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언의 정원
애비 왁스먼 지음, 이한이 옮김 / 리프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식물이 주는 위안이 있다. 뿌린대로, 정성을 들인만큼, 정직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식물을 보면 온갖 부조리에 지친 마음이 조금 풀린다고 해야할까. 차갑고 촉촉한 흙을 토닥이다보면 번잡했던 마음도 가라앉는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한줄기 바람이 목 뒤를 스치면 어찌나 상쾌하던지. 가끔 나는 초록이 그리워 채소 이름도 하나 모르면서 남의 텃밭을 기웃기웃거리곤 했다. 언젠가 나만의 정원을 갖기를 꿈꾸며. 


"초록은 언제나 인간보다 더 나은 답을 찾으니까"


이 문구 하나에 이끌려 이 책 <릴리언의 정원>을 읽게 되었다. 저자가 전직 카피라이터여서 그런지 책은 내 예상과 다르게 위트있고 유머가 넘쳤다. 헐리웃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었다. 미국식 농담이 가끔 이해하기 어렵긴 했지만 술술 읽히는 페이지터너다. 식물의 가볍고 싱그러운 그 느낌 그대로라고 해도 좋겠다.




삼십대 중반의 릴리언은 자신의 집 앞에서 남편 댄을 사고로 잃는다. 그녀에게 남겨진 건 그의 사망보험금으로 대출을 다 갚은 집 한 채와 말괄량이 두 딸 에너벨과 클레어. 그리고 막 사는 것 같지만 언제나 그녀의 든든한 편이 되어주는 여동생 레이첼이 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릴리언의 출판사는 경기 침체로 구조조정을 눈 앞에 두고 있고, 그녀 역시 해고 위기에 놓인다. 그때 회사는 자신에게 블리엄 가의 원예 시리즈 책 속의 일러스트를 그리는 업무를 주고, 각종 채소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블리엄 가의 아들 에드워드가 하는 원예 수업에도 참석할 것을 요구하는데.



에드워드와 가까워지며 잡초로 무성했던 릴리언의 뒤뜰도 요정이 사는 듯한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뀌고, 육아와 일 사이에 파묻혀 자신의 삶과 감정을 돌보는 법을 잃은 릴리언에게도 변화가 찾아온다. 댄이 사무치게 그립지만 자꾸만 침착하고 친절한 에드워드에게 끌리는 릴리언. 사실 이 소설에서 초록의 정원보다 새로운 사랑이 그녀의 상처를 치유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딱딱한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햇살을 쐬게 하는 식물 기르기는 어쩌면 딱딱하게 굳은 마음에 사랑의 감정을 싹트게 만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



원예 수업을 함께 하는 다양한 인물들도 다채로운 이야기를 빚어낸다. 베테랑 원예가 레즈비언 교사 커플, 아내의 강요로 어쩌다 참석하게 된 은퇴한 은행원, 관심이 생긴 건 무조건 시작하고 보는 행동파, 어린 아들에게 뛰어놓을 정원을 선물하고 싶은 이혼녀. 그리고 남자를 유혹하는데 정통한 레이첼의 새로운 타깃이 된 프로 농부 밥. 마치 훈훈한 주말드라마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책 속에는 땅을 고르고 갖가지 채소를 길러내는 팁들도 담겨 있어 실제 정원을 가꿔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다. 





" '이 수업의 목적 중 하나는 여러분이 도시 안에서 자연의 세계를 보고, 

계절이 어떻게 흐르는지, 땅이 어떻게 다 다른지, 우리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배우는 겁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계절, 날씨, 주위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순환을 느끼지 못하며 살지요.' "



다른 무엇보다 정원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에드워드의 말이 마음이 두드렸다. 매일 실내에 갇혀 같은 온도, 같은 공기 속에 살다보니 계절이 오가는 것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아파트 정원이라도 돌며 생명의 순환을 느껴봐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컬처블룸리뷰단, #릴리언의정원, #애비왁스먼, #리프, #정원가꾸기, #로맨틱코미디, #독서기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