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행복 : 공리주의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4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정미화 옮김 / 이소노미아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공리주의 utilitarianism'라 하면 마치 공식처럼 따라 붙는 말이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그래서 공리주의는 산술적인 개념처럼 들린다. 실제로 벤덤이 주장한 공리주의는 굉장히 정량적인 지표같다.

계산이 가능한 행복, 그래서 100명의 행복을 위해 1명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무시무시한 이론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자유론'의 저자로만 인식되던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

그가 '공리주의'를 새롭게 정의했다는 것을 이소노미아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타인의 행복>을 통해 처음 알았다. 질적 공리주의라는 말은 들어는 봤지만 벤덤의 이론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심지어 원문을 읽은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을 계량이 가능하다 믿었던 벤덤의 사상을 수정하면서 쾌락의 질을 중시했다.

그리고 엄청난 설득가는 이 책을 통해 행복을 도덕의 원리로 가져오기도 한다. 

게다가 앞에 다룬 천재 칸트의 도덕 이론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공리 또는 최대 행복의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받아들이는 이 이론은 행복을 증진시킬수록 옳은 행동이고, 행복과 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할수록 잘못된 행동이라고 주장합니다.

행복이란 고통의 부재와 쾌락을 의미하고, 불행은 쾌락의 결핍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앞서 읽은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이소노미아의 '굿윌')에서 칸트는 도덕을 '모든 이성적인 존재에게 하나의 법률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칸트에게 도덕은 형식이다. 그는 경험(그리고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도덕을 강조하며 도덕을 형이상학적으로 탐구했다. 모든 목적을 배제하고도 오롯이 남아 있는 것, 그것은 이성을 가진 존재가 선험적으로 알고 있는 선한 의지로 모두에게 보편적인 법률과 같다. 


칸트의 도덕이 형식만 강조하다보니 실제적인 인간의 삶은 배제된, 마치 무중력의 이론 같이 느껴졌다.

반면 밀의 도덕은 우리의 상식 속에서 팔팔하게 뛰는, 살아있는 개념처럼 보인다.


칸트가 도덕을 경험을 배제한 형식으로 봤다면, 밀의 도덕은 내용이다. 이 내용은 경험을 통해 습득되며 우리의 도덕은 도덕감정을 통해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작동된다. 도덕을 지켜야하는 동인으로 교육, 여론, 법률 등 강제적인 처벌과 같은 외적인 처벌과 양심의 가책과 같은 내적인 처벌을 든다.


또한 밀은 칸트가 설명하지 못했던 도덕의 제 1원리를 공리주의로 상정한다. 밀이 주장하는 공리주의는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감소를 뜻한다. 나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포함한 인류 전체의 행복의 총량으로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도덕이 상충하는 상황을 칸트의 도덕철학이 설명할 수 없을 때 밀이 주장하는 공리의 기준으로 그 우선순위를 가릴 수도 있다.


편집 여담에서 밀의 철학을 '실용적'이라고 평하는데, 정말 동의가 되었다.

밀이 제시하는 사례는 실제 우리의 삶과 우리의 감정, 욕망에 맞닿아있다.


특히 공리주의와 정의의 관계를 설명하는 5장에 나타나는 문제 - 한 사람의 개인적인 자유나 재산을 빼앗는 사례, 잘못된 법에 의해 부당하게 귀속된 권리에 관한 사례, 인과응보에 관한 사례, 신뢰를 저버리는 일에 관한 사례, 편파성이 문제되는 사례-는 지금까지도 정의를 다루는 문제에 있어서 토론거리가 되지 않나.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불의에 의한 사회적 문제도 거의 대부분 밀이 제시하는 범주에 포함되어 있어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밀은 마치 불변으로 보이는 정의도 자의적일 수 있으며 사회적 공리를 적용해야만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의라는 것이 하나의 절대적 가치였다면 오늘날 불의와 정의 사이에서 이토록 많은 논쟁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밀에게 도덕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여러 도덕이 존재할 수 있고 인류가 문제를 극복해온 것처럼 도덕도 발전상태에 따라 개선될 수 있다 진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약간 나이브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철학이 훨씬 인간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의 철학에서 인간에 대한 희망이 보이기 때문일까.

칸트의 철학을 떠올리면 혼자 고집스럽게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외로운 인간이 보였는데, 밀의 철학은 주변과 무한히 연결되어 있는 사회 속에 선 인간이 보인다.


아무튼 철학 고전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정신줄 팽팽하게 당겨준 이소노미아의 친절하고 정성스런 편집 덕분에 마음에 탁 와닿는 철학자 한명을 만나게 되었다. 참으로 고맙고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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