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 -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최인철 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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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보니 전에는 하지 않았던 일이 '지역 맘카페 활동'이다. 활동이라 하긴 머쓱할 만큼 눈팅만 하고 있지만 아이 키우는데 필요한 정보를 묻고 도움을 받기에 최적의 커뮤니티임에 틀림없다.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던 시절 맘카페 여론몰이로 선량한 자영업자가 금전적 손해를 보았다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맘카페에 대한 편견이 없었던 건 아니다. 예민하고 불화를 조장하는 집단. 하지만 가까이서 맘카페를 보다보니 내 편견에 퀘스천 마크가 달렸다. 실제 맘카페에선 가슴 훈훈한 나눔과 힘을 합쳐 해결에 나서는 단단한 연대가 심심찮게 벌어진다. 그들은 혐오의 가해자이자 왜 '충'자를 단 혐오의 대상이 되었나.



<헤이트 Hate>는 2020년 T&C재단에서 주최한 'Bias, by us(우리에 의한 편견)' 컨퍼런스를 엮은 책이다. 이 책을 펴낸 T&C 재단의 김희영 대표는 개인사로 오랜시간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자신을 모욕한 악플들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다 가해자들이 모종의 의협심과 그들 나름의 정의감, 공감을 기반으로 한 감정으로 그와 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비뚤어진 공감'. 그녀는 이 키워드로 혐오라는 감정의 기원부터 현대사회에 만연한 혐오 감정 확산 문제, 혐오가 낳은 비극의 역사를 아우르는 컨퍼런스를 기획했다.



이 책의 도입부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우리시대 오피니언 리더들의 추천사들이 무려 6개나 실려있다.  '혐오'는 우리 시대의 화두이자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해결해야할 과제인 것에 모두가 이견이 없는 것이다. 추천사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글이었다. 그 중에 '선택적 과잉 공감'을 경계하며 쓴 장대익 교수의 추천사 제목을 이 글의 제목으로 차용했다. 하하호호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쌓여가는 비뚤어진 공감 속에 상대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서슬퍼런 칼날이 숨겨있는 것 같아 섬뜩해진다.





1부 '우리 안에 숨은 혐오라는 괴물'에는 최인철, 홍성수, 김민정, 이은주 교수가 혐오의 기원부터 온라인 상에 퍼지게 된 혐오 감정의 확산 원리에 대해 파고 든다. 서두를 연 최인철 교수의 강연에서 혐오를 '생존과 공감의 파편'으로 본 시각이 크게 와닿았다. 흔히 혐오를 '공감의 부재', 혹은 '결핍의 결과물'로 생각하기 쉬운데, 혐오는 오히려 공감이 과잉되어 특정 집단에 편향되게 되면 나타난다는 것. 혐오는 자기 집단에 대한 애착, 생존본능, 사랑 이런 것들이 지나쳐 오작동된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집단주의가 강한 사회이고 특히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은 집단성을 더욱 강화시켜 혐오가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집단적 공감을 기반으로 한 혐오가 위험한 것은 혐오를 정당화하고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형태로 교묘하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이 칼이 될 때>의 저자 홍성수 교수는 우리 역사에서 위기 상황에 더욱 빈번하게 출현했던 혐오사례들을 꼬집으며, 혐오는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은 물론, 혐오가 진짜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또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게 하기 때문에 혐오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지는 두 미디어 학자들은 침묵의 나선 이론과 같이 여론이 작동하는 방식으로 혐오 표현이 기승하는 현상을 분석하고, 소셜서비스를 통한 개인화 서비스가 '필터 버블'과 같은 편향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것은 혐오발언을 반대하는 용기있는 목소리가 있을 때 혐오의 확산이 잦아든다는 연구 결과이다. 때문에 이은주 교수는 혐오발언을 교정하고자 하는 시민 정신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피력했다.



2부 '가슴 아픈 역사가 전해주는 메시지'에서는 이슬람 포비아, 홀로코스트, 기독교에서의 종교적 박해, 마녀사냥, 아프리카에서 자행된 인종차별과 학살 등을 다루며 혐오가 낳은 재앙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들려준다. 혐오의 극단화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 역사를 통해 돌아보며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홀로코스트는 혐오가 절멸과 학살로 이어지는지 단계적으로 보여주는 원형과도 같은 사건이라 한다. 그래서 최호근 교수가 제시한 제노사이드의 10단계는 편견이 어떻게 끔찍한 살육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슬람 포비아와 같은 특정 종교와 인종에 가지게 되는 막연한 혐오의 감정이 사실은 서양이 벌인 분쟁의 역사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슬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우리의 판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 장에서 다소 서양 중심으로 혐오 사례들이 열거되어, 우리 나라에도 현재진행형인 제노포비아의 현실에 대한 강연자들의 생각을 만났으면 했는데 이런 점이 드러나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나도 모르게 혐오에 동조하거나 방관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 성별에게 가해지는 차별적 언사에 침묵했고, 조선족이나 중국인, 이슬람, 동남아시아인들, 난민들 등에게 가해지는 제노포비아에는 어느새 둔감해져 나도 가해자가 되었다. 심한 혐오 표현을 마주해도 방관했다.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반대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런 나의 행동 하나 하나가 이 사회의 혐오를 키우는 음습한 환경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 속 강연자들은 제도적인, 법적 장치도 중요하지만 우리 개개인의 시민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 역시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과 마음가짐, '무오류성'을 경계하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성찰적 태도를 갖는 것. 뻔한 듯해도 자주 망각하고 사는 이런 마음이 혐오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에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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