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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볼가강의 영혼 ㅣ 클래식 클라우드 27
정준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그에게는 국경과 장벽이 없었다.
여러 나라말에 능통했던 그는 세계인인 동시에 토착민이었다.
그의 우상인 모차르트처럼 된 것이다."
정준호 <차이콥스키> p18p / 아르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최근 들어 태교를 핑계로 클래식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읽을 때마다 정말 난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이었다는 걸 느낀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나의 첫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차이콥스키>.
거장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는 컨셉의 이 책은 차이콥스키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의 삶을 관통한다. 차이콥스키가 태어난 우랄산맥의 변두리 지역인 붓킨스크에서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를 넘어 서유럽으로 넓혔던 그의 광범위한 활동 무대. 차이콥스키는 평생 19개 나라의 153개 도시를 방문했단다. 그러면서도 왕성하게 작품을 남겼으니, 마치 그의 삶은 작곡을 위해 헌정된 것 같다.
가장 러시아적이면서도 그것에 갇히지 않고 국제적인 음악으로 널리 뻗어나갔던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변방에 머물렀던 러시아 음악을 클래식 음악의 본거지였던 서유럽과도 비등한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런 그가 본인이 숭배했던 모차르트처럼 어린 시절부터 신동 취급을 받으며 음악가의 길을 걸어온 게 아니라는 점은 흥미롭다. 소년 시절에 이미 대부분 유행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는 재능을 뽑내긴 했지만, 그는 공무원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직 사회로 나가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 법률학교에 입학한다. 부모는 그의 재능을 그리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삶을 바꿔놓은 터닝포인트는 어머니와 함께 본 글린카의 오페라 <차르에게 바친 목숨> 이었다. 그는 법률학교에서 같이 음악의 꿈을 품었던 세로프와 비평가가 된 스타소프, 그리고 푸시킨의 시를 달달 외우며 서로의 예술혼을 인정해주던 아푸흐틴 등과 함께 어울리던 그는 결국 법무부 공무원 일을 그만두고 예술가의 길을 택한다.
차이콥스키가 동성애 성향을 가졌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래서일까. <예브게닌 오네긴>의 타티아나, <오를레아의 처녀>의 잔 다르크 등 그가 남긴 오페라와 발레극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수동적이고 순응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여성들의 통념적인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가는 느낌이다. 이건 그가 가진 남다른 감수성 때문이 아닐까.
여동생 알렉산드라가 결혼으로 우크라이나 카미안카로 옮겨가며, 그곳은 한때 차이콥스키에게 창작의 젖줄 같은 땅이 되었다. 초창기 작곡한 교향곡에서 우크라이나 민요와 자연 풍광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니 말이다.
차이콥스키를 후원했던 사람들도 그의 삶에서 매우 중요했다. 모스크바음악원의 교장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은 그를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주었고, 14년 간 만나지도 않은 채 플라토닉한 사랑을 이어간 미망인 후원자 폰 메크 부인과의 특별한 인연도 그가 작곡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자신의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난 세대와 당대의 뛰어난 작품들에 영향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성장해갔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바그너, 비제의 <카르멘> 등에 헌정하는 듯한 그의 작품들이 많다고. 이런 왕성한 연구와 작곡 활동 클래식 음악과 문학 작품들의 끈끈한 연결성도 흥미로웠다. 차이콥스키는 푸시킨의 원작으로 3편의 오페라를 남기는데,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의 작품답게 러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키워드 무도회, 결투, 카드게임이 모두 등장한다.
차이콥스키하면 빠질 수 없는 발레극.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특히 <호두까기 인형>의 전 트랙이 모두 나의 귀에 익숙한 선율이었다. 그만큼 현재까지도 그의 발레극 음악은 각종 매체에서 활발하게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제외하고 두 작품은 초연 당시에는 흥행하지 못했다는데, 연말공연의 대명사인 지금의 위상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언제나 지금 만든 음악이 최고의 작품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런 마인드였기에 좌절하지 않고 정열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나에게 러시아는 외우기 어려운 이름과 알파벳도 아니라 읽을 수도 없는 러시아어처럼 낯선 곳이었다. 모스크바를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활동한 거장들을 만날 기회가 충분했는데도 관심이 없었기에 수많은 동상과 기념관들을 아무런 감흥없이 지나쳤다. 이 책을 읽고 그때의 여행이 조금 후회된다. 좀 알고 갈 걸...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니었으니 '마린스키 극장'은 못가지만 볼쇼이 극장에서 차이콥스키의 오페라나 발레극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