건설 계획이 수립되고, 이 노선이 고양시 덕양구 일대 마을 두동강 내며 마을 주민들이 소송을 건 것이 실제 일화이다. 



드라마에서는 우영우의 친모인 법무법인 태산의 대표 태수미와 정면 대결을 펼치는 사건으로 나오는데, 이 책에서는 신주영 변호사가 마을 주민들을 대변하는 원고 측 변호사가 되어, 정말 열정적으로 사건에 임한다. 사실 승소 가능성이 너무 희박해 사건을 수임하지 않으려 했던 신 변호사는 마을 주민들의 간곡한 요청에 직접 마을을 찾았다가 마을이 입을 심각한 피해에 공감하게 되고, 사건을 맡게 된다. 



하지만 법정에서 이런 낭만적인 호소를 할 수는 없다. 드라마에서도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의 대사로 언급되지만 이런 사건은 주민들이 승소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삼권 분립이 철저한 우리나라에서 행정부가 추진하는 일에 사법부가 어떤 판결을 내리는 것이 대단히 껄끄럽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백한 위법 행위를 찾아야만 승소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 



사건은 드라마와 거의 유사하게 흘러간다. 신 변호사는 사전환경영향평가 시기가 노선 확정 이후에 진행된 점을 이유로 절차적 위법을 주장하고, 주민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무시한 것과 주민들이 입을 환경적 피해가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변론한다. 상대 측도 변호사를 한차례 바꿔가면서까지 팽팽히 맞선다. 



책을 읽으면 드라마보다 더 깊게 이 사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신 변호사는 단순히 주민들이 입을 피해가 아니라 향수 도시가 처할 미래를 염려하며 무분별한 개발 중심적 사고를 비판하고 있다. 신 변호사가 믿는 소신을 뒷받침하기 위해 뜻 밖의 인물이 등장해 변론을 돕는다. 바로 도시를 인문학적 시각으로 읽고 설계하는 건축가 유현준 교수다. 



일산이 고향이고, 덕양구가 처했던 현실과 유사한 사례를 보스턴에서 유학했을 당시 경험했던 유현준 교수는 도로가 마을을 어떻게 단절시킬지, 환경적으로 어떤 피해를 가져올지, 위성 도시 일산의 미래 측면에서 경제적으로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과 대안까지 제시하며 신 변호사에게 힘을 싣는다.



이때 신 변호사와 유현준 교수가 변론으로 준비했던 논리는 타당함은 물론, 드라마적 서사까지 있어서 이 소재가 매력적이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이래서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묻어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레퍼런스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드라마와는 전개가 다소 다르지만, 너무나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변론이었다. 결론적으로는 패소했지만 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주민들은 정부의 불통적 태도와 오만함 때문에 맺혔던 가슴의 응어리를 풀 수 있었다. 주택공사 사람들이 변론에 밀리지 않으려고 쩔쩔 매는 모습이 통쾌했고, 개발에만 치우쳐 외면 당하는 무수히 많은 가치들이 신 변호사를 통해 회복된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마을을 지켜주는 팽나무가 문화재로 등록되며 끝까지 마을을 지켜낸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10년 후 공사 진행 과정에서 덕양구 일대에 고대 유물들이 대거 발견된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틱할 수가!



법정 에세이를 처음 접해봤는데, 논리적이고 핵심을 찌르는 저자의 변론 솜씨만큼 물 흐르듯 유려한 문장에 글이 술술 읽혔다. 사실 기사나 자료로만 접했으면 이렇게 재미있게 법적 논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다. 더 나은 미래, 더 소중한 가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변호사의 열정도 감동을 자아낸다. 부디 신 변호사가 거대한 시스템의 벽 앞에서 고통받고 좌절하는 개개인들에게 언제나 든든한 계란이 되어주길 바란다.



드라마와 비교하는 재미는 물론, 그 자체로도 너무 의미있는 독서 경험이었다.



※ 컬처블룸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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