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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티네 : 나쓰메 소세키 작품집 ㅣ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석희 옮김 / 이소노미아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일본 지폐에 새겨진 남자. '일본의 셰익스피어'라는 찬사를 받으며 백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여전히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
서양의 근대문학을 일본 스타일로 이식시키며 일본 근대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인 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장편소설이다. 나도 대학시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을 읽었다. 앞서 열거한 명성과 달리 엄청나게 뛰어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진 않았고, 좀 시니컬하면서도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작품보다 한 걸음 가까이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번에 읽은 <소나티네>를 통해서다.
이 책 속에는 그가 남긴 35편의 짧은 글과 2편의 강연록이 담겨있다.
<열흘 밤의 꿈(夢十夜)> 10편과 아사히 신문에 3개월 동안 연재되었던 25편의 짧은 글 <봄날의 소나티네(永日小品)>, 그리고 <나의 개인주의>, <현대 일본의 개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선 35편의 짧은 글은 장편에서는 알지 못했던 매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뒤의 2편의 강연록에서는 그가 품고 있던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
<열흘 밤의 꿈>은 굉장히 몽환적이다. 백 년간 기다려달라는 여인의 부탁에 망연히 세월을 보내다 어느새 백합이 진한 향기를 뿜어낼 때 백 년이 지난 걸 알았다는 것이나 장님 아이를 엎고 길을 가다 백 년전 자신이 엎고 있는 아이를 죽인 살인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기묘한 이야기 등등 서사가 분명하지 않은, 뭔가 흩어지는 듯한 이야기지만 읽고 나면 뭔가에 홀린 듯한 묘한 매력을 풍기는 10편이 실려있다.
반면 <봄날의 소나티네>은 꽤나 일상적이다. 도둑이 든 줄 알고 밤새 긴장했더니 쥐였다거나, 방이 너무 추워서 화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의 자전적 에세이들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신경쇠약에 걸려 실패했다는 영국 유학 시절을 회고하는 글들은 런던의 스모그가 그대로 느껴지는 음울함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연록에서는 당시 강대국 청나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서양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분에 득의양양했던 일본 사회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를 만날 수 있다.
특히 그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맹목적인 서양 문물에 대한 동경과 그로 인해 일본적인 것은 분별 없이 배척하고 껍데기만 겉핥기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이런 분위기는 당시 집단 속에 복종하기를 강요하는 사무라이식 패거리 문화와 결합해 자유와 개성을 억압했던 것이다.
일본 지폐에 새겨질 만큼 일본 근대의 상징적 인물인 그가 이런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게 놀랍기는 하지만, 이는 런던 유학 시절 실제적으로 마주한 여전히 약소한 국가에 머물러 있는 일본의 지위, 그럼에도 이미 그들과 동등한 선상에 놓인 양 굴며 맹목적으로 서양을 닮아가려 몸부림 치는 모습을 외부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쓰메 소세키는 개성을 말살할 이런 문화를 경계하며 문학에서 '자기본위적인 것'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 스스로는 그러한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하지만 '자기가 주인이며 타인은 손님'인 신념은 그의 작품 세계에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런던 유학 전후로 다르다고 하는데 이를 비교하며 읽지 못해서 아쉽다.
<현대 일본의 개화>에서는 비슷한 근대화를 경험한 우리도 사뭇 공감이 가는 얘기가 이어진다.
"그런데 일본 현대의 개화를 지배하는 파도는 서양의 조류이며, 그 파도를 넘는 일본인은 서양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스스로 그 안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마음을 쓰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새로운 파도는 아무튼, 지금 막 빠져나온 낡은 파도의 특질이나 진상마저 분별할 틈도 없이 버려야 합니다.
(중략)
이런 개화의 영향을 받은 국민은 어딘가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어딘가 불만과 불안을 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소나티네> 현대 일본의 개화 中 / 이소노미아
유럽의 개화가 아주 오랜 세월동안 내발적으로 이뤄진 것과 달리 외부의 힘에 의해 빠른 속도로 주입된 일본의 개화. 때문에 일본은 자기 본위를 잃고 부자연스러운 발전을 해왔다.
그리고 계속 이렇게 내면의 뭔가가 상실된 채로 수박 겉핥기처럼 따라만 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속은 비고 껍데기 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하는 듯 하다.
우리 역시도 그동안 맹목적으로 서양 문명을 쫓아오지 않았나.
그리고 국제 관계 속에서 언제나 강대국의 논리에 휘둘리고 있는 모습을 지금도 종종 보이고 있다.
겉은 세계적 추세를 거스를 수 없겠지만 내면의 흔들리지 않는 우리만의 정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
백 여년 전 일본의 작가가 한 말이 여전히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