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 1~4 세트 - 전4권 - 특별합본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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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을 구별하여 사람끼리의 정마저 끊는 자들이 과연 누구겠는가.

개천은 그것이 틀림없는 양반 사대부들의 짓이라고 여겼다.

저희들만 대대손손이 귀하게 살아보려고 구별을 만들고는, 아랫것들에게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도록 억누르는 것이 아닌가."

황석영 <장길산 3권> p431 / 창비



3권에서는 당시 조선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참혹함이 두드러진다. 조선 각지에서 대기근이 이어지고, 거듭되는 흉작에 세곡을 납부하고 나면 백성들은 일을 하고도 굶주려야 했다. 일할 힘도 없이 해바라기처럼 볕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이들은 분노할 힘도 없이 구휼만은 기다리는데. 

길산의 녹림당은 백성들의 가슴 속에 사그라졌던 삶에 대한 의지를 일깨워주는 듯하다.



이렇게 온 백성이 고통받는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가산만을 불리는 부패한 관리들과 무도한 양반들이 있으니, 이들이 녹림당의 타깃이 된다. 이들의 재물을 털어 백성들에게 고루 나눠주는 활빈 활동이 이어진다. 활빈 활동을 보고 있으면 마치 '오션스' 시리즈나 영화 '도둑들'을 보는 듯 박진감이 넘친다. 제각기 매력있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녹림당 일당들. 김기와 강말득은 기찰조로 한편의 멋드러진 연극을 꾸미며 자신들의 타깃 속에 깊게 침투해 들어간다. 이어 나서는 건 마감동, 오만석, 강선흥 등 힘 깨나 쓰는 무리들. 특히 마감동의 검술 대결은 무협지를 보는 기분이 든다. 


길산은 대결에서 두드러지진 않지만 활빈의 마무리를 감동적으로 장식한다. 인간답게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그는 백성들의 비참한 삶을 어루만지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독려한다.


3권에는 한양을 중심으로 신분제를 뒤집으며 세상을 바꾸겠다는 무리가 일어나는데, 이런 역모 사건과 관련하여 한양 조정에서 일어나는 정세 변화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정원태를 중심으로 한 검계 무리와 양반가 사노비들을 중심으로 뭉쳤던 살주계, 이들은 부호와 양반가를 덮치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게 되고, 본인 역시 무뢰배 생활을 해서 그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는 포도종사관 최형기는 이들을 토벌하러 나선다.


살주계는 최형기에 의해 거의 와해되고, 검계 마저 은거지를 들킬 찰나에 모신이 꾀를 써서 한양 조정 내 노론과 소론의 분열 과정을 잘 이용하여 최형기를 파직하게 만든다. 우대용에게 배를 대주는 걸로 잠시 나왔던 모신, 이 사람도 보통 사람이 아니다. 김기와 합치면 최고의 모사를 만들어 낼 듯!


최형기는 그렇게 직에서 물러나 장사치로 재산을 불려나가고 있는 가운데, 장길산의 활빈이 조정에까지 소문이 나자 급히 황해도 관찰사로 파견한 승지 신엽에게 발탁되어 구월산 녹림당을 토포하는 토포장이 된다. 그 역시 만만치않게 영리하고 전략적이어서 지박령으로 이미 은거지를 옮긴 장길산을 잡지는 못했지만, 길산과 녹림당의 식솔이 있는 탑고개와 마감동과 오만석이 다스리는 된목이골은 초토화되고, 마감동은 최형기와의 격투 끝에 운명을 달리한다.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짓누르는 양반가들의 폭압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애달픈 백성들이 더욱 눈에 띄는 3권이었다. 조선은 같은 민족을 노예로 삼아 부렸던, 세계사적으로 이례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겉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끼리 한 무리를 마치 가축처럼 부리는 야만. 생명에 귀천이 있다고 믿은 오만. 양반의 일은 죄가 되지 않고, 양민의 일은 너무도 쉽게 죄가 되는 부조리함. 여태 읽었던 흑인 인권에 대한 책 속 비참한 삶과 조선 노비나 무고한 양민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음이 너무나 충격이었다.  


장길산에게는 정적으로 등장하는 최형기의 존재는 그래서 특별하다. 그의 부모는 아전출신으로 양반이 되지 못하지만 그에게는 출세욕이 그득하다. 하지만 그가 일생 양반으로부터 받은 멸시는 속에 양반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자리잡게 했다. 그래서 구월산 녹림패를 토벌하며 마주치는, 버려진 백성들의 한과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는 이들의 강한 신념은 그를 흔들어놓는다. 


"최형기의 마음속에 잠깐의 동요가 일어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한 줌도 못되는 감정일 뿐이었다. 

그는 벌써 예전에 벼랑의 저쪽으로 건너뛰어버렸던 것이다. 

최형기에게는 저쪽은 전혀 상상이 닿질 않는 전인미답의 세계였다. 

(중략)

이 나라는 내가 선택한 사람들의 나라이다. 

지금 나는 뚫어지고 금이 가기 시작한 집의 담벽을 수리하러 파견된 자가 아닌가. 

더욱 견고하게 빈틈없이 막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형기는 어쩐지 마음이 허전하고 참을 수 없도록 답답하였다. 

정말 내가 택한 사람들은 하늘이 용납한 자들인가? 

하늘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수백 년간이나 굳건하게 수천 리의 국토를 다스려왔던 것일까. 

최형기는 그의 전립 꼭대기로 아득하게 뻗어나간 조정의 불가항력적인 힘과 높이를 가늠해보는 것이었다.

"무도한 도적들은 반드시 평정되어야 한다" "

황석영 <장길산 3권> p921~922 / 창비



앞으로 최형기는 어떻게 변할까?

또 하나의 매력적인 캐릭터 마감동, 대결마다 무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그의 아름다운 검술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큰 희생을 치룬 구월산 녹림패, 이들의 다음은 어떻게 될지 4권이 기대된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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