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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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운명이라는 것은 없으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결코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한 것이라는 걸세.

그래서 각자가 자기 운명의 창조자라는 말도 있지."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2> p814 / 열린책들



<돈키호테> 전편이 기사 소설에 미쳐버린 이달고 알론소 키하노가 자신의 말과 충성과 사랑을 바칠 귀부인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비아냥과 웃음거리가 되는 좌충우돌 모험기였다면, 후편은 전편이 출판되어 스페인에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모험과 함께 최후의 순간을 담고 있다.



전편에서는 돈키호테의 광기가 부각되었다면, 후편은 보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성장을 엿볼 수 있어 교훈적이다.

마법에 걸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무훈을 우습게 만들려한다는 것에 분노하기는 하지만 이전처럼 풍차와 양떼를 보고 무작정 돌진하는 짓도 없다.

특히 사람들에게 연설할 때 돈키호테의 분별력과 총기는 어느때보다 빛나는데, 사람들은 돈키호테의 우스꽝스러운 모험담을 읽고 작정하고 그를 놀리려다가도 그의 박식함과 자비로움에 깜짝 놀라게 된다.



산초 역시 마찬가지. 돈키호테와 함께 티키타카하며 그도 무척 현명해진 느낌이다.

그들은 세 번째 모험을 떠나며 귀부인 둘시네아에게 찾아가는 데 그녀를 만난 적도 없으면서 편지를 전해줬다고 거짓말을 했던 산초는 마을의 농부 아낙을 둘시네아라고 속이고, 돈키호테가 믿겨하지 않자 마법에 걸린 게 틀림없다고 능청을 떤다. 이런 산초의 계략은 나중에 둘시네아의 마법을 풀기 위해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가해야하는 벌로 당하긴 하지만... 항상 돈키호테의 말을 순박하게 믿어왔던 산초는 후편에 걸쳐 그의 주인이 약한 부분을 보완할 줄 알고, 그를 이용해 기회를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 현명한 통치자로 거듭나기도 한다.



후편은 전편에서 벌어진 돈키호테의 모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어디서나 환대를 받는데, 그 중 돈키호테와 산초를 즐거워하고 짓궂은 장난을 치려는 공작 부부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모험을 기획한다. (인간의 신념을 가지고 놀려먹으려 하다니 사실 고약한 부부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기획한 모험에서 돈키호테는 싱겁지만 청동으로 변한 공주와 수염 난 과부시녀들을 구하게 되고, 산초는 드디어 꿈꿔왔던 통치자가 된다.

그리고 현실에 닿아있는 산초의 삶은 그 어떤 통치자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결을 만들어내어 사람들의 감탄을 산다. 열흘 동안 펼쳐진 산초의 활약, 그가 보다 현실성 있는 법을 제정하고 그 곳을 다스렸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산초는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 감당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음을 깨닫고 씁쓸하게 자리에서 물러난다. 

우리에게 때론 지속할 수 없는 이상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삶에 있어서 모든 것이 늘 같은 상태로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다.

오히려 삶은 모두 원을 그리며 흘러가는 듯하다.

말하자면 중심에다 한 점을 놓고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봄은 여름을 추적하고, 여름은 한여름을 추적하며, 한여름은 가을을 추적하고, 가을은 겨울을, 그리고 겨울은 봄을 추적하니, 이렇게 세월은 멈출 줄 모르는 바퀴를 타고 구르고 또 구르고 또 구른다.

단지 인간의 목숨만이 세월보다 더 가볍게 그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인간의 목숨을 제한할 한계가 없는 다른 생애에서가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 볼 희망도 없이 말이다."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2> p655 / 열린책들



공작 부부의 집을 나서 다시 바르셀로나로 길을 떠난 돈키호테는 자신의 무훈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판본으로 만들어져 우스꽝스럽게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도 접하게 되는데.


당시 '돈키호테'의 성공이 얼마나 많은 아류작을 낳았고, 그 아류작들을 세르반테스가 얼마나 비판적으로 바라봤는지를 알 수 있다. 내내 아르고 사람이 쓴 아류작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이어지니, 이 속편을 접한 아류작 작가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었을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하얀 달의 기사'에게 패한 돈키호테. 결투를 시작하며 돈키호테는 자신이 패하면 마을로 돌아가 1년 동안 무기를 잡지 않기로 약속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마을로 돌아가는데. 영광을 모두 잃고 쇠약해진 모습이 역력하다. 돌아오는 길에 돈키호테는 편력기사를 내려놓고 '목동 키호티스'의 삶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신부, 이발사, 학사 삼손, 산초에게도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는데 주석에 따르면 이는 유대인의 관습이나 스콜라 철학에서 이름이 사람의 실체 형성에 막대한 힘을 행사하며, 개명이 인간성의 근본적인 면을 바꾼다는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한다. 갑자기 요즘 유행하는 부캐 신드롬이 떠올랐다.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자극을 주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들어보고 싶다. 사람은 믿는대로 무한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적을 만들기도 하니까.


꿈이 있는 자는 늙지 않는다고 했나. 당시 노인이라고 할 수 있는 50대의 나이에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편력기사가 되기 위해 무모한 모험에 나섰던 돈키호테, 아니 이달고 알론소 키하노는 그 나이에 믿기지 않는 엄청난 모험을 완수해내고 마을로 돌아와 급격하게 기력을 잃고 마침내 세상을 뜨고 만다.



사람에게 활력을 주고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은 꿈이라는 걸,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것일지라도 그 꿈에 닿기 위해 내딛었던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여 나의 하루를 충만하게 만든다는 걸, 돈키호테를 읽으며 새삼 깨닫는다.


1권에서는 그냥 엉뚱하고 고전이라기엔 너무 유머러스한 책이라고 느껴졌다면, 2권에서 드디어 돈키호테라는 신화가 완성된 것 같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인간 돈키호테라는 불멸의 캐릭터로.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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