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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 - 대한민국 1호 도슨트가 안내하는 짜릿한 미술사 여행
김찬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미술 애호가일까?
한때는 유명화가의 전시나 특별전이 있으면 꼬박 꼬박 미술관을 찾았다.
대학 때 들은 교양 수업을 계기로 미술을 보는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같다'라고 쓰는 건 진정으로 재밌었는지, 지적 허영 때문인지 지금에 와서는 헷갈리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은 미술관을 거의 안갔다.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탓도 있지만 지방에도 괜찮은 전시가 열리는데 굳이 찾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전시나 여행지에서 접근 가능한 곳의 미술관은 종종 찾지만 전제는 '무료'일 경우에만 찾는다. 나를 발동시켰던 허영이 어느새 김새듯 사라져버린걸까.
오랜만에 미술사에 관한 책을 읽었다.
대한민국 1호 도슨트 김찬용의 책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 이 책은 출발지를 근대 이후의 미술로 설정하고 우리를 미술과 한층 멀게 만드는 현대 개념미술과 삶 속에 예술을 스며들게 하는 공공미술까지를 목적지로 둔다. 인상파의 탄생부터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인기가 많은 고흐가 속한 후기 인상파, 마티즈의 야수파, 피카소의 인상파, 칸디스키의 청기사파, 마르셸 뒤샹의 다다이즘 등등 각 사조와 그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일화를 곁들여서 쉽고 재미있게 내용을 꾸려 놓았다.
이런 구성 덕분에 책의 제목처럼 미술 사조에 초행길인 살람들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 재현한 근대 이전의 회화와 달리 사진이 등장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녹여내야하는 요구가 생기기 시작한 근대 이후의 미술은 기존의 것을 뒤엎고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한다는 강박이 더욱 심해진 것 같다.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던 미술, 그 과정에는 노이즈 마케팅도 주효했다.
혹평이든 찬사든 이슈화를 시켜야 작품의 가치가 높아지고 자신의 이름이 앞으로 '팔리는 작가' 군에 속하게 되니까.
추상으로 점점 대중과 멀어져갔던 미술은 다시 팝아트와 같은 대중적인 장르로 회귀하게 되다 또 철학을 담은 개념미술로 멀어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삶과 일상 속에 예술을 구현하는 공공미술로 아주 가깝게 들어온다.
이런 밀당 과정이 흥미로웠다. 앞으로의 예술이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공미술의 행보를 응원하게 된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계일 뿐이지만 그 안에 자신의 감정을 녹여내니 그 어떤 화려한 그림보다 은유적이고 시적으로 진한 감성을 전달하는 하나의 작품이 되었죠.
이러한 형태의 미술을 현대 미술계에서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라고 지칭합니다.
(중략)
우리 일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사전적 정의를 벗어나 새롭게 사고하고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미술관에 존재했던 미술은 이미 우리 삶,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와 있는 거죠.
우리의 목적지는 이곳입니다.
과거의 시선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의 미술을 바라보며 나의 시대와 나의 인생을 응시할 수 있는 감상의 영역. 그 끝에 우리의 목적지가 있는 거죠."
김찬용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 p234 / 아르떼
특히 어렵게 느껴지는 현대 미술에 대한 개념을 정리할 수 있게 된 건 큰 수확이었다.
레디메이드를 덩그라니 전시해둔 듯한 개념미술은 가끔은 불친절하고 인상이 찌푸려질만큼 난해하다 느껴졌는데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철학적이라서 더욱 알고 싶어졌다.
"우리가 애호가로서 미술을 즐긴다는 건, 마치 여행을 떠나듯 하나의 정답이 아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내가 마주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행위일 것입니다."
김찬용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 p237 / 아르떼
한때 미술관에서 도저히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불통의 작품 앞에서 무언가 읽어내려 고뇌하고 읽어내지 못하는 나의 무지함에 좌절하곤 했는데, 김찬용 도슨트가 건네는 '미술은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는 말은 꽤 위로가 되었다. 읽는 건 전공자들이나 하면 되는거지, 나 같은 애호가는 내 느낌대로 감상하면 되는거다. 모두가 찬사를 보내는 작품도 내게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으면, 그건 그런 작품이라고 주눅들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주관적인 나의 감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
그러면서도 '작품을 단순히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고 한 르네 마그리트나 '진정한 예술가는 영감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라는 살바도르 달리의 말처럼 초현실주의 작품이 내포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쉬이 떨쳐지지 않는다. 역시 미술에 있어서는 지적 허영이 자꾸 앞선다.
그래서 애호가와 깊은 애호가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책을 덮는다.
하지만 이 독서 덕분에 오랫동안 말라있던 미술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다시 되살아난 것 같아 유쾌한 기분이다.
조만간 미술관 나들이를 가야겠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