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심리 현대지성 클래식 39
귀스타브 르 봉 지음, 강주헌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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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 속에서 현재에도 여전한 모습을 발견할 때 소름이 돋는다. 어떻게 이걸 예언했지? 아니 인간은 이토록 변함이 없는 걸까? 어쨌든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이런 통찰력이 한 권의 책을 고전의 반열에 들게 만드는 것일테다.



19세기에 귀스타브 르 봉이 저술한 사회심리학서 <군중심리> 역시 그러한 책이다. 이 책은 많이 들어봐서 왠지 읽은 것 같은 그런 책 중에 하나였다. 그만큼 이 책 속에서 분석한 군중의 특성이 현재까지도 의미있게 회자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집단주의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군중심리'가 낳은 사회적 병폐들은 너무 흔해서 책을 읽지 않아도 '군중'이라는 단어가 뿜어내는 나쁜 뉘앙스를 알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책이었다. 읽고 나면 고카페인 각성제를 들이킨 냥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지금같이 큰 선거를 앞두고 온 나라가 시끄러운 상황에서는 더더욱!



귀스타브 르 봉은 머리말과 서론에서 그가 살던 19세기 후반 군중의 힘이 거세진 역사적 맥락을 짚으며 '군중의 시대'를 예견한다. 그에게 군중은 충동에 따라 범죄자도 될 수 있고 영웅도 될 수 있다. 이후에는 꽤 비판적인, 오직 '파괴하는 힘' 밖에 없는 존재처럼 묘사하지만 군중심리가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그는 이어서 '군중의 정신'을 면면히 분석한다.  '군중'을 물리적인 결합이 아닌 특정 감정이나 신념에 따라 결합된 '심리적' 집단이라 정의하며, 이렇게 군중 속에 들어간 개인은 자신의 고유성을 '상실'하고 감정과 생각을 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암시'와 '전염', 즉시 행동하려는 '충동성'과 '본능'에 따라 '무책임'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한다. 군중 속에 들어간 개인에게는 '이성'과 '논리'가 전혀 먹히지 않는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해도 군중심리에 휩쓸려 멍청한 짓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중은 순간 순간 주어지는 일시적 자극에 영향을 받아 너그러워지거나 잔혹해질 수 있고, 때문에 광기에 휩싸인 상태에서 살인과 약탈도 서슴치 않는다. 단순함과 과장은 모든 군중에게 공통적으로 나오는 특징으로, 신념이나 사상에 대해서도 명확한 이분법과 독선, 편협함을 보인다. 또한 군중의 도덕성은 대체로 낮지만 상황에 따라 과시하기 위한 심리로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보인다. 이는 르 봉이 군중심리를 민족주의와 결합시켜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는 지점과 맞닿아 있다.



군중을 움직이려면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강렬한 이미지를 제시해야한다고 분석한다. 또한 이런 이미지는 종교적인 성향을 띄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북한이 생각난다. 외부에서 본 북한은 군중심리로 운영되는 정권 같으니까. 어떠한 이성적 설명도 끼어들 틈 없는 완고한 벽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는 모래알처럼 위태로운 것이 아닐까. 



르 봉은 군중의 의견과 신념을 결정하는 간접 요인과 직접 요인을 분석하는데 이 장은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아주 차별적이고 낡은 편견에 가득찬 일반화의 오류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가 분석한 군중 속에서 탄생하는 '지도자'의 특징, '처음에는 지도를 받는 군중의 일원'이었지만 '사상의 신봉자'가 된 지도자는 거기에만 몰두하느라 상반된 의견은 모두 오류나 미신으로 치부한다는 것. 따라서 '군중의 지도자는 대부분 사상가가 아니라 행동가'이며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없고, 앞으로도 갖출 가능성이 무척 낮다'는 평가는 현재에도 유효해보인다. 



군중을 분류해놓은 장에서 인상적이며, 팩트 폭격을 가하는 건 '유권자 군중'을 다루는 장이었다. 그들은 미약한 이성적 추론 능력, 비판 정신 결여, 과민성, 지나친 단순화의 경향이 있어 후보자는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을 남발해도 괜찮다는 것. 우리 정치에서도 포퓰리즘이 얼마나 득세하고 있나를 돌이켜보면 스스로 군중 속에 휩쓸리지 않게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이 책에는 엘리트주의자적 관점에서 맹목적이고 광기에 휩싸인 폭도같은 군중의 힘을 통제할 수 있도록 권력자들이 군중을 특성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쓰여진 부분도 있다. 그래서일까. 훗날 무솔리니, 히틀러와 같은 비뚤어진 탐욕을 가진 독재자들에 의해 악용되었다. 또한 나는 나름대로 존경하지만 비판할 거리도 많은 <프로파간다>를 쓴 에드워드 버네이즈와 같은 홍보 전문가를 통해 대중의 지갑을 터는 일에도 활용됐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맹목적이고 무지한 군중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를 '개 돼지 취급'하려는 권력자들을 경계하기 위해.



개인적인 생각인데 현대지성클래식 시리즈는 정말 귀신 같은 타이밍으로 고전을 바라보게 만든다. 영화 '이터널스'에서 마동석이 길가메시 역을 맡으니 <길가메시 서사시>를 내놓지 않나, 대선 후보들의 윤곽이 점쳐지는 시점에 <군중심리>를 출간하질 않나. 시의적절한 고전 큐레이팅을 쌍수 들고 환영하게 된다. 



책 속에 언급되는 다소 낯선 유럽의 근대사를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적절하게 삽입된 삽화와 르 봉의 일대기와 각 장의 의미를 친절하게 짚어주는 강주헌 번역가의 해제는 고전 읽기에 대한 마음의 문턱을 낮춰주었다. 특히 책을 읽고, 또 현실을 바라보며 민주주의 한계를 느끼고 있을 찰나에 던져준 해제 속 문장 '민주주의 희망은 문제를 해결하고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집단정신'의 진정한 힘에 달려 있음'이 마음을 울렸다. '평민이 지배하고 야만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옛날 사람 귀스타브 르 봉의 열받는 말에 반격의 하이킥을 날려주려면, 누가 가르키는 손 끝을 향해 움직이는 군중이 아닌 마음 속 신념으로 뭉치는 평민들의 진정한 '연대'가 필요하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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