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 1~4 세트 - 전4권 - 특별합본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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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길산으로 허명이 있다 하나 이것은 조선 팔도 방방곡곡의 백성들이 역병과 굶주림에 죽고 싸우며 이룬 이름이지 내 이름이 아니다. 

비록 이 작은 육신이 네게 죽어 썩어져버린다 한들 

너는 장차 수없이 생겨날 장길산과 활빈도를 어찔할 터인가."

황석영 <장길산 4권> p934 / 창비


“극적(劇賊: 큰 도둑) 장길산은 몹시 사나워 여러 도를 왕래하면서 도당을 많이 모으고 있다. 이미 10년이 경과했는데도 아직 잡지 못했도다. 지난번 양덕에서 군대가 포위해 잡으려 했지만 끝내 잡지 못했으니 그 음흉함을 알만하다.”(p944)



역사 기록에서 장길산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마지막 대단원의 4권. 길산의 최후는 어떻게 될지 몹시도 궁금한 마음이었다. 



4권에서는 여환을 주축으로 실패해버린 역모와 관군과 맞설 자금을 마련하는 길산의 혈당들 이야기, 그리고 숙적인 최형기와의 마지막 대결이 그려진다. 



미륵의 뜻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모인 사람들. 길산의 활빈도, 운부 대사가 꾸린 각지의 승병들, 오계준을 중심으로 한 해서의 무계, 여환이 조직하는 지방의 미륵교도, 양주의 검계와 이경순. 여환과 검계의 정원태는 왕조가 망하고 미륵이 도래하여 용화세계를 만든다는 신서를 퍼트리고, 백성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들의 섣부른 활동은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데, 확장된 자신의 세와 일어난 민심을 믿고 기존에 약조했던 거사 일정을 앞당겨버린 것이다. 결국 거병을 함께 일으키기로 했던 다른 세력들은 실패를 예감하고, 참여했던 백성들을 구하고 다시 새로운 역모를 계획하기 위해 그들과의 연결고리를 잘라 버린다. 결국 여환이 일으킨 거사는 마치 사이비 교주가 만들어 낸 분란처럼 취급되어 가담했던 자들을 처형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여환과 원향의 애달픈 사랑은 신비로우면서도 안타까웠다. 오누이처럼 자라나 뿌리가 하나된 연리지처럼 영혼까지 함께 한 두 사람. 마지막 이승에서 진정으로 부부가 되어 맺어질 때의 모습이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한편 박대근은 인삼 재배에 성공하여 이를 바탕으로 청과의 금지된 거래를 터나가고 언진산에 새롭게 터를 잡은 길산의 활빈도는 잠채를 통해 생산물을 만들어낸다. 이는 기존에 지방 부호들이나 탐관오리를 털었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빈을 도모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청에서 유황과 함석을 들여오면서 관군에 대항할 총포와 화약들로 무장하고, 사주전으로는 관에 타격을 주고, 각 상단을 거점으로 사람을 모으고, 마을을 이뤄 황민들의 생계를 꾸릴 기반을 마련해주는 방식으로 활빈을 이어가는 길산의 혈당들.



역시... 처음부터 못미더웠지만 명은 참 길었던 고달근이 화근이 되었다. 그는 큰 이익을 꾀하다 관가에 검거되고, 최형기의 꼬임에 넘어가 밀정 노릇을 하게 된다. 이 얄미운 인간은 그 덕에 선달까지 되지만 길산이 그를 편하게 살게 놔두지 않지. 배신한 그는 처단 당한다. 


구월산을 토벌할 때와 마찬가지로 길산을 잡기 위해 촘촘한 포위망을 만들고 조여오던 최형기. 가장 아픈 고리인 가족들을 몰살시키고 길산의 주변 심복들을 죽여나가는데, 악귀가 따로 없다. 길산에게는 끔찍한 악몽 같은 최형기도 결국은 길산의 손에, 아니 길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백성들의 한 앞에 운명을 다한다.


기대했던 길산의 운명은....? 

그의 이름은 전설처럼 조선을 떠돈다.

억압과 고통 속에 놓인 백성들에게 해방의 이름으로 길이 길이 남겨진 장길산.


거의 4천페이지에 육박하는 대하소설을 읽으며, 황석영 작가의 필력에 새삼 감탄한다. 마치 그 시대를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엿본듯 생생한 양민들의 농짓거리, 얼이 살아있는 재인들의 굿판, 무예를 가진 이들의 서늘한 액션 활극,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추격전 등을 아주 종합세트로 부려놓는다. 거기에 구전 설화와 민담 등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재미 포인트이다. 


상상력은 또 어떠한가. 이 소설 속에서는 묘옥과 이경순을 제외하고는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실존인물들이라는 데, 역사 속 이름 한 두 줄을 바탕으로 팔딱팔딱 뛰는 생명력 넘치는 캐릭터들을 빚어냈으니 실로 놀랍다. 마치 그 시절을 함께 산듯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감정과 풍경 묘사 덕분에, 책을 다 덮고 나서도 조선의 핍박 받는 백성이 된 듯 아련하게 장길산을 떠올려보게 된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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