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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편한 어린이 생활 영어 - 퀴즈와 놀이로 아이의 말문을 여는
레지나(노신영) 지음, Maria Hyeseung Son 감수 / 소울하우스 / 2022년 2월
평점 :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영어 때문에 주눅 든 경험으로 가득했다. 한국식 영어교육을 받고 자란 탓에 리딩은 큰 무리가 없었지만 외국인 앞에 서면 귀도 안들리고 입도 막혔다. 영어를 잘했다면 도전 가능했던 더 좋은 커리어도 초반에 포기했다. 영어에 스트레스 받으며 다니느니 좀 더 적은 소득이 마음이 편하다며 애써 합리화했었다.
나 혼자면 이미 망한 인생이라며 포기하겠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내 아이 인생에 영어가 발목잡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생겼다. 영어가 아이를 더 나은 길로 데려가 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할 필요는 없으니까.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엄마표 영어'였다. 학원에 백날 보내봤자 영어에 대한 거부감만 더 생긴다. 학원은 아웃풋을 뽐내고 싶을 때로 충분하다. 인풋은 엄마와 놀이처럼, 대화처럼 영어를 받아들어야 한다는 것. 우선 나부터 변해야 했다.
올해 들어 매일 아침 EBS 라디오를 켜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낭독을 하며 영어 발음 유창성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당장 내 아이에게 말을 거는 건 어려웠다. 장기간 이어간다면 내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겠지만 당장 아이의 귀를 틔어줄 방법으론 맞지 않았다. 그때 이 책을 발견했다.
현직 동시통영사 레지나가 쓴 <맘 편한 어린이 생활 영어>는 저자가 직접 엄마표 영어를 하며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영어에 어려움이 없지만 아이가 혹시 영어를 싫어하게 될까봐 두려워 영어는 오로지 기관에 맡겼다는 저자. 하지만 영어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의 입에서 '영어가 싫어!'라는 말이 나오고 말았고, 영어를 좋아하게만 만들자라는 목표로 영어 유치원을 중단하고 엄마표 영어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거부하던 아들도 매일 한 두마디씩 건네는 영어에 스스럼 없이 반응하게 되었고, 지금도 타인의 기준에서- 엄마가 동시 통역사임을 감안하면- 영어 레벨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영어를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느끼는 것'에는 근접해졌다고.
서문을 보며 나 역시 너무 높은 기준보다 아이가 영어를 편안하게 느꼈으면 하는 바람만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5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Step1에서 4까지 단계별로 진행된다. 마지막 Plus는 엄마표 영어를 더욱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한 영어 노래와 그림책, 영상 자료들이다.

인상 깊은 점은 기존의 엄마표 영어책들이 아이와 엄마의 대화문 형태로 되어 아이의 아웃풋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형태라면, 이 책은 첫 단계는 TPR(Total Physical Response)이라는 영어 교수법에 따라, 아이가 엄마의 명령이나 지시 등을 듣고 몸이나 yes or no의 단답을 통해 이해를 보여주며, 아이가 자발적으로 말을 할 때까지 발화를 재촉하지 않는 형태로 구성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나 같이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도 접근할 수 있는 대화들이었다. 게다가 매 대화는 영문 패턴 형태로 제공하고 있어 뒤에 단어들만 바꾸면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부터는 아이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들의 영어 이름을 알려주며, 이를 더 쉽게 인지할 수 있게 단어 퀴즈를 내는 방식이다. 사물들은 실사와 실사 못지 않게 디테일한 일러스트들로 구성되어 있어 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세 번째 단계는 놀이를 영어로 해볼 수 있게 다양한 놀이에서 쓸 수 있는 표현들을 정리해뒀다. 물감 놀이, 클레이 놀이, 칠교 놀이, 요리 등 아이와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놀이들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표현들이다. 패턴은 물론 준비물의 이름들을 알려주고 있다. 매 장마다 발음을 듣고 상황을 연습하는데 도움을 주는 유튜브 영상이 QR 코드로 제공되고 있는데, 놀이 부분은 특히 도움이 되었다. 저자 강의에 덧붙여 아들 헨리와 직접 놀이하는 모습이 제공됐다면 더 실감나고 좋았을 것 같았다.
네 번째 단계는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상황들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표현들이다. 이 부분은 사실 내가 접했던 다른 엄마표 영어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영어 그림책과 동요 추천은 너무나 유용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어 동요와 그 동요와 연계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을 추천해주고 있는데, 이런 큐레이션도 탁월할 뿐더라 문장 난이도 미리보기를 제공하고 있어 책을 구입하기 전에 참고하기 좋았다. 또 저자의 책 추천사에는 어떤 부분이 도움이 되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어서 정말 꿀팁이었다. 이런 걸로 책 한권 더 내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
엄마표 영어에 뛰어들었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아 조바심이 날 때 이 책을 만나 다행이었다. 책의 구성도 실용적인 표현 위주고 앞 뒤로 엄마표 영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들어있어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엄마표 영어를 도전하고 싶지만 영어가 두려운 엄마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