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 현실 편 : 역사 / 경제 / 정치 / 사회 / 윤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1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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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한 구체성을 소거한 비현실적인 지도가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안내하듯, 현실의 복잡성을 단순화한 이 책이 지적 대화를 위한 교양 여행의 안내서가 되기를 기대한다.세부적인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은 여행을 시작한 당신의 몫이다."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 웨일북 p385


2년 전쯤 채사장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통해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 알아보는 강연이었는데 쉬우면서 오래 여운이 남았다. 그의 강연을 듣고 너무 노잼이라 중간에 덮어버린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뭔가 밑바탕이 되는 사상을 이해하고 읽으니 그냥 미친놈 같아 보였던 뫼르소가 이해되고, 소설이 깊고 풍부하게 읽혀졌다. 참 고마운 강연이었다.


팟캐스트 '지대넓얕'을 거의 매회 정주행했던 나는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지만 팟캐스트와 내용이 겹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 청취했던 내용들이 서서히 잊혀갈 때, 이 책을 접했다. 선입견은 깨졌다. 매회 주제에 따라 파편화된 지식을 전했던 팟캐스트와 달리 이 책은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순으로 카테고리화 되어 있지만 거시적 맥락에서 전개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현실이 보다 명료하게 보였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역사는 권력의 행방과 경제체제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정치는 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식으로 적용되고, 사회와 윤리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역사 파트에서는 역사를 설명하기 위한 핵심 개념 두 가지로 '생산수단'과 '자본주의'를 꼽았다. 생산수단은 왕과 노예와 같은 계급을 만들고 이 시스템은 근대시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부루주아라는 토지가 아닌 생산수단을 보유한 새로운 계층이 등장한다. 근대 이후는 이들이 지배하는 사회다. 

자본주의 사회는 공급과잉으로 이어지고, 넘쳐나는 물건은 식민지를 만들어 강매하게 한다. 제국주의 시대가 문을 연다. 각 나라 간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이는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이어진다. 공급과잉을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택한 가격 경쟁은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되어 가는 노동자 계급은 투쟁하여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고, 자본주의는 공급해야할 영역이 침해받을 것에 대한 공포로 공산주의와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자멸로 냉전체제가 종식되자, 자본주의는 효율성과 냉혹함으로 무장한 '신자유주의'로 이어지게 된다.


경제 파트는 역사의 궤와 동일하게 흐른다. 다만 자본주의의 발전방향으로 신자유주의 외에 정부가 개입해 세금을 늘려 최소수혜자에 대한 복지를 확대하는 후기 자본주의를 함께 거론한다. 오늘날에도 항상 갈등을 빚고 있는 '성장' 중심이냐 '분배' 중심이냐는 무인도에 표류한 A, B, C, 그리고 그들을 위협하는 원주민 X를 예시로 들어 설명하는데 너무나 찰떡이다. 한국은 줄곧 성장 중심의 경제체제였다. 박근혜 정부까지도 낙수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특히 청년층의 희망은 더욱 사라져갔다. 분배로 키를 바꿨을 때 엄청난 진통을 겪고 있다. 지금 정부는 공산주의라는 얘기까지 듣는다. 이렇게 과도기를 심하게 앓아서야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쉽게 방향을 바꾸기 어려울 것 같다. 걱정되는 것은 저자가 얘기하듯 성장과 분배를 전환할 '타이밍'이다. 너무 늦어서 최소수혜자들의 삶에 답도 없기 전에 우리는 분배에 조금 더 포커싱해야할 것 같다는 건 내 개인적인 생각.


정치 파트는 이 세계를 양분하는 '보수'와 '진보' 개념에 대해 다룬다. 보수는 경제 체제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 진보는 경제 체제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인데 현재 자본주의 사회- 신자유주의경제체제에서는 이를 추구하는 것이 보수, 반대하며 노동자의 권리나 복지강화 등을 주장하는 것이 진보다.

보수는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진보는 사회 시스템에 둔다. 보수냐 진보냐의 선택 문제가 합리적이려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이익을 대변하는 개념을 선택해야한다. 자본가는 보수를, 노동자는 진보를 선택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자본가이면서 진보를 택했다면, 윤리적인 판단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노동자이면서 보수를 선택하는 것인데, 세계 어디나 가난한 사람이 왜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지는 미스터리인듯 하다.

그리고 그나마 완벽에 가까운 체제라고 여겼던 민주주의도 나름의 결점을 가지고 있으며, 민주주의 단점을 '독재의 가능성'이라 꼬집는다. 이상하다. 우리는 독재 정권에 맞서 피를 흘려가며 민주화를 이뤄내지 않았나?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무지한 대중에 의해 독재자가 선출되는 경우와 기득권 집단의 독재로 상정된다.  여하튼 민주주의가 완벽한 체제라는 데에는 의문을 가져야함이 분명하다. 


사회 파트에서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극단화된 이기주의와 전체주의를 다루며, 전체주의에서 개인을 구하기 위해 절대 침해받지 않을 '자연권'- 생명, 재산, 자유에 대해 얘기한다. 

윤리 파트에서는 도덕 법칙과 의무를 준수하는 것이 윤리라는 의무론과 행위의 결과가 이익과 행복을 창출하면 윤리라는 목적론의 대립, 이에 대한 하이에크와 존 롤즈의 정의에 대해 다룬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꽤나 균형잡힌 시각으로 각 개념에 대해 접근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팟캐스트에서 보여준 채사장의 신념과 다르게 정보 전달로써 책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신자유주의와 후기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보수와 진보까지. 대립되는 개념의 장점과 단점을 고루 거론하며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독자에게 어떤 체제를 옹호할 지 판단을 맡기는 듯하다. 


하지만 '미디어'에 있어서 채사장의 시각은 확고하다. 미디어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 메이저 미디어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언론이 가진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잊지 않고 발휘하고 있는 언론의 존재를 외면하며, 모든 미디어를 싸잡아 같은 프레임으로 보고 있어 아쉽기도 했다.


여하튼 자본주의의 폐해와 민주주의의 한계를 목도하고 있는 지금, 완벽한 체제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사유와 협의를 통해 한계를 극복하고 나아가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이 책은 예시는 쉽고, 개념은 명료해서 현실세계의 시스템에 무지했던 사람들에게 딱 필요한 개괄서이다.  실제로 so 이과생인 남편을 이해시키고 토론하는데 이 책이 굉장히 도움이 됐다. 저자 채사장의 말대로 이제 거시적인 틀은 잡았으니 그 안의 세부적인 그림을 채워가는 것은 내 몫이다. 우선 사회민주주의 개념에 꽂혔다. 유럽이 가진 정치적 합리성, 그 근원을 깊게 파보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학과 종교 등의 베이스가 필요할 것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두 번째 편이 기대되는 이유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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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한 구체성을 소거한 비현실적인 지도가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안내하듯, 현실의 복잡성을 단순화한 이 책이 지적 대화를 위한 교양 여행의 안내서가 되기를 기대한다.세부적인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은 여행을 시작한 당신의 몫이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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