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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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이상주의자의 대명사로 꼽히는 돈키호테

사실은 기사 소설을 읽다 그 세계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 기사 캐릭터가 되기로 한 과대망상 환자이지만 21세기에는 그의 무모한 도전과 상상력이 재조명되기도 한다.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어린시절 어린이 문고판으로 접했던 돈키호테는 풍차를 용으로 착각하고 공격하는 시퀀스로 기억된다.

원전이 8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꺼운 책이라는 것, 그리고 10년 뒤에 2권이 출시됐다는 사실도 열린책들의 완역본이 나와서야 알게 됐다. 하지만 뭔가 아는 이야기라 생각해서인지 읽을 기회가 없었다.

다양한 매체에 재현된 돈키호테가 아닌 진짜 돈키호테가 궁금해졌다.


1500년대 후반, 스페인의 라만차 마을에 살고 있는 작위가 없는 하급 귀족 이달고인 50대 남자는 자신의 시간을 모조리 기사 소설 읽기로 보내고 있다. 머리가 돌아버릴 정도로 기사 소설을 읽어대던 남자는 스스로 편력기사가 되어 소설 속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고, 자신의 삐적 마른 말에게는 로시난테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편력기사라면 당연히 한 명쯤 있어야할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이웃마을 농부의 딸 알돈사를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가상의 여인으로 만들어 혼자 사랑에 빠진다.


당시 50대는 거의 노인 취급 받던 나이였다는데, 이 나이에도 새로운 꿈을 꾸고, 과감히 모험을 떠난 건 꽤나 멋진 일이지만 그의 모험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다. 기사 작위도 없는 그는 객줏집을 성으로 착각하고 들어가 객줏집 주인에게 기사 서품식을 요청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모욕을 당했다 생각하고 애먼 사람들에게 결투를 신청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이웃 농부에게 실려 집으로 돌아온다. 굴욕의 첫 모험을 기억도 못하는지, 그의 절친한 친구인 신부와 이발사가 만악의 근원이라 여기는 기사 소설 화형식을 하는 동안에도 돈키호테는 이웃의 멍청한 농부 산초 판사에게 자신이 성을 얻으면 섬의 영주를 시켜주겠다는 말로 꼬셔 자신의 종자로 삼고, 두 번째 모험을 떠나게 된다.


두 번째 모험 역시 맞고 깨지고 모욕 당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망상의 세계 사는 돈키호테와 달리 실리형 인간인 산초 판사는 그 와중에도 필요한 음식이나 전리품을 챙기고,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몸도 사리고- 결국 돈키호테와 같이 두들겨 맞는 일이 더 많지만-, 돈키호테의 지나친 망상에 브레이크를 걸어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등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된다. 가끔 말도 안되게 순진하고 멍청한 산초지만, 어떨때는 빛나는 현실감각을 보여준다.



" '나리' 산초가 대답했다.

'물러나는 것은 달아나는 것이 아니며, 위험이 희망을 앞지를 때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분별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요.

지혜로운 자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삼갈 줄 알고, 하루에 모든 것을 모험하지 않습니다요.

저는 촌것에 천한 놈이긴 하지만요, 사람들이 말하는 처신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십쇼.

그러니 제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한 생각을 바꾸지 마시고, 타실 수 있다면, 아니면 제가 도와 드릴 테니 로시난테에 오르셔서 저를 따라오세요.

눈치로 보아하니 지금부터는 손보다 발이 더 필요합니다요.'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1> p322/ 열린책들


이 둘이 빚는 티키타카는 전반부의 재미를 담당하는데 고전 소설이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있는지, 16세기 스페인 아재의 개그 감각이 놀랍다.


소설 <돈키호테> 1권의 이야기는 이들의 우당탕 좌충우돌 모험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는 코너 속의 코너 같은 이야기가 넘쳐난다. 목동이 된 미모의 여인 마르셀라를 쫓아 다니다 상사병에 걸려 죽은 양치기의 장례식, 시에라 모레네 산맥에서 만난 카르데니오의 '잘못된 만남' 뺨치는 얽히고 얽힌 사랑 이야기, 전쟁 포로와 무어인 여인이 알제에서 탈출한 기막힌 사연 등이 돈키호테와 주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특히 알제에서 전쟁 포로로 갇혀 있다가 무어인 여인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사람의 사연에서는 20대에 군대로 들어가 이탈리아에서 전쟁을 했던 세르반테스 본인을 출연시키기도 하며, 이런 이야기를 통해 당시 기사 소설이 표현했던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 전투와 일방적이고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실체없는 사랑이 실제와 얼마나 다른지 꼬집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기존 기사도 문학이 가진 천편일률적인 구성과 개연성 없는 전개, 현실성 없는 캐릭터 등을 풍자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한다. 모든 사법권 밖에 있는 현실 세계와 동 떨어진 편력기사의 면모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돈키호테의 뻔뻔함 - 객줏집에서 무전취식을 일삼고, 죄수들을 풀어주며 정의를 실현했다고 착각하는 것도 편력기사의 역할에 심취했기에 가능했다- 을 통해 깨닫게 해주려는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소설이 허구라도 현실을 모방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짓도 진실로 보이면 보일수록 좋고, 

그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것보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일수록 더 즐겁다고 말입니다.

거짓을 이야기할 때라도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이해와 맞아떨어져야 하는 법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들고 엄청난 사건들을 평범하게 써야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그래야 독자들이 놀라기도 하고 몰두하며 흥분하거나 즐겨서 감탄과 즐거움을 함께할 수 있게 되지요.

진실성과 자연을 모방하는 일을 기피하는 자는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완벽한 작품은 이렇게 진짜같이 쓰고 사물을 모방하는 데 있는 것을 말입니다."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1> p723 / 열린책들


세르반테스의 소설이 근대 소설의 효시로 불리는 까닭은 영웅이 아닌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돈키호테 인간형'이라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를 구축했기 때문이 아닐까.


<돈키호테> 1권은 신부와 이발사의 작전으로 모험을 억지로 마치게 된 돈키호테가 반죽음의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산초 판사가 편력기사와의 모험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달으며 끝이 난다. 


그리고 10년 후 세르반테스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나오는데, 어떤 모험이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기다릴지 이 캐미좋은 두 사람의 시즌2가 너무나 기대가 된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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