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 사회주의 고전의세계 리커버
G. D. H. 콜 지음, 장석준 옮김 / 책세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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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한번도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체제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다. 의회가 국민을 대변한다는 대의민주주의와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 그 이상의 삶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계승해서 세워진 국가들은 대부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의 실패를 보여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반도에서 대치하고 있는 또 다른 나라 북한의 가난과 봉건제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보이는 정치 체제는 나의 확신을 더욱 공고히 하게 만들었다. 한때 금서였던 마르크스주의는 더 이상 2000년 대를 맞이하는 대학생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화라는 넓어진 무대에 서기 위해 더 치열하게 스펙을 갈고 닦아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물려받은 유산이 많은 사람은 너무나 손쉽게 부를 불려갔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 투기로 전락한 금융 투자 등으로 앉은 자리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질 수록 노동의 가치는 바닥을 쳤다. 정치는 어떤가? 선거철이 되면 국민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고 읍소하는 국회의원들은 과연 진정한 국민의 대변자인가? 청년도 없고 여성도 없다. 50대 이상의 연령대, 남성, 판검사, 변호사, 언론인 등이 장악한 국회. 나와는 완전히 계층이 다른 그들이 어떻게 나를 대변할 수 있나?


게다가 지역구를 기반으로 한 선거구 제도는 과연 효율적인가? 자기 지역에 제대로 된 건설 사업 하나 가져오는 걸 치적으로 여기며 벌어지는 난개발의 결과가 세금 도둑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모습을 얼마나 자주 접하지 않았나.



지금 한국의 자본주의와 대의 민주주의 체제가 심각한 불평등과 부의 세습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 이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회주의라는 말은 왠지 이미 망한 체제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길드 사회주의 입장의 핵심은 사회가 모든 구성원에게 개인적 집단적 자기 표현의 기회를 가능한 최대로 보장하도록 조직되어야만 하며, 이는 능동적 자치를 사회의 모든 부분으로 확대함을 뜻한다는 신념에 있다."<길드 사회주의> p23




G.D.H 콜의 <길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넘어 국가 사회주의의 대안으로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 사상을 담고 있는 책이다. 길드 사회주의는 중세의 길드처럼 각 산업군 결사체가 각 산업의 자치를 책임지고 길드의 연합체인 전국길드가 국가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굉장히 혁신적인 개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는데 사회주의도 여러가지 분파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길드 사회주의는 비마르크스주의 계열의 사회주의로 대중 자치를 기반으로 한 '경제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국가 주도의 공산주의 경제 체제를 이념으로 삼은 마르크스 주의와 대치된다. '경제 민주주의'라니, 몇년 간 한국 정치의 화두가 된 말이 아닌가?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재벌들이 쌓아 올린 부는 그들만의 것이다. 공적 자금을 투입해 망해가는 기업을 살려놨지만 그 후에 축적된 부는 사회에 환원되지 않았다. 그들의 부는 하나의 경제 권력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정치 권력은 경계해도 자신들이 유리한대로 판을 짜기 위해 여론을 보수화시키고 있는 경제 권력은 무감하게 바라본다. 능력주의는 이를 강력하게 옹호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는 경쟁이 공정할 리가 없다.




길드 사회주의는 하나의 강력한 집단이 집중적으로 가진 권력을 해체하는 사상이다. 모든 의사결정에는 대중의 참여가 필요하다 주장하는 사상이다. 길드로 연합된 조직이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 관여해 대중 자치를 이끌어낸다. 얼핏 보면 이게 될까 싶을 정도로 이상적이지만, 책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은 제대로 된 시스템만 갖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체제가 될 것 같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하지만 지금의 국가적 형태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발상이라서 이런 혁명이 과연 가능할까도 그렇지만 모두가 참여하는 의사결정의 가능여부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아마 내 상상력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인간의 속좁은 본성은 각 길드 간의 합의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회의감에 빠지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20세기 초반의 영국의 상황이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정치 경제적 상황과 너무나 유사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혁명 이후 오랫동안 더 나은 사회로의 해답을 찾아가기 위해 진통을 겪어 왔던 유럽, 그리고 독자적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계를 갖춰간 미국이 만들어간 시스템을 겉핥기로 가져온 압축성장의 표본인 한국에서는 더욱 새로운 체제를 꿈꾸는 비판적 사고가 결여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지금 우리는 뭔가 잘못된 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을. 역자의 말대로 <길드 사회주의>는 '뒤늦게 도착한 고전' 이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책을 접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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