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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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차이나는 클라쓰>에 나온 김누리 교수는 교육을 뜻하는 단어 'Educate'은 잠재력과 개성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라 말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주입식 교육과는 사뭇 다르다. 밖으로 끌어내는 것은 내가 몰랐던 것에 대한 발견일 것이다. 


이 책 소개를 처음 접했을 때, 사실 내가 기대했던 바는 한 여성의 배움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었다. 

16살까지 공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이 어떻게 케임브리지 박사가 될 수 있었는지, 어쩌면 난 극적인 성공 스토리를 기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뚜껑을 여니 전혀 다른 얘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배움의 발견>은 아버지가 만든 정의로 구축된 세계를 벗어나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타라 웨스트오버는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타라네 집안은 독실한 모르몬교도로, 특히 아버지는 종교적 원리주의와 피해망상에 빠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고, 아프거나 다쳐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엄마가 산파 역할을 하고, 오일과 동종요법으로 치료했다. 


2000년이 도래하면 세상이 종말을 맞을 것이라 생각하는 아버지는 지하창고에 식량과 연료를 비축하는 데 공을 들인다.

학교를 보내지 않은 아이들에게 홈스쿨링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던 것도 아니다. 타라는 베이비시터 일을 하거나, 엄마의 오일과 약초 일을 돕거나, 아버지의 폐철 처리장에서 신체 절단과 각종 부상의 위험에 노출된 채 일을 해야 했다. 오빠 루크가 화상을 당하고, 전단기에 팔이 잘려도 아버지는 일을 계속 시켰다. 


타라의 다친 곳을 고쳐주고, 위험에서 보호해주던 오빠 숀- 이는 타라가 줄곧 부모에게 기대했던 모습이었다-은 점차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타라를 조종하고 통제하려 든다. 엄마는 숀의 이런 폭압적인 행동을 알면서도 침묵한다.


부모의 방임과 정서적 학대는 타라에게 당연한 세계였다. 

모르몬교 교리 안에서 여성의 역할은 남성의 결정을 따르는 보조자일 뿐이다.

거부하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지만 이 세계에서 추방되면 갈 곳이 없기에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


집안 분위기가 사뭇 달랐던 타일러 오빠는 대학을 가기 위해 집을 떠났다. 그리고 타라에게 대학을 갈 것을 권유한다.

이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지속적인 반대와 냉대 속에서 타라는 가족의 눈을 피해 힘겹게 공부해야만 했다.


그렇게 열일곱을 맞은 타라는 브링검 영 대학에 입학하며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와 너무나 다른 세계에서 타라는 아버지의 시선으로 세계를 평가한다.

하지만 배움은 타라를 조금씩 회의하게 만들고, 깨닫게 한다. 아버지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

아버지의 과대 망상으로 가족들이 모두 헛된 공포에 떨며 살아왔다는 사실. 숀의 행동은 조종과 폭력이라는 것.

하지만 자신의 전부였던 익숙했던 세계를 한순간에 벗어나기란 어려운 것이다.

벗어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지만, 아직 타라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전까지는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이해했다. 내가 아버지의 세상을 거부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세상이 아닌 바깥세상에서 살 용기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사실 말이다."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p401 / 열린책들


"그에 따르면 적극적 자유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 스스로를 스스로가 다스린다는 의미였다. 그는 적극적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이성과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이성적인 두려움이나 믿음, 중독, 미신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자기 강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말이다."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p399 / 열린책들


타라는 이사야 벌린의 자유 개념에서 '적극적 자유'를 배운 후 자기강박에 대한 의미를 찾던 중 정신적 노예상태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동안 아버지의 세뇌 속에서 공포스러워 했던 것 - 예방접종을 스스로 맞는다.


대학 졸업 후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진학한 타라는 역사 기록학을 결심하는데 이는 자신의 지식이 항상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로부터 제한 받아 왔던 경험 때문이다. 


"나는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바로잡히는 일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 잘못 알고 있던 규모가 너무도 커서 그것을 바로잡으면 세상 전체가 변할 정도였다. 이제 역사를 이해하는 길로 통하는 문을 지키는 위대한 문지기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무지와 편견을 해결했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나는 그들의 저술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각자의 주관적 편견이 가미된 주장들을 서로 교환하고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내가 배운 역사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운 역사와 다르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도 틀릴 수 있고, 칼라일이나 매콜리, 트리벨리언 같은 위대한 역사학자들도 틀릴 수 있다. 그들이 논쟁의 불을 지핀 후 남은 재로부터 내가 살 수 있는 세상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p373 / 열린책들


텅빈 말이었지만 엄마가 자신을 딸로 보호해줬야했다는, 변화의 희망이 담긴 말을 듣고 타라는 과거를 타인에게 숨기지 않고 털어놓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는 자식에게 고통을 주고, 그 고통에 침묵하는 부모가 수치스러운 과거였기에, 그렇지 않다는 희망만 있다면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타라의 희망은 자신의 자아를 종교와 아버지의 통제 속에 가두려하고, 이를 침묵으로 동조하는 엄마를 다시 조우하며 깨지고 만다. 

정체성을 되찾은 타라의 변화는 가족에게 사탄에 들린 모습일 따름이다. 타라는 신경 쇠약에 걸리면서 힘겹게 시간을 견뎌낸다.


박사 논문을 준비하며 타라는 남과 달랐던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고 받아 들이며 새로운 역사를 써간다. 

무릇 교육이란 타라가 경험하고 실천한 것들이 아닐까.

27세에 박사 학위를 취득한 타라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만 부모님을 만나지 못한다. 배움을 발견했지만 가족을 잃은 타라.

그나마 다행인건 적절한 타이밍에 타라의 곁을 지켜준 외가 친척들과 자신을 믿어주는 타일러, 리처드 두 오빠의 존재다. 

타라의 형제는 배움을 위해 산을 떠난 세 명과 그 곳에 남아 무지한 삶을 이어간 네 명이 극명히 갈라져서 그 틈은 점차 벌어져만 간다.


그 후 2년간 타라는 아버지의 잘못을 목록으로 써가며 분노하고,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 노력하지만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의 시선이 아닌 자신을 기준으로 자신의 선택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짓누르던 죄책감에서 벗어난다.

더 이상 아버지의 세계가 아닌 스스로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정의하게 된 것이다.


"오래된 불만들을 끊임없이 들먹이며 탓하기를 멈춘 후에야, 아버지의 죄와 내 죄의 무게를 견주는 것을 멈추고 내 결정을 그 자체로 받아들인 후에야 비로소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버지를 등식에서 완전히 뺀 후에야 가능해진 일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내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도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그럴 만큼 큰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내가 필요했기 때문에."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p505 / 열린책들


드디어 과거에 갇혀있던 열여섯 소녀와 작별한 타라. 타라는 새로운 자아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타라는 이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중동을 여행할 때 타라의 남자친구 드루는 무슬림들에게 '빈라덴은 이슬람주의자가 아니다. 이슬람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그런 짓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 같다. 

타일러의 지적처럼 타라의 아버지는 종교적 믿음을 이유로 대지만 자식들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고 통제하려 했을 뿐이다. 가족애와 단결로 포장한 억압이었다. 보는 내내 불쾌했던 아버지의 왜곡된 신념은 공포를 통해 믿음을 강요하는 일부 그릇된 종교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자식을 소유물처럼 다뤘던 모습은 너무도 가슴 아파하며 읽었던 <이상한 정상가족>도 떠올리게 했다. 

타라처럼 폭력적인 상황이 아니여도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통제하며 스스로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막는 케이스가 우리 주변에도 얼마나 많은가. 교육이란 그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자아를 찾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나에게 배움은 이토록 지난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내 안의 무지와 편견을 깨고 새로운 세상과 부딪힐 때 배움의 참뜻을 느끼는 것 같다.

항상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했지만 <배움의 발견>을 읽고 타라와 같이 내게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깊은 탐구를 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에게 계속 배움의 기쁨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고 지금 타라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당차고 어여쁜 한 여성을 만났다.

(덤으로 타라의 가족사진도 찾았다. 아버지 좀 양아치 느낌.....)

아무튼 힘겹게 찾은 자아를 지켜나며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기를, 이 메시지가 닿진 않겠지만 응원한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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