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 1~4 세트 - 전4권 - 특별합본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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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스스로 살기 위해 일어났으되, 가는 곳은 여럿이 함께 사람다웁게 살아가는 세상을 세우는 길이다.

약한 백성은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원하나 그 마음이 모이지 않은 때문이다."

황석영 <장길산> 2권 p982 / 창비



1권에서 길산의 출신 배경과 함께 주요 캐릭터들의 도원결의가 중심이었다면, 2권에서는 조선 곳곳에 관가를 중심으로 한 부조리와 수탈 당하고 있는 백성들이 늘어나고, 길산은 백성을 활빈하려는 대의를 품고 의형제들과 앞날을 도모해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길산은 배움을 얻기 위해 금강산에 있는 운부대사를 찾아가서 어떤 도 보다도 백성들의 실제 고통을 이해하려면 스스로 농민이 되어 그 마음을 헤아려봐야함을 깨닫고 몸공부를 시작하게 되고, 역병이 도는 마을을 구호하며 백성들의 삶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길산이 목도한 현실은 뿌리가 없는 광대로서 체념 가득한 채 바라보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 조선은 양반을 위한 나라, 백성들에게는 빼앗긴 세상인 것이다. 고려 권문세가들의 땅을 몰수해 백성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제도를 도입했던 조선이란 나라는 후기에 가서 권력자들의 탐욕으로 부패하고 백성들은 최소한의 삶도 영위하지 못한 채 그들의 부를 불려주는 밑장 같은 신세가 되었다. 불만을 품은 자는 억울하게 형을 살고, 잘못하면 목숨을 빼앗기기도 했다. 

활빈을 결심한 길산은 신체적으로 강해지기도 했지만 정신적으로도 모든 것을 품고 꿰뚫는 깊음이 배인 듯 하다. 



의형제들의 삶에도 새로운 변화가 생겨난다. 

화적단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던 소금장수 선흥은 고향 장연에서 부역에 동원되었다가 횡령을 일삼는 지방 관리의 부조리함에 항거했다가 억울하게 가혹한 형벌을 당하고, 땅도 빼앗기고 평생 관가의 눈치나 보며 살아야하는 삶에 환멸을 느껴 동무인 첫봉의 밀무역을 방해하고 일가를 죽인 삼백이네 일당을 치고 달마산의 두령이 된다. 


도사공이었던 우대용도 춘득이네 상단에서 자리를 얻어 장사치로 다시 시작하지만 어음 사기를 당하고 난 후 차라리 자신의 세력을 조성해 수적이 되기로 결심한다. 

갑송은 아내 도화가 바람이 나서 자신의 노모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속세의 모든 미련을 버리고 승려가 되어 운부대사를 찾아 금강산에 입산한다.


송도 거상 배대인의 딸과 혼례를 올린 박대근은 우연히 인삼을 재배하는 기술을 가진 모녀를 돕게 되고, 그들을 활용해 송도 시장의 판도를 바꿀 계획을 세운다. 이런 새로운 시도를 좋게 본 배대인은 박대근에게 모든 재산과 사업권을 물려주게 되는데. 박대근은 아마도 길산의 든든한 뒷배가 될 것 같다.


선비 김기는 자신을 파멸시킨 여첨지네 사노가 된 딸이 그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길산의 도움으로 딸과 직접 조우하자 자신의 사사로운 원한을 내려놓고 천민의 마음이 되어 길산과 대의를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새롭게 합류하게 된 인물들도 생겨난다. 왕실에 뇌물을 주고 불법적으로 나라의 땅에 있는 재물을 착복하는 잠채꾼들. 이런 불법적인 채금광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 봉기를 하던 김선일은 길산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제하게 되자 길산의 충직한 하수인이 된다. 


대기근이 들자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춘궁기에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만들어진 환곡제도는 탐욕스러운 관리들에 의해 악용되어 각종 이자 부담만 더해져 백성들은 굶주려간다. 이를 참지 못하고 민변을 주동했던 최흥복은 관리를 살해한 후 세상을 등지고 자비령의 두령이 되는데.  자비령으로 세를 옮기려는 길산과 만나 뜻을 같이 하게 된다.


길산과 엇갈린 사랑을 하는 여인 묘옥이 자신을 위해 모든 걸 잃은 경순에게 마음을 주고 부부의 연을 맺으려 마음을 먹는 것은 너무나 이해가 가는 전개다. 하지만 묘옥을 제외하고 2권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 대다수가 자신들의 색정과 탐욕으로 일을 그르치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어 보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보는 재미 때문이겠지만 홍천수를 꾀었던 아녀자나, 첫봉을 배신하고 주지승에게 붙어 모든 걸 발고한 고만이도 그렇고, 몸둥아리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쉽게 살아가려는 것 같은 여성 캐릭터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한계인가 싶다. 


"우리는 걸음이요, 너희는 씨앗이며 뿌리와 같으니라.

언제 어느 곳에 가 있더라도 잊지 말아라.

너는 천대받는 백성들의 울분이 화한 마음이요, 그 손발이고, 그 머리며, 그 무기가 되어라."

황석영 <장길산> 2권 p631 / 창비



울분의 찬 백성들의 마음과 손발, 머리, 무기가 되기를 기꺼이 자처한 길산.

그리고 그의 뜻에 감화되어 함께 하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

본격적인 활빈이 전개될 3권이 기대가 된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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