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제인 오스틴 지음, 송은주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모할지도 모를 새로운 도전을 앞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 타인을 통해 확인하려 한다. 그리고 때때로는 믿고 의지하는 사람의 진심 어린 염려가 독이 되곤 한다. 염려는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고, 나아가려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염려가 얼마나 깊은 애정에서 비롯되었든 간에,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것보다 타인의 말에 휘둘려 내린 결정은 후회를 동반하기 십상이다. 



제인 오스틴의 <설득>은 자신의 마음보다 남의 말에 설득 당해 첫사랑을 놓치고 만 한 여자의 이야기다. 현명하고 지성미 넘치는 이 책의 여주인공 앤은 스물일곱의 혼기를 놓친 아가씨다. 이른 나이에 찾아온 사랑을 놓친 이후 그녀를 뒤흔들 다른 사랑은 찾아오지 않았고, 이제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앤의 아버지 월터 경과 언니 엘리자베스는 화려한 외모와 준남작의 지위에 어울리는 품위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빚더미에 빠지고, 결국 켈로치 홀을 임대해주고 바스로 이사갈 계획을 세운다. 오랜 바다 생활 끝에 잠시 켈로치에 정착하러 온 크로프트 제독 부부가 켈로치 홀의 세입자가 되고, 시집간 동생 메리를 돕기 위해 켈로치와 가까운 어퍼크로스에 잠시 머물게 된 앤은 한때 자신과 뜨거운 사랑에 빠졌던 크로프트 부인의 남동생 프레더릭 웬트워스와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불안에 빠진다.



열 아홉에 찾아왔던 운명 같은 사랑, 그는 지적이고 활기 넘치는 매력적인 젊은이었지만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앤이 가장 의지하는 벗이자 대모 같은 존재인 레이디 러셀은 준남작 집안의 앤에게는 너무 모자란 상대라 판단해 그들의 결혼을 강력하게 반대했고, 아버지와 언니 모두 같은 입장이었다. 지금에서야 모두가 설득해달라 요청하는 '설득 전문가' 앤이지만, 당시 너무 어렸던 앤은 주변에 설득 당해 프레더릭에게 이별을 고한다. 



자신이 버린 남자가 이제 모든 성공을 거머쥐고 켈로치로 돌아왔다. 결혼할 진지한 상대를 찾기 위해. 그리고 이 남자, 얄궂게도 메리의 시누이들과 교류하며 어퍼크로스로 거의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다.



두 사람의 재회는 숨이 막힐 만큼 아찔했다. 갖은 핑계로 대면을 피하고 있던 앤은 오히려 더 남자답고 멋있어진 프레더릭을 보며 8년의 세월동안 늙고 시들어버린 자신을 마주한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슴 졸이며 지켜봤지만 마치 예전 일을 잊은 듯, 아니 '많이 변해서 못 알아볼 뻔했다'는 잔인한 반응에 앤의 고통은 더욱 깊어져 간다. 메리의 시누이들과 즐거운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는 앤. 그러다가 문득 프레더릭이 건네는 작은 배려에 기쁨과 후회 같은 복잡한 감정에 빠져든다. 프레더릭 역시 나날이 자신이 사랑했던 시절의 총기를 되찾아가는, 아름다운 앤의 모습에 다시 예전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기쁨과 슬픔이 오가는 복잡한 앤의 감정선을 너무나 섬세하게 잘 표현해서 프레더릭에게 한마디도 못 건네는 앤에게 답답함을 느꼈다가, 다시 미모에 물이 오른 앤에 빠진 남자들을 보며 통쾌했다가, 보는 내내 앤의 최측근이 되어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기승전결혼으로 끝나는 뻔한 결론이라해도, 그 과정은 손에 책을 놓지 못할 정도로 흥미롭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언제나 그렇듯 사랑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고백하기 일보직전의 남녀는 다른 사람과 맺어졌다는 오해를 하게 되고, 내달리던 감정을 멈춘다. 하지만 끝내 누군가의 도움으로 오해를 풀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로맨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전형적인 플롯인데도, 여전히 새롭고 푹 빠져들게 만드는 건 탁월한 감정 묘사와 관계 설정, 그리고 앞서나간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인 오스틴은 대표작 <오만과 편견> 뿐만 아니라 <설득>에서도 당대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는다. 아무리 막대한 부와 지위를 가진 집안이라도 여성인 자녀들은 아무것도 상속 받지 못하기에 안정된 삶을 위한 결혼이 필수였던, 그래서 사교계에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리젠시 시대. <설득>에서 제인 오스틴은 서로를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는 크로프트 제독 부부를 내세워 이상적인 부부상도 보여주고 있다. 아마 현명하고 지혜로운 앤과 재기 넘치는 프레더릭도 이들 부부처럼 서로를 각자의 삶에 찾아온 가장 최고의 파트너로 치켜세우며 살아가겠지. 



게다가 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너무나 뿌듯했다. 아버지, 언니, 레이디 러셀에게 휘둘리며 주도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왔던 앤은 사랑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며 주체적인 인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기준에서는 여전히 수동적인 여성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당대에는 대단한 성취였을 것 같다.



앤과 프레더릭의 메인 러브스토리 외에도 주변 인물들의 전개 역시 다채롭게 펼쳐져 어떤 결말을 맺을지(심지어 켈로치 홀 상속을 둘러싼 빌런들의 뜨악할 반전도 나온다!) 궁금증에 책을 놓을 수 없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게 되는 강력한 페이지터너. 




​특히 W클래식x첫사랑 컬렉션은 윌북에서 앞서 내놓은 걸클래식 1, 2처럼 그 책에 어울리는 적절한 색상을 제대로 뽑아내어 소장욕구를 불렀다. 첫사랑을 테마로 한 이번 컬렉션은 제인 오스틴을 대표하는 핑크부터, 차가운 뉴욕의 상류층의 이야기 <순수의 시대> 블루, 희망을 상징하는 그린라이트가 나오는 <위대한 게츠비> 그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엘로우로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윌북의 컬렉션은 판형도 딱 한 손에 잡히는 최적의 그립감에 디자인도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워 이미 소장 중인데 이 컬렉션도 조만간 책장에 꽂을 수 있길.  



첫사랑과의 재회가 다시 잘되는 기적같은 설렘을 경험하고 싶다면 제인 오스틴의 <설득>에 빠져보길 권한다.



※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