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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 모든 것이 다 내안에 있다.
anecdOte.8 최진영_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며칠 째 불면증이 이어진다,
잠을 자고 싶다,고 소원해도 좀처럼 깊은 수면에 다가서지 못한다, 건져질 것 없는 망상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질척이는 발자국을 따라가다보면 늪이고 늪이며 또 늪이다, 나는 괴롭다고 생각한다_
결국은 세번째 고배를 마실 거였다, 알고 있었잖아, 알고 있었는데, 눈을 막고 코를 막아도 나는 그것이 쓰다는 것도 알고 있다_ 앞으로 네 번이나, 남은 건가, 남은 거 먹다가 죽는 건 아닐런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이런식으로라도 말이다,
뭐, 일곱 잔을 한꺼번에 마시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지_ 결국, 시간이 약이다,
입에 깨끗이 털어넣고 나니, 아픈데 그래서 비참한지만 솔직히 후련해진 것은 사실이다, 비로소 스스로 마주하고 몇 마디 나눠 볼 수 있는 틈이 생겼다,
_ 불행한 사람은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자기 가슴속만 보고 산다.
며칠동안 나는, 나의 가슴속만을 보고 살았다, 그래서 불행히도 불면증이 찾아왔다고 인정한다, 인정하지만 개선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년 이맘때가 되면 나는 스스로를 가둘 것이다, 그리고 흐름에 거스르지 않는다면
네번째 고배를,
아, 쓰디쓴 그 맛만큼,만 나는 절망하고 싶다,
_ 알맹이 없는 목적을 품고 걷는 길은 고되고 무의미했지만, 나는 끝없이 걸었다. 누군가가 너는 왜 이 거리를 떠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지금까지 걸어왔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저리다, 마음에 쥐가 난다, 마음에 혈류개선제가 필요한 순간,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는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한 대로 사는 거라고 되뇌이지만,
그저 지금까지 걸어왔기 때문에 이 길을 되돌아 갈 수 없음을, 그러니 끝없이 걸어야 하는 것인가, 라고 한다면
열정은 우울해진다,
읽은 지 좀 지났는데, 다시금 페이지를 펄럭이니 그때의 문장들이 꿈틀꿈틀 살아나 몸뚱어리를 이룬다, 알라딘 서평을 하면서 12명의 아이들과 만났지만 그 중 나는 이 아이가 좋았다, 실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눈 앞에 맞딱드린 순간의 희열,이라고 해야하나,
뭐_ 그런,
아_ 나만, 이 세상에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라고 위로받는 순간,
나와 작가라는 것의 차이를 생각한다,
나는 슬프다 기쁘다,로 단정지어 버리는 퇴색한 감정을 다듬어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섬세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
그러고보니_ 참 멋진 직업이야,
그것은 내가 '세번째 고배에 열을 올리는 일' 만큼이나, 매력이 있다_
숨길이 어린 진정으로 아끼는 문장,을 기록한다,
_ 내게 더 이상 장미 향기를 입혀주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_ 나는 그런 식의 비열한 친절을 잘안다. 만날 나를 패던 가짜아빠가 하루 정도 그냥 지나갈 때,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
_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는 척만 할 뿐 그것을 진정으로 갈구하지 않았다.나는 알았다.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순간 갈기갈기 찢겨질 나를. 갈기갈기 찢은 후 다시 온전한 나를 갈구할 그들의 기만을.
_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지만, 갈 곳을 모른다고 해서 제자리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진짜엄마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진짜엄마를 포기할 수 없듯이.
_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내게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요구한다.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모든 게 좋아질 줄 알았다. 시작은 곧 끝이다.
_ 그림자가 없으면 귀신이랬다. * 그래서 다들 무서워하지.
_ 이미 상처를 받은 사람은 제 상처가 깊어지는 것 따윈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에게 상처 주기가 더 쉽다. 더 이상 보호애야 할 자기가 없으니까, 다칠 걱정 따위 하지 않고 맘껏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_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상대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 불행으로 살 수 있는 건 동정뿐이다. 동정은 아무 힘이 없다. 나는 그것을 잘 안다. 나는 동정받는다고 느낄 때 가장 비참했다. 그건 내게서 즐거움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는 거니까. 나를 동정할 때. 나를 동정하는 사람의 마음이 따뜻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차라리 불행할 것이다.
_ 최악은 지나가는 게 아니라 지속되는 거라고,
_ 어차피 모든 건 선택의 문제다. 나에게도 포기할 것이 남아 있다면 말이다.
문득_수집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우표를 수집하고 화폐를 수집하고 음반을 수집한고 유통기한이 5월1일인 통조림을 수집한다,
왜지?
왜 수집하지?
지나고 나면 결국 남아 있는 것은 무얼까, 그 만큼의 양적 부피 또는 다른 어떤 것,
문장 수집가도 있나_ 나는 왜, 문장을 수집할까,
뭐, 언젠가 이 의문도 해소할 문장을 만나리라는 것을 나는 짐작한다,
문장은 어쩌면 이름,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
나의 옆을 스쳐간 그 사람의 문장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