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시아 마르케스 - 카리브해에서 만난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 클래식 클라우드 29
권리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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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아름다운 판형부터 소장가치를 불러 일으키는 이 시리즈를 나는 <차이콥스키> 이후 두 번째로 또 한번 읽게 되었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29번째 주인공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선구자이자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소설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이다. 어린 시절 내 주변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한때 나의 롤모델이었던 두 살 터울의 언니가 그의 책 <백년의 고독>을 인생 책으로 꼽았던 이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나에게 밀린 숙제와 같은 작가였다. 대학 시절 제목만 들어도 흥미가 돋는 그의 단편 소설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익사체>로 그의 세계에 입문해보려 시도했지만 낯선 서사와 난해함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첫 시도는 다음을 기약하지 못했고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로 다시 이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드디어 숙제를 해낼 수 있을만한 강력한 동기와 흥미를 얻었다. 이전 시리즈 <차이콥스키>에서도 느꼈지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그 인물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공감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잘 모르더라도 그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짚어가는 동안 새로운 흥미를 불러 일으킬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이번 가르시아 마르케스 편은 소설가 권리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과 그의 생을 연결시키는 탁월한 솜씨 탓에 문학 작품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제대로 자극되었다.



저자 권리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책에서는 그의 애칭인 '가보'로 부른다)의 문학적 원천인 카리브해가 있는 콜롬비아를 이미 한 차례 여행한 적이 있다. 그가 처음 여행했던 10년 전과 달리 가보는 콜롬비아 화폐 속 위인이 되었다. 가보의 문학 전반에 등장하는 유토피아와 같은 가상의 마을 '마콘도'는 우리나라 '홍길동'과 같은 익명의 이름에 대한 관용적 표현이 되어 콜롬비아 곳곳에서 이 이름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가보의 높은 위상을 짐작케한다. 



저자는 이전 여행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가보의 시선으로 다시 건져낸다. 약을 팔던 아버지, 강인한 어머니, 흙을 먹는 여동생, 바나나 학살을 겪은 외할아버지, 주술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로 그를 인도한 외할머니. 저자가 들려주는 가보의 가정사는 가보의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어 흥미롭다. 특히 여행에서 소개된 지역 중 마콘도의 배경이 된 아라카타카와 저자가 진정한 마콘도라 느꼈던 몸포스 지역이 인상적이었는데, 문명의 발전이 더디게 유입되어 가보가 살았던 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지역인 아라카타카에서 정전을 겪으며 '마콘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고독'이란 단어를 몸으로 받아들인다. '아라카타카보다 더 마콘도스러운' 몸포스는 여행자로서의 정체성을 지우고 마음껏 자유인이 될 수 있는, 현실의 고단함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행복 그 자체의 마을 같아서 여행 욕구를 자극했다.




부모님의 연애시절 이야기를 소설화한 가보의 대표적인 로맨스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배경인 카르타헤나는 또 어떠한가. 가보가 "고통 없는 고독과 바다가 끊없이 펼쳐져 있었다"고 표현한 카르타헤나는 눈부신 바다를 끼고 식민지 시대 유럽풍 양식을 가진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 사진 속에 담긴 낭만이 저절로 솟아날 것 같은 다채로운 색상의 집들은 그 거리를 걸어보고 싶게 만든다. 



가보에게 어머니를 대신해 사랑을 나눠준 거리의 여자들과 마지막 사랑인 아내 메르세데스, 사회주의자였던 그의 삶 속에 등장한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의 인연 등 파란만장했던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니 그의 소설들이 사뭇치게 궁금해졌다. 우리 정서와는 사뭇 달라 그의 삶이 지나치게 방탕하고 격정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가져오는 환상적인 분위기는 이런 남미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 아닐까. 



"내 기준에 '좋은 작가'는 책을 다 읽고 난 뒤 혹은 그 중간에라도 

'내가 글을 쓰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작가'다. 

그련 유의 작가들은 '이렇게 막 나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글을 쉽게 쓰지만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선사한다.

그야말로 독자는 한여름 밤, 한강 위의 폭죽놀이처럼 입을 벌리고 

그 진풍경에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가보는 바로 그런 작가다." (p223)



권리 작가의 말대로 가보의 흔적을 좇아 떠난 여행은 나에게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선사했다. 죽음을 앞둘 때 조차 노래로 자신의 생일을 축복했던, 보헤미안의 정서가 깊이 베인, 그러면서도 피비린내나는 현실을 비판하는데 주저하지 않은 이 흥미로운 인물을 만나며, 그가 부린 마법에 제대로 걸려버린 듯하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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