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사이언스 클래식 38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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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글다'는 건 이제 진리에 가까운 사실이다. 인류는 그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확장된 지식들을 쌓아왔다. 하지만 이를 근거도 없이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구평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다룬 다큐를 봤는데 자신들이 '지구평면설'을 증명할 수 있다며 세운 가설로 실험을 해놓고, 전혀 증명되지 않는, 오히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지구평면설'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그저 신봉하는 종교가 되어버린 듯하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마지막 저서이다. 이 책이 발간된 건 90년대, 노스트라다무스의 세기말 예언을 몇 해 앞둔 때, 세계는 얼마나 많은 미신과 반지성에 빠져 있었을까. 국내만 해도 어린 시절 과학잡지 같은데서 UFO나 네스호의 괴물 같은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런 미스터리는 당시 과학잡지의 단골 소재였다.) 과학은 문명을 몰라보게 발전시키고, 인류의 삶에 혁신을 가져왔지만, 우리의 삶은 미신과 유사과학에 더 닿아 있었다. 



우리는 칼 세이건을, 이제는 과학서의 고전으로 통하는 <코스모스>의 저자로 기억한다. <코스모스>는 다큐멘터리로 먼저 알려지고, 이후 책으로 발간되었는데 이는 모두 칼 세이건 자신이 직접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기획하고 실행한 결과물이다. 그는 본인이 직접 스튜디오를 차려 <코스모스>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PD를 섭외하고 송출할 방송사를 컨텍했다. 그만큼 과학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뿌리 내려야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저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는 과학이 왜 보다 대중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강력한 바람이 담겨 있다.



90년대 미국사회는 과학 문맹이 95%에 달할 정도로 과학적 지식에 무지한 사람들이 절대 다수였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이 상황이 획기적으로 나아졌을 것 같지 않다. 빌게이츠, 오바마 등이 외계인이라는 음모론을 믿는 단체의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갔으니.)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보수적인 분위기는 공교육에서 다윈의 진화론마저 부정하게 만든다. 칼 세이건은 미국사회에 만연해있는 미신과 유사과학, 음모론 등의 실체를 파헤치고, 종교가 지성의 눈을 가릴때 벌어진 끔찍한 만행들- 중세의 마녀사냥, 현대의 사이비 종교가 벌인 집단 범죄- 등을 거론하며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책 속에는 UFO, 외계인, 환각, 중세의 마녀사냥, 심령술, 사이비 종교 등 마치 영혼을 앗아가는 악령처럼 많은 사람들의 매혹시킨 미신과 유사과학의 사례가 흥미롭게 제시된다. 그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앞서 언급한 '지구평면설'을 믿는 사람들과 완전히 같았다. 자신들의 믿음 외에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 저자는 과학적 견지에서 이것들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번쯤 혹했던 음모론들이고, 인간의 맹목성과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라서 이를 읽는 것만으로도 책은 충분히 흥미롭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과학'을 보는 내 시각이 바뀌었다는 것에 있다.



"과학은 지식을 추구하는 완벽한 도구라고 할 수는 없다. 

과학은 우리가 가진 최선의 도구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학은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과학 그 자체는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확실하게 밝혀 줄 수 있다.

(중략)

과학은 대안적 가설들을 먼저 머릿속에 만들어 보고 그중 어느 것이 사실과 가장 잘 부합하는지를 알아보라고 권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것이 아무리 이단적인 것이라고 해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든 기성의 지혜이든 간에 가장 엄격한 태도를 유지하며 회의적으로 철저하게 검토하는, 매우 섬세한 균형 감각을 유지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종류의 사고 방식은 변화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본질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55~56p



과학에게는 절대적인 것은 없다. 언제든 오류 가능성을 품고 있고, 이를 증명해나가는 과정이다.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진보의 과정이다. 둘 다 비판적인 사고를 가진, 깨어있는 구성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중에게 과학은 너무 멀고 어려운 영역이다. 과학이 좀 더 민주주의에 가까울 수 있으려면, 과학이 대중화되어야 한다. 저자는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깨어 있는 마음과 세상이 돌아가는 기본적인 방식에 관한 이해를 가진 시민'이라 말하며, 과학의 대중화를 거듭 강조한다. 교육에서부터 과학과 친해질 수 있어야 하고, 과학자들 역시 그들만의 리그 속에 갇혀서는 안된다.


"과학적 성향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 어느 문화에서든 늘 우리 안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생존의 수단이다.

그것은 우리의 천부적 소질이다.

무관심, 부주의, 무능력, 그리고 회의주의에 대한 불안 따위 때문에 우리가 어린이들을 과학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면, 그것은 그들로부터 인간으로서의 특권과 미래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구를 빼앗는 것이 되리라."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P468



이 책은 과학이 내 삶 속에 녹아들어가야할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과학적 사고를 잃으면 우리는 쉽게 근거도 없이 확신만 가득한 유사과학과 미신에 의존하게 될 지 모른다. 



특히 19장 '쓸데없는 질문은 없다'가 육아를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너무나 큰 울림을 주었는데, 물론 이 장에서 과학 낙제 국가 미국을 걱정하며 비교적 수학, 과학 영역에서 우수함을 보여주는 한국을 언급하고 있어 다소 묘한 마음이 되었다. 칼 세이건은 알까? 얼마나 많은 한국 학생들이 수포자, 과포자가 되는지를. 한국에도 그가 말하는 직접 체험하고 실험할 수 있는 과학 수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내 아이가 발견의 기쁨과 경이에 가득찬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책에서 권한대로 아이가 어떤 질문이든 용기있게 말할 수 있게, 설명하고 함께 탐구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답을 모르겠을때 해줄 수 있는 말도 너무 멋있다. "답을 모르겠구나. 아마 아무도 모를 거야. 네가 자라서 그것을 밝혀낸 최초의 사람이 되는 건 어떻겠니?" 이 말을 들은 아이가 자신이 던진 물음에 큰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게 될까를 생각하니 상상만으로 흐뭇해진다.) 오늘의 운세에서 본 이야기에 하루종일 심신을 지배당하는 나약하고 반지성적인 인간이지만, 내 속의 악령을 몰아내고 과학의 촛불을 켜야겠다고, 다짐해본다.



 

 

※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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