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점가 스테디셀러에서 여러 번 마주쳤던 <라틴어 수업>. 나에게 라틴어란 외계어와 마찬가지였기에 제목에서 묘한 거리감을 느꼈고, 그 유명세에도 읽지 않았다. 하지만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이라는 부제를 단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기독교 신자인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내가 줄곧 품고 있는 의문을 해소해줄 것만 같은 제목이었다. 


첫 번째 수업은 건너 뛰고 두 번째 수업부터 듣고 있는 게 염치없게 느껴졌지만 일단 읽기로 했다.



매사 의심이 많고 세상사에 맹목적인 건 절대 있을 수 없다 믿는 나는 무교이다. 종교가 없을 뿐, 기도는 자주 한다. 거의 원시수준의 종교관념을 가지고 자연물에 깃든 영험함을 더 믿는 편이랄까, 고령의 나무, 정월이나 추석에 뜬 보름달, 깊숙한 암자에 있는 이끼 낀 탑 등이 보일 때는 어김없이 기도한다. 한번은 대만에서 연인을 만들어주는 걸로 유명한 사찰에 갔는데, 이름과 주소까지 읊어야 기도빨이 제대로 듣는다고 해서 중국어로 구체적이고 절절한 기도를 드리고 왔다. 신에게 비는데 있어 내가 이렇게 철저한 사람이다.



하지만 종교에 있어선 항상 한발작 뒤로 물러서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왜 종교는 사람들을 그토록 신실하게 만드는 걸까.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유럽여행을 하며 마주했던 하나같이 화려한 성당들, 낮은데로 임하라고, 사랑과 나눔을 강조하는 종교는 왜 끝내 화려한 신전을 목표로 하는 걸까?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는 모두 하나의 신에서 파생했는데 그토록 치열한 반목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걸까? 




공교롭게도 내 주변에는 독실한 종교인들이 많다. 그 중에서 매일 살을 맞대며 살아가는 남편은 태어날 때부터 종교 공동체 속에서 자라 삶과 종교를 떼어낼 수 없을 정도이다. 그와 나는 사고방식부터 어떻게 다를까. <믿는 인간에 대하여>라는 책 제목은 그래서 내게 확 꽂혔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을 조금이나마 알려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을 읽는다해서 남편의 신실함을, 그 맹목적임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 책은 종교인의 사고방식을 파고든 책이 아니다.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종교의 힘이 약해진 시대에 참된 종교인으로서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자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어른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그래서 읽고 나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스스로를 성찰하고 믿음의 이유를 탐구해왔는지 오롯이 느껴진다. 



가톨릭 신부였던 저자는 이제 한 명의 신앙인으로 돌아가 법학 대학원에서 유럽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라틴어 문법의 무자비함 때문인가, 그 언어에 통달한 사람은 모든 방면에도 천재적인 해박함을 보이나보다. 책은 서양사, 중동사, 종교사, 법과 정치사를 종횡무진하는 역사서가 되었다가, 한편으로는 여행서가, 또 한편으로는 존재를 사유하는 철학 에세이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2019년 '종교의 박물관'과 같은 이스라엘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서로를 증오하고 배척하는 현장을 두 눈으로 목도하며 참된 종교인으로서의 자세를 고민한다. 기도를 드리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지 깊이 탐구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은 무엇보다 현재진행형이라 인상 깊었다. 저자는 코로나 19가 그간 '교리에 매여서 내적으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신앙을 깊이 들여다볼 수 없었던 사람'에게 '진정한 신앙에 초대된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 한다. 하지만 방역수칙을 어긴 일부 종교단체 탓에 한국사회에는 이들 종교에 대한 혐오가 확대되었다.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일요일 집단예배를 고수하는 일부 무리들은 세속의 틀에서는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기적 집단으로 치부되었다.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헌법상의 해석을 통해 객관적인 답을 찾는다. 종교를 가지거나 가지지 않을 자유는 절대적 자유지만 종교를 실현할 자유는 공동체에 피해를 주지 않는 상태라는 조건 하에서 허락된 상대적인 자유라고. 실제 유럽은 이 점을 모든 종교인들이 이해하고 있고, 미국 역시 판례에 있어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한국에서는 명확한 합의가 없어 논란이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나(우리)는 종교적 가르침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하고자 하는 것을 행할 때 나와 내 공동체는 어떤 이득이 있는가?"

한동일 <믿는 인간에 대하여> p137



"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신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도 인간입니다.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신을, 인간의 욕망에 따라 옹졸하고 속 좁은 또 다른 '인간'처럼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

한동일 <믿는 인간에 대하여> p242




신은 자신에 대한 찬미도, 화려한 성전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인간이 필요에 의해 신을 불러 자신의 욕망을 투영했다. 인간이 가진 고통은 서로 간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이라 그 안에서 풀어야한다는 것. 종교인이 아니어도 공동체 속에서 필요한 태도이 아닐까. 가급적이면 빠른 시일내에 첫 번째 수업도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네이버카페 '리뷰어스 클럽'에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