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혼자 자취를 하던 동네에는 여성안심귀가zone이란게 있었다. 으슥한 골목이 많은 오래된 동네여서 시에서는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환경 정비 사업을 통해 일부러 밝은 가로등을 여러대 설치해뒀다. 실제로도 꽤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빛이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통제하고, 어둠은 인간의 잔혹함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무대가 되는 것일까?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라는 제법 낭만적인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산업화 이전 유럽과 미국 사회에서 밤은 어떤 역할이었으며, 사람들은 밤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조명의 발달로 밤을 잃어버린 현재와 어떻게 다른지를 미시적인 사료를 가지고 살펴본다. 이 책이 가진 미덕은 거대한 역사의 줄기를 보여준다기 보다 '밤'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뻗어나가는 가지를 통해 아주 큰 풍경화를 조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과거에 발생한 개개인의 아주 디테일한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문체가 굉장히 문학적이다. 역사서를 읽는다기보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열전을 보는 기분이랄까. 


밤은 낮과 달리 시각이 제한되어 두려움과 위험이 증폭하는 시간이었다. 밤의 습한 공기는 해로운 어떤 것으로 취급받았으며, 성서에서는 어둠을 악령이나 사탄과 동일시했다. 밤의 공포가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인 도깨비불, 마녀, 악령 등의 초자연적 존재는 어둠과 그림자가 가져다주는 스산한 배경과 어울려 아이들에게 조심해야할 규범을 전하는 이야기로 구전되었다. 


밤은 사고나 범죄가 일어나기에도 좋은 시간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지형에서 사람들은 물이나 꺼진 땅에 빠지거나, 넘어져 큰 부상을 입었다. 양초나 랜턴 등의 인공조명은 낮의 시간을 약간 연장해주며 인간의 활동을 좀 더 원활하게 지속해줬지만, 아직 발전되지 못한 형태는 화재의 위험을 품고 있었다. 타기 쉬운 재질로 만들어진 집은 인공조명을 부주의하게 다룬 탓에 쉽게 불타올랐고, 많은 인명과 재산을 앗아갔다. 그래서 고의적인 방화는 사형에 이를 정도로 무거운 범죄 행위가 되었다. 

절도와 강도 같은 범죄의 위험도 만연했다.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밤의 으슥함 이용해 벌어지는 범죄는 그래서 낮의 범죄보다 더 중하게 취급되었다. 


하지만 밤이 항상 이렇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만은 아니다. 밤은 낮에는 누리지 못하는 일탈의 시간이었다.

낮에는 남들의 시선에 둘러싸여 지켜야했던 사회 규범이 밤에는 그 경계가 흐려졌다. 귀족들은 자신이 지켜야할 품위와 예의범절에서 벗어나 밤에 가면이라는 익명성에 기대 저급한 쾌락에 취하거나, 음탕하고 충동적인 본성을 드러냈다. 평민들은 낮의 고단한 노동에서 벗어나 술집에서 방탕하게 즐기거나, 여성들의 경우 노동을 하며 공동체와의 유대감을 쌓는 모임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때로는 이러한 일탈은 집단적인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밤에 일어나는 범죄들은 유난히 충동적이었다.  


하지만 국가적인 체제 내에서 밤은 '휴식해야할 시간'이다. 내일의 노동을 위해 활동을 통제해야하는 시간. 그래서 밤을 '문을 닫아야 할 시간'으로 명명하며, 밤에 벌어지는 활동을 더욱 위험한 것으로 치부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70년대까지 통행금지를 둬서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해왔다. 밤에 일어나는 범죄나 사건사고를 막기 위함도 있겠지만 그 속에는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이 늘어나게 되면서 잠은 경계해야할 나태함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현대의 우리는 옛날 사람들이 지금같이 낮처럼 밝은 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날이 어두워진 시간부터 잠들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예전에도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질병이나 주변 환경 등으로 불면에 시달린 사람들에게 잠을 자지 못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고통스러웠다. 


이 책에서는 산업화 이전 사람들의 일상을 다루고 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현재의 일상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물론 밤에도 낮처럼 환해 동일하게 활동할 수 있는 지금은 예전보다는 사회적 규범의 경계가 덜 흐려진 것 같지만, 밤은 여전히 낮보다 충동적이고, 감성에 젖기 쉬운 시간이다. 밤에 더 흥청망청 흐트러지기 쉽고, 새벽의 고요는 상상력을 더 키워주기도 하니까. 게다가 밤이 빚은 무질서에서 기인한 범죄와 폭력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밤을 잃어버렸나? 마법과 같은 미신을 더 이상 믿지 않기에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그리고 저자가 말한대로 '밤하늘에 남아 있는 아름다움, 어둠과 빛이 바뀌는 주기, 낮의 빛과 소리의 세계로부터의 규칙적인 안식처'는 밝아진 조명 탓에 손상됐다. 


달과 별을 바라보며 길을 찾았던 여행자의 낭만도 이제는 더 이상 누릴 수 없다.어둠 속에서 즐겼던 은밀한 사생활도 밤에 유모나 할머니 곁에서 듣던 무서운 이야기도 소멸했다.


책을 덮으며 빨래터에서 고된 노동과 폭력의 시간을 비슷한 처지의 아낙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잊어가는 밤이 눈 앞에 그려졌다. 친밀한 공동체, 우리가 잃은 건 밤이 아니라 이런 것이 아닐까?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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