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흡입력 강한 도입부, 치밀한 구성

정교한 트릭과 반전, 예측 불허의 결말

'데블 인 헤븐'의 압도적 프리퀄!


이 책 <스노우 엔젤> 뒤표지에 있는 소개 문구인데, 정말 이 책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어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전작이었던 <데블 인 헤븐>이 너무 궁금해지니까.


책은 영원한 평온을 주는 '최후의 레시피'를 개발한 샤로노프가 아내와 휴가 중 괴한의 습격을 받아 살해 당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도쿄 도심에서 좀비 떼를 목격한 한 남자의 질주가 시작되고, 남자는 끝내 '천사의 구원'을 바라며 백화점 9층 테라스에서 떨어져 즉사한다.


최근 도쿄에서는 이와 같은 약물에 취한 자들의 무차별 살인이 급증하고, 이들은 하나 같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현장에서 자살했다.

이를 신종 합성 약물인 스노우 엔젤에서 기인한 것으로 의심하는 마약 단속관 미즈키 쇼코는 기자키 형사에게 부탁해 마약 단속반과 경찰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협조자를 구한다. 

기자키는 9년 전 범죄 조직의 함정에 빠져 사랑했던 동료 형사 히와라 쇼코를 잃고, 그 자리에서 범인 5명을 살해한 뒤 도피 중인 전직 형사 진자이를 찾는다. 복수를 위해 떠돌고 있지만 이제는 의지도 꺾이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용직 노동자 신세로 전락한 그는 당장의 생계를 위해 쇼코의 제안을 받아 들인다. 물론 그에게 이 수사는 살아갈 이유가 되어 주기도 한다.


쇼코의 의뢰는 스노우 엔젤의 제조, 유통책이 하쿠류 노보루라는 것을 입증할 증거를 찾는 것. 이를 위해 진자이는 곧 출소하는 푸셔(마약 판매상) 이사 도모히코에게 접근한다. 마약을 구입하며 친밀감을 쌓으려 했던 진자이는 이사의 뜻밖의 제안으로 함께 푸셔 일을 시작하고, 마약을 팔며 평범한 가정주부부터 학생까지 일상에 깊숙히 스며든 약물 중독의 현실을 보며 절망한다. 


"국가가 진심으로 약물을 박멸하려는 의지가 없으니까 약물을 사라지지 않아요.

뭐, 덕택에 우리가 밥 먹고 사는 거지만."

가와이 간지 <스노우 엔젤> p191 / 작가정신


돈 밖에 모르는 이사는 이런 약물에 대해 국가의 대응이 얼마나 약한지, 그래서 약물 중독자들이 얼마나 쉽게 다시 약물에 노출되는지를 진자이에게 보여주며, 국가가 의존성 물질을 합법화 시켜 세수 증대에 이용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흘린다. 도박산업을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이 연일 보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자이는 어느정도 그 말에 수긍하게 된다.


"정부는 이 돈에 눈독을 들인 것이다. 

조직폭력단이 빨아들이게 놔두드니 차라리 도박을 정식 사업으로 허가하고, 

국가의 보증하에 더욱 거대한 사업으로 육성하자. 

그리고 막대한 매상의 일부와, 거기서 발생하는 세금을 국고로 흡수하자."

가와이 간지 <스노우 엔젤> p171 / 작가정신


이사가 하쿠류로부터 의뢰 받아 진행 중인 '스노우 엔젤' 샘플을 손에 얻게 되는 진자이는 이사에게 의심 받지 않으려 그 자리에서 약물을 복용한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한없이 평온하고 깊은 환희를 느낀 진자이는 무의식 중에 창 밖으로 뛰어 내릴뻔하고, 이사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구한다. 

나흘동안 극한의 금단 현상에 시달린 진자이. 그의 곁에는 미즈키 쇼코가 함께 하고 둘은 묘한 감정에 빠진다. 하지만 죽은 쇼코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진자이 탓에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필로폰을 수입하던 미국의 유통 루트가 불안정해지자 진자이는 거짓으로 새로운 루트를 제안하고, 이를 미끼로 하쿠류와 접촉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일이 무척이나 순조롭게 흘러가는 가운데, 충격적인 반전 결말이 펼쳐진다.


이런 범죄 미스터리물에서는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결말을 정해놓고 억지로 짜맞춘 듯한(특히 이를 위해 오랫동안 극한의 참을성으로 연기를 해 온 인물들을 생각하면 너무 억지스럽;;;) 반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꽤나 재밌고 흥미로운 소설임이 틀림없다.


영화 같이 장면들이 머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작가의 필력에도 감탄하며 읽었다.

어떤 부분은 영화 <독전>을 떠올리게 했는데, 캐릭터성 강한 영화가 떠올리는 것을 보면 매력있는 캐릭터 구축 솜씨도 뛰어나다.


국가가 개입되어 있는 음모, 도박과 의존성 약물이 국가가 세수를 거둬들이기 위한 새로운 수단이 될 것이라는 작가의 상상은 엄청나게 설득력 있었다. 담배, 술도 의존성이 강한 기호품인데 -물론 담배는 금연 캠페인 등 근절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국가에서 큰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는 것은 그로부터 거둬 들이는 세금이 꽤나 크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한국은 한때 담배를 팔던 독점기업이 공기업이었으니까.

일본의 상황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강원랜드라는 공공 부문에서 카지노 산업을 육성하지 않았나. 한쪽에선 도박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한쪽에서는 국가에서 도박 산업을 운영하고 있는 꼴이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작가의 상상이 너무나 합리적이었다. 애초에 국민을 위한 나라라면 이런 산업은 엄격하게 통제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약 청정국을 표방했던 한국에서도 이제 온라인을 통해 마약이 쉽게 유통되고 있다는 데, 이에 대한 통제는 어떻게 될까?

소설 속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약물 범죄를 박멸하기 위해 필요한 것 세가지'는 '첫 번째가 교육, 두 번째가 담배 금지, 세 번째가 구매자에 대한 엄벌'이라고. 학교에서부터 향정신성 물질이 위법이며 얼마나 위험한지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더 유해한 약물로 나아가기 쉬워지기 때문에 담배를 금지 시켜야 한다는 것, 사는 측에도 엄벌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입시에 대한 지식 전달만 하고, 담배는 기호성 식품으로 내버려두고 있으며, 마약 흡입에 대한 형벌이 너무나 가벼운 현실은 일본과 우리나라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이사는 이게 기독교에서 범죄자를 악인으로 보지 않고 '잘못을 저지른 가여운 사람'으로 회개의 대상으로 본다는 주장을 하는데, 영화 <밀양>이 제기했던 용서는 누가하는가라는 주제와도 연결되어 흥미로웠지만 이 책에서 한번 언급만 될 뿐 계속 확장 전개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두 명의 미스터리한 인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끝이 난다. 

진자이가 수사했던 변호사 부부 사망사건의 유족인 부부의 외동아들 '에다 이즈마'. 부모의 죽음 당시 국내에 없어서 연락이 안됐던 그는 뒤늦게야 모습을 드러내고, 어느날 정치인이 되어 도박산업 육성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진자이가 복수한 범죄 조직의 배후인물 '마슈'는 미즈키 쇼코의 불우한 유년시절의 구원자 같은 사람으로도 등장한다.

아마도 이 두 인물은 전작인 <데블 인 헤븐>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마약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얻게 되고, 의존성 물질을 왜 국가는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 의식도 갖게 해주는 책.

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뚝딱 읽은 흡입력 강한 사회파 미스터리를 만나 너무 즐거운 독서였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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