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죽음 - 다문화의 대륙인가? 사라지는 세계인가?
더글러스 머리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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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럽은 자살하는 중이다.

아니면 적어도 그 지도자들은 자살을 선택했다.

유럽인들이 이 결정을 따르기로 선택할지는 당연히 또 다른 문제다."

더글러스 머리 <유럽의 죽음> 머리말 / 열린책들


2008년과 2013년, 두 차례 이탈리아 피렌체를 간 적이 있다.

낮에 본 피렌체는 변함이 없었지만 밤의 피렌체는 5년만에 엄청나게 바뀌어 있었다.

중동 국가 어느 골목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 만큼 무슬림이 많았다.

혼자서도 당당하게 걸었던 밤 거리를, 여자 둘이서 몸을 움츠리며 황급히 걸어갔다.

내가 목도했던 한 골목의 변화는 유럽 전역에 퍼진 현상이었다.


영국의 정치평론가이자 언론인 더글러스 머리의 <유럽의 죽음>은 다분히 논쟁적인 책이다.

급증하는 무슬림들로 유럽의 자살하는 중이고 자살을 방조한 것은 안일한 이주민 정책을 펼친 정치 지도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꼬집는 이 책의 논지는 흔히 진보적 좌파가 우세한 유럽의 정치권이 점차 우경화되어가고 있는 추세와도 관련이 있을 법하다.


유럽은 과거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한때 식민지 국가 등에서 이주민들을 받는다.

그때까지 유럽은 이들이 임시로 머물다갈 것이라 생각했다. 

다문화 정책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주민들은 사회에 동화되지 않은 채 유럽이 주는 혜택을 받았고 가족들을 데려오거나 낳으며 자신들의 공동체를 키워갔다.

게다가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들이 이탈리아로 몰려들면서, 이미 겪고 있는 이민자들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엄청난 수의 난민들을 수용하게 된다.

유럽 각 도시는 밀려드는 이민자들로 주택문제와 인프라 문제, 학교에서 종교로 인한 트러블 등 여러 사회 문제를 겪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은 이들에게 살만한 나라를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듯 보인다.

성상 숭배를 금지하는 율법에 따라 무함마드를 형상화 하지 않는 무슬림들은 덴마크 언론이 낸 무함마드 만평에 폭발하고, 이와 연루되거나 재게재한 언론사 관계자들은 살해를 당하거나 협박에 시달린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유럽 사회는 그들을 제재할 방법보다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쪽을 택한다.

오히려 이들을 비난하고 혐오하는 유럽 백인들에게 인종주의자라 비난하고, 이민자 정책을 반대하는 정당은 파시즘이라 매도한다.


저자는 이런 유럽 사회와 정치권들의 행태가 과거 식민주의와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게다가 이 죄책감을 폭증하게 만든 것이 2015년 터키 앞 바다에서 발견된 시리아 출신 3살배기 쿠르디의 시신 사진이다.

쿠르디 사건은 유럽이 그 어떤 책임소지가 없음에도 유럽 전역을 죄책감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난민들은 더욱 환영받았고, 이들을 어떻게 수용할지 장기적 대책도 없는 상황에 난민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밀려들었다.

개 중에는 진짜 전쟁의 위협을 피해 탈출한 난민은 거의 없었다. 

경제적 이유로 신분을 속이고 온 대다수의 사람들, 이들을 관리할 시스템은 부재했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 중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은 이민자나 난민에 대한 장기적인 사회 시스템 부재였다.

그저 온정과 자비로, 감정적인 판단으로 이뤄진 결정들은 감정이 식으면 골칫덩어리가 되기 마련이다.

애초에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난민이 아닌 사람들은 추방조치를 취했으면,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들을 구출하겠다는 명분을 지키고 현재 유럽 사회가 겪고 있는 무슬림들의 폭력적인 테러도 겪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유럽 각 국이 취한 태도는 현실적인 문제보다 이민자들을 받아 들인 결정을 정당화하는 조치 뿐이었다.

문화적 다양성이 풍부해지고, 인구 고령화가 해소되며, 저임금 노동력이 대체될 수 있다는...

어쩌면 이 문제는 한국에서도 반복될 것 같아서 섬뜩했다.


정치인들의 선의는 너무나 대책이 없었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기 위해 억류된 사람들을 제치고, 불법적인 방법을 이용한 사람들에게 체류의 기회를 주는 난민 수용 과정들은 정의롭지도 못하다.

저자의 표현대로 '사회의 장기적 안녕을 위해 단기적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는 것보다는 현재 상태가 지속되게 내버려 두고 불만을 토로하는 게 더 쉽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 왜 유럽인들만 이렇게 관대해야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동의할 수 없다.

지금 인도와 파키스탄, 중동과 아프리카는 유럽이 과거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저지른 만행으로 끊임없는 분쟁을 겪고 있다.

어쩌면 무슬림들이 불안정한 모국을 등지고 유럽으로 온 것은 유럽으로서는 업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유럽 사회가 자신들의 과오를 진정으로 사죄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문명적으로 가장 선진화된 사회로 칭송 받을 수 있었을까?

과거를 기억하고 끝없이 되새김하기 때문에 지금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저자는 무슬림 인구가 급증하면서 유럽이 가진 자유주의, 계몽주의적 가치가 희미해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토로한다.

유럽의 정체성이었던 기독교, 예술과 문화 등도 이제 설 자리를 잃고 죽어간다고.

이는 무슬림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유럽 자체가 불확실한 세계로 인해 번아웃 현상에 시달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 온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견해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커졌다.

그들은 양성 평등에 관한 우리의 견해를 공유하지 않았다.

계시보다 이성이 우위에 있다는 우리의 견해도 공유하지 않았다.

또한 자유와 해방에 관한 우리의 견해도 공유하지 않았다.

달리 말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부터 이어져 기독교로 촉진되고 계몽주의의 불꽃을 통해 정련된 유럽의 보기 드문 합의 정신은 매우 특별한 유산임이 밝혀졌다."

더글러스 머리 <유럽의 죽음> p364 / 열린책들


서구우월주의적 시각이라 해도 별 수 없지만 유럽은 확실히 뛰어나고 찬란한 문명을 지니고 있었다.

이성과 과학을 발전시켜 산업화를 이끌고 지금 우리가 사는 형태를 구축한 것도 유럽의 유산이다.

그런 유럽이 정체성 위기에 놓인 것은 무척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 


책을 읽는 내내 문화적 상대주의와 인류애 그리고 국가의 보호 하에 안전하게 살 권리 사이에서 갈등했다.

인류애 관점에서 보면 책의 내용이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저자는 불쾌할지 몰라도) 인종주의적이다.

불필요하다 싶을 만큼 무슬림이 저지른 범죄 사건에 대한 사례 인용이 많다.

마치 그들을 절대 악으로 몰아가고 싶어하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내가 정체도 알 수 없는 이주민들이 연이어 강간, 성추행,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를 벌이는 도시에 살고 있다면 그의 주장에 세차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불편하지만 어떤 것이 옳은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기에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었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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