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토끼를 따라가라 - 삶의 교양이 되는 10가지 철학 수업
필립 휘블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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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에게 이상한 나라가 그랬듯이, 우리에게도 진실은 이상하면서 신기하다.

우리는 그게 다 무엇인지도 모른 채 놀랄 뿐이다." (p422)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처음 철학적인 질문에 빠져들었다. 책을 좋아했던 작은 삼촌이 나에게 선물해 준 '소피의 세계'를 펼치면서 생전 듣도보도 못한 고대 철학자들을 만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접했다. 특히 소피가 자신의 은신처에서 펼쳤던 편지 속에 '너는 누구니?'라는 메시지는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살아왔던 나의 세계가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나라는 존재는 그리고 인간의 의식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이 책의 제목 <하얀 토끼를 따라 가라>를 접하고 나는 철학을 쉽게 풀어 쓴 교양서일 줄 알았다. 독일 <슈피겔> 선정 철학 분야 10년 연속 최고의 스테디셀러라니 많은 사람들이 철학 입문서로 선택한 책이 아닐까 지레짐작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입문서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미 시대순으로 정리된 철학 교양서를 한 권 제대로 읽고 하이데거니 비트겐슈타인이니 후설이니 하는 현대철학자들을 접하며 머리를 쥐어 뜯을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10가지를 꼽아 제시한다. 느끼다, 말하다, 믿다, 꿈꾸다, 행동하다, 알다, 즐기다, 생각하다, 만지다, 살다는 우리 삶 그 자체이며,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답이 없다고 여겨지지만 한번쯤 품어봤던 의문들이다.


감정은 선천적일까? 

언어는 선천적일까? 

꿈은 무슨 기능을 하는 걸까? 

의식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신은 정말 존재할까?



특히 인상적인 장은 꿈을 논하는 3장과 의식에 대해 논하는 8장이었다. 꿈은 우리 무의식에서 오랫동안 욕망하던 것의 발현이라고 우리는 흔히 알고 있지만, 렘수면 단계에서 나타나는 기억의 조합일 뿐이다. 하지만 왜 영화와 같은 스토리가 있는 꿈을 꾸는 것인지, 대체 꿈이 우리 삶에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지는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답을 찾을 수 없다. 



의식 역시 답을 찾을 수 없기에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다. 인간의 뇌는 모든 감각을 느끼게 하고 경험을 축적하게 하여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인간의 뇌와 같은 구조로 만들어진 컴퓨터나 인공지능에게 우리와 같은 의식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의식은 그 정의를 내리는 것도 어렵기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논하기가 어렵다. 이렇듯 꿈과 의식은 아직 답을 찾을 수 없고 현재 진행형인 논쟁이기에 이 책에서 소개한 다양한 가설과 실험 결과가 더욱 흥미로웠다.



저자가 서문에 언급하듯이 우리가 철학을 접하는 방식은 '오랜된 문헌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다. 영혼과 도덕과 정답이 없는 듯한 추상적인 질문에 대한 위대한 철학자들의 답을 꾸역 꾸역 주워먹다보면 철학이 내 삶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뜬구름 같을 때가 많아서 괜히 어렵게 느껴졌다. 사실 철학을 계보대로 정렬시켜 공부하는 건 철학이 앞선 이의 주장에 반박과 대안이 거듭되어 왔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철학은 어떤 주장의 근거가 타당한지 따져보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뭇 다른 철학 수업을 펼친다. 



이 책은 자연 철학이나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이원론으로부터 시작하는 전통적인 철학 교양서와는 궤를 달리한다. 다루고 있는 주제부터 다르다. 지나간 고대 철학자들의 현실적 문제와 괴리된 영혼이나 도덕 같은 주제보다는 여전히 현존하는 인간을 이루는 10가지 문제에 대해 다루는 데다가, 그 방식이 사뭇 과학적이다. 논리학이나 뇌피셜 같은 사고실험보다 연구와 검증으로 구해보려했던 실험 결과를 풍부하게 가미했다. 과학적인 실험 속에서 철학적 주제를 찾는 재미도 발견할 수 있다. 아마 철학이 던지는 정답 없는 질문에 길을 헤맸던 사람이라면, 이 책은 이상한 나라에 진입하기 위한 선명한 길잡이 '하얀 토끼'가 되어 줄 것이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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