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다시 살다 - 오래된 도시를 살리는 창의적인 생각들
최유진 지음 / 가나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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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치원 정수처리장을 개조한 이색적인 카페에 다녀왔다. 뱀이 또아리를 튼 듯한 형상의 정부청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아파트와 상가들이 들어선, 모든 게 새것 뿐인 세종 도심과 달리 조치원은 아직 작은 담장이 쭉 이어진 정겨운 골목길들이 남아 있었다. 한때 인근에 맑은 물을 공급했을 정수처리장은 이제 용도가 폐기되어 어쩌면 이 마을의 흉물로 남거나, 개발의 발길 속에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공간은 청년들이 새로운 꿈을 키우는 로컬크리에이터들의 활동 공간으로, 청년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갤러리로, 빽빽한 빌딩숲을 벗어나 여유를 누리고 싶은 시민들이 즐길 카페와 노천 공연장으로 변모했다. 그러면서도 이 곳이 과거 정수처리장이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시설을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낡은 것의 새로운 쓸모를 찾아내는 보석 같은 변화를 볼 때 마음이 뭉클해진다.



<도시, 다시 살다>는 도시 재생 전공을 한 최유진 교수가 '좋은 도시란 어때야하는가?'라는 물음 아래 도시가 가져야할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써내려간 책이다. 책 속에는 저자가 유학시절 경험한 미국 도시들의 사례와 국내 사례를 비교해두어 흥미롭다. 



저자는 오래된 도시를 다시 살리는 첫번째 방법으로 '공동체의 회복'을 꼽는다. 참혹한 살인사건, 산업폐기물로 심각하게 오염된 땅, 급격한 산업 변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다양한 사례들 속에서 저자는 희망과 절망 모두를 읽을 수 있는 사례를 보여준다. 석탄산업의 몰락과 함께 사라져버린 탄광마을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정선에는 강원랜드라는 정부의 대규모 개발 투자가 이뤄졌지만, 이런 것들은 주민의 삶을 바꾸지는 못했다고 한다. 실제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스스로 일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때 마을은 다시 윤택해지기 시작했다고. 정부 주도보다 주민 주도로 이뤄지는 경제 공동체 건설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나 역시 새롭게 지어진 화려한 쇼핑몰보다 오래된 골목에 아기자기하게 들어선 작은 상점들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서촌, 대전의 신성동, 창원의 사림동과 같은 골목은 곳곳에 누구라도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가라고 집 앞에 화분을 내놓고, 다세대 주택 화단을 예쁘게 가꿔두었다. 마을 사람들이 제 공간을 가꾸려 노력할 때 그 공간은 정말 특별해지고 반짝 반짝 빛을 내는 것 같다.



"도시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남은 사람과 돌아온 사람이 연결망을 형성하기 위해 공동체를 조직하고 이 조직은 협동조합과 같은 형태로 진화하여 마을의 문제를 학습한다.

이 학습은 곧 마을에 내재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도시, 다시 살다> p66




또한 저자는 낙후된 지역을 싹 밀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지어 올리는 것보다 오래된 공간 속에 스며든 추억을 살리면서 '오래된 공간마다 이야기를 창조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현대적 활용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공동체 파괴를 막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내가 찾아간 조치원의 정수처리장이 이러한 사례 중 하나가 될 것인데, 저자가 제시한 사례 중에 제주 명월국민학교 사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당진의 분교는 완전한 미술관으로 탈바꿈한데 반해 제주 명월국민학교는 폐교되는 그 시간 그대로를 간직한 모습으로 새로운 커뮤니티가 되어, 그 공간에서 방문하는 이들에게 추억을 선사하고 있었다. 저자가 운동장을 가르며 느낀 바람소리, 새소리, 나무소리를 나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도시의 건물은 더 많이 빌 것이고 더 많은 사회문제를 만들어낼것이다.

비어가는 도시를 현명하게 축소해나갈 필요가 있다.

필요 없는 공간을 자연으로 채우고 정말 보존 가치가 뛰어난 건물은 지역의 특성에 맞게 재활용할 수 있는 계획을 짜야 한다."

<도시, 다시 살다> p130




마지막으로 도시가 품고 있는 '콘텐츠' 측면에서 살펴본다.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동네 서점과 '일상이 여행이 되고, 여행이 일상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관광두레 사업은 이미 알고 있는 사례들이었지만 저자의 감성적인 글과 함께 보니 희망을 불어넣는 씨앗이 심기는 듯 벅차오른다. 일전에 내가 살았던 지역 주변의 구도심이 관광두레 사업으로 구도심 탐방 지도와 해설 투어가 진행되었는데, 관심은 갔지만 동행해보지 못했던 것이 내심 아쉬워졌다.



저자는 도시를 살리는 방법은 지속가능한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세대에게 전해줘야하는 재화인만큼 잔혹한 개발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러면서 환경 보존의 가치만을 앞세워 경제적 풍요를 거스르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 되지 못한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문경의 로컬푸드 사례 등과 같이 경제적 자립을 위한 마을 공동체 사례들은 참으로 희망적이고, 최근엔 좀 더 사회적 가치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아 고무적이지만 아직 대부분의 지역 경제 활성화는 관이 주도하고- 그래서 천편일률적이거나 형식적으로 지역 특색을 내세운 전혀 경쟁력 없는 경제 활성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규모가 작은 일부 힙한 개개 소상공인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아 각종 사례를 실은 책들을 몇 권 읽었지만 이 책의 강점은 저자의 따스한 시선이다. '공동체와 함께 더불어 가치 있게 사는 삶'을 중요한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은 저자, 그래서 오래된 도시가 품은 인구감소, 지방소멸 따위의 위기감보다 새로운 희망이 더 잘 읽히고, 그 공간과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이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책의 편집이 다소 아쉽다. 저자가 몇 년간 전국을 돌며 찾아낸 재생 공간들, 책 속에 실린 무수한 사진 자료들이 너무 작게 나와 있어서 그 공간들의 특별함을 온전히 읽을 수 없었다. 페이지가 더 많이 늘어나는 문제 때문이었겠지만 보다 크고 감각적으로 제시됐으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도시를 다음 세대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할까.

우리의 앞선 세대는 풍요로운 도시를 물려주기 위해 일생을 헌신했다.

이제 우리는 그 토대 위에 이웃에 대한 '사랑'을 얹어야 한다.

서로를 배제하고 혐오하지 않는 도시의 건설은 언제든지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는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도시, 다시 살다> p366



급격한 경제성장 탓일까 우리는 연대보다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왔다. 공간의 가치도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질보다 부동산의 가격으로 평가되는 경향도 짙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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