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계획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스포츠가 보여주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노력의 결실에 감동한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불리는 스포츠 경기에서 페어플레이란 어떤 수단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투지와 노력으로 경기에 임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러시아 피겨 선수 발리예바가 도핑 논란에 휩싸이며 자칫 메달의 가치를 무색하게 만들 뻔했다. 약물을 통해 피로를 느끼지 않는 지치지 않는 체력을 만들어 연습량을 늘리고,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려 갖게 되는 메달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가 청년 시절에 쓴 <조인계획>은 동계 스포츠를 무대로 하는 미스터리물이다. 배경은 1989년, 일본의 마티 뉘캐넨(핀란드의 조인鳥人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스키점프 선수)으로 불리는 니레이 선수가 합숙 도중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사인은 독극물에 의한 타살. 경찰은 스키점프 관계자들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추정하고 탐문 수사를 벌이던 중 범인은 니레이의 코치 미네기시라고 적힌 밀고장을 받는다. 비슷한 시기에 미네기시 역시 '자수'를 종용하는 쪽지를 받게 되고, 완전 범죄를 확신했던 그는 자신의 살인을 알고 있는 자가 누군지 추리하기 시작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처럼 범인을 초반에 까고 시작하는데도 전혀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미스터리는 투 트랙으로 진행되는데, 미네기시는 왜 자신이 그토록 아끼는 선수 니레이를 살해했을까? 하는 살해 동기를 추리해내는 것과 스기에 다이스케가 벌이고 있는 실험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다. 



우선 초반부터 살해 당해 사람들의 기억으로만 형상화되는 인물 '니레이'는 타고난 천재 스키점퍼다. 언행은 가볍기 그지 없지만 스키점프를 할 때는 모든 것을 잊은 듯 몰두한다. '새처럼 날겠다'는 목표가 전부인, 순위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 그야말로 천재답다. 그를 죽인 미네기시는 마치 모차르트를 영원히 질투했던 살리에리 같다. 그러고보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해 죽였다는 소문도 있으니 어쩌면 작가가 거기서 모티브를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도 스키점프 선수였던 미네기시는 니레이처럼 되고 싶어 3년이란 세월 동안 니레이를 미친듯이 연구했다. 그 덕분에 슬럼프에서 벗어났지만 결국 남은 건 자신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니레이와 같은 천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니레이의 도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니레이 다음으로 일본 스키점프계의 2인자로 불리던 선수 사와무라는 전혀 두각도 나타내지 못했던 스게이 쇼의 점프가 엄청나게 좋아졌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를 돕는 교수로부터 쇼의 점프가 니레이와 흡사하다는 과학적 데이터를 접하게 되는데. 실험동에서 비밀 훈련을 받고 있다는 쇼. 그는 과연 어떤 훈련을 받기에 단기간에 천재적인 스키점퍼 니레이처럼 될 수 있었던 걸까? 



모든 전말이 밝혀졌을 때 도입장인 '징조'가 어떤 일을 암시했던 것인지 그제야 무릎을 치며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야심을 위해 인간적인 가치를 모두 져버린 스기에 다이스케의 탐욕이 미네기시의 살인 못지 않게 무섭다. ​예상치 못한 반전을 안겨주는 밀고자의 정체도 허를 찌른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이 배경인데 전혀 낡아보이지 않는 것은 현재에도 통용되는 인간 존재에 대한 통찰을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스포츠에도 과학이 도입되고 기량을 데이터로 분석하며 인간을 마치 기계처럼 개조시킬 수 있을지 기대감을 품었던 때, 1980년대는 사이보그가 된 인간이 맞이하게 될 미래에 대한 고민이 꽤나 컸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공각기동대>도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이보그를 통해 성찰하게 만들었으니. 과학 문명의 고도한 발전이 빚을 디스토피아와 인간의 삶을 잠식할 것 같은 사이보그는 아직도 도래하지 않았지만 당시 사람들이 품었던 암울한 세기말 정서는 지금 AI와 자동화로 밀려나게 된 우리 삶의 위기와 맞닿아있는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느꼈던 시대적 고민은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라플라스의 마녀>, <탐정 갈릴레오>, <용의자 x의 헌신> 등 그의 대표작에서 뽐내온 그의 주특기 '풍부한 이과적 지식'도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읽는 내내 범인의 동기와 끔찍한 계획의 전말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책을 놓치 못하게 만들면서, 다 읽고 난 후에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책이었다.




※ 네이버 카페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