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심리학 - 누가 권력을 쥐고, 권력은 우리를 어떻게 바꾸는가
브라이언 클라스 지음, 서종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예전 회사에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회삿돈을 횡령했던 팀장이 있었다. 그는 그 사건으로 강도 높은 감사를 받고 자진 퇴사했다. 워낙 좁은 업계여서 나는 그 팀장을 다시는 이 업계에서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경쟁사의 임원급으로 스카웃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그는 업계에 유명한 설계자로 통하며 유용한 회삿돈을 윗선에 제공하면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고 했다. 오너가 아닌 이상 부패한 임원들은 그를 원했던 것이다. 그가 떠난 자리를 메운 이는 이전에 부하 직원들에게 폭언을 일삼던 네로 황제 같은 인간이었다. 매출과 직결된 부서였고, 그 자리에는 인성이 어떻든 우수한 실적을 내는 자가 필요했다.



아마도 이런 폭군 같은 상사 이야기는 책 저자의 말처럼 사무실의 '정수기'처럼 너무나 흔해서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하지만 항상 의문이었다. 왜 그들은 그런 저질의 리더십을 가지고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걸까? 폭언과 닦달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텐데, 왜 저런 사람들이 상사가 되는 걸까? 회사는 대체 실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그를 그 자리에 앉히는 걸까?



정치인을 떠올리면 의문은 더욱 깊어진다. 최근에 집에 도착한 선거 공보를 보면 거대 양당의 후보들 공약이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보수와 진보의 경계도 전혀 없이 서로 복지를 늘리고 경제 위기를 타파하겠다 부르짖는다.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이뤄내겠다고 거듭 주장해야하기에 어쩔 수 없긴 하겠지만 정치는 이제 신념의 영역이 아니라 이미지에 올인하게 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이미지에 현혹되어 스스로 권력자의 됨됨이를 미리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은 과오를 저질렀으면서 자신의 기대와 다르면 배신감에 치를 떤다.


때로는 끔찍한 살육을 저지르는 괴물을 우리 손으로 뽑기도 한다. 히틀러 역시 선거로 당선됐다고 하지 않나.


권력이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걸까, 아니면 괴물 같은 사람이 권력자가 되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우리 손으로 그런 괴물을 뽑는걸까?



<권력의 심리학>은 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답이 없을 것 같은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4가지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 나간다.



첫째, 더 악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어 있는가?

둘째, 권력은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가?

셋째, 왜 우리는 우리를 통제할 권리가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이 우리를 통제하게 놔두는가?

넷째, 부패하지 않을 사람에게 권력을 주고 그 권력을 공정하게 행사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권력과 위계질서 그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점을 저자는 분명히 한다. 권력과 위계질서는 지금과 같은 대규모 인구를 가진 국가에는 필연적인 시스템이다. 권력이 사람들을 착취하고 죽이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협력과 공동체가 생겨나는 데도 일조한다는 것이다. 권력이 '불'과 같다는 비유는 너무나 탁월했다. 하지만 왜 권력에는 나쁜 이미지가 씌워지게 되었을까? 아마도 대부분 부패하는 권력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하며 권력이 사람을 폭군으로 만들었다고 믿는다.



이 점에 대해 저자는 완전히 뒤집힌 관점을 제시한다.


권력은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악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런 악한 사람을 권력으로 끌어당기고, 검증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앉히는 시스템에 있다. 저자가 사례로 든 미국 경찰과 뉴질랜드 경찰의 비교는 흥미로웠다. 군에서 남은 군수 장비로 무장한 미국의 경찰은 지역 공동체 주민들을 통제하고 진압하는 자리처럼 보인다. 강한 힘과 법을 집행한다는 미명 하에 부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의 상징이다. 소수자가 경찰이 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경찰은 신체적으로 우월한 백인 남성들에게 어울리는 직군이다. 그 결과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의 지원자들이 경찰 채용에 몰려들고, 민간인 폭행과 사살은 나날이 빈번해진다. 반면 뉴질랜드는 경찰을 지역공동체에 대한 끝없는 관심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직군으로 보고 여성, 유색인종 등 소수자들에게도 열린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효과적이고 권력 남용이 적은 경찰 중 하나로 거듭났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회위원들을 생각나게 만드는 사례였다. 실제 행해야 하는 본분은 국민의 대변인인데 권위와 힘을 과시하며 대접받는 자리로 인식되는 그들. 북유럽처럼 국회위원이 국민을 위한 봉사직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을까? 이 사례를 타산지석삼아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질 나쁜 불나방'을 걸러내는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다수가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권력자는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석기시대 조상들의 본성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키가 크고, 남성적이며, 힘이 세보이는 자를 더 적절한 권력자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혐오와 배제에서도 외적 요인이 주는 영향이 크다고 한다. 학연, 지연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게, 우리는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그 사람을 신뢰하고, 우리와 다르면 의심한다. 이게 엄청나게 비합리적일 때도 그렇다고 한다. 우리도 지역감정에 휩쓸려 오랫동안 선거를 치뤄왔다. 마치 동서로 분단된 국가처럼 판이하게 다른 지지를 보일 때도 있었다. 이런 분열을 없애기 위해서는 저자가 제안하는 개선안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만연한 미국의 채용과정에 한정되어 보이는 대안이지만 블라인드 채용 및 평가를 모든 경우에 활용할 것을 권한다. 또한 익명화와 공정한 평가 시스템과 같은 종류의 개입을 훨씬 이른 나이의 학생들이 삶에서 체화할 수 있도록 해서 어린 시절부터 겪는 심각한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선거에서 익명화는 어렵겠지만 개개인이 보다 공정한 평가를 내리는 의식화는 필요할 것 같다.



우리 인간은 석기 시대적 뇌와 관련된 비이성적인 이유로 잘못된 지도자들을 따르는 데 이끌린다. 나쁜 시스템은 모든 것을 악화시킨다.



내가 언급한 전 회사의 사례처럼 효율중심의 조직문화가 부패한 관리자를 승승장구하게 만들어주었듯, 잘못된 방향의 시스템은 마치 곰팡이가 생기기 쉬운 따뜻하고 습한 온도처럼 권력이 부패하는 너무나 좋은 환경이 된다. 그래서 저자는 '더 나은 사람을 끌어 들이는' 좋은 시스템에 대한 제안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 중에서 나는 나쁜 정치인들을 뽑지 않으려면 '결과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까지 검토한다'는 제안과 권력자가 가지는 책임의 무게를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줄 강력한 감시 시스템에 대한 제안을 새겨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야 국민 욕받이로 시행하는 정책 하나하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만 우리는 내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 심지어 당만 보고 뽑은 지방의회 의원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관심이 거의 없다. 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투표만 하는게 다가 아니다. 선출직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그 과정들을 하나하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한다.



수렵채집민의 역사부터 동물의 본성, 부패한 자들과 그들을 겪은 자들에 대한 생생한 인터뷰, 권력에 대한 수많은 연구들 등 다양한 이야기를 오가며 권력의 본질을 파헤치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잘 쓰여진 논픽션물이 가진 문학성도 탁월했다. 사례를 볼 때는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다만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명료하지는 않았다. 권력의 부패는 나쁜 시스템이 초래한다는 강력한 결론에서 곁가지로 새는 내용들도 더러 있어서 약간 혼란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우리 정치 시스템에 대해, 조직 문화에 대해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게 되는, 인사이트를 주는 책이었다. 나 역시 권력자에 대한 감시를 늦추지 않는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본다.



※ 네이버카페 '책좋사'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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