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_ 자기 인생을 누구에게 이해받을 필요는 없다. 이해라는 건, 자식이나 마누라가 아닌,
맞은편 막걸리 집에서 몽롱하게 취해 바라보는 어느 손님이 뜻밖에 해줄 수도 있는 일이다._









혜지야, 저것들 중에서 재미있는게 뭐야,


잠자코 누워있다가,
혜지를 부른다, 혜지의 시선을 나의 검지 손가락 너머로 이끌어낸다,
나의 검지 손가락은 혜지의 책장에 꽂힌다, 나른하게 혜지의 방에 누워있다가 문득, 오감이 궁금해진다,
배는 부른데 입이 궁금한 것 처럼,
무언가 평온한 감성의 호수에 물장구 칠 '꺼리'가 필요해진 순간,


주무시는 거 아니였어요,
글쎄여, 저거 저_거 괜찮아요,


저거, 라는 말이 꽂힌 그 곳에 꽂혀있는 책은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제목이 뭐 저럴까,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이라니,
정말로 책꽂이의 세번째 칸 여섯번째 책으로 꽂힐 만한 이름이군,

꺼리가 필요해진 만큼의 달달한 호기로 책장을 넘긴다, 즈륵즈륵, 내가 좋아하는 종이의 질감이다, 윤이나고 빳빳하고 새하얀 면에 인쇄된 활자들은 읽어 넘기기가 부담스럽다,
특히나 고등학교 시절 수학 문제집을 이런 종이로 만들면 연필자국 박이는 것과 볼펜 잉크가 번지는 것에 자유로울 수가 없어서 문제 하나를 푸는 데도 전전긍긍이었다, 문제의 본질보다 본질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미련들,

즈륵즈륵, 나는 베개를 뗏목삼아 활자의 바다에 몸을 맡긴다,
파동은 잔잔하다, 나는 잔잔한 수면 위를 떠다니고 있다, 주변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사물들의 일상적임,
그래서일까, 나는 불쑥 수면에 손가락을 찔러 저어보고싶다, 비라도 와야할 것 같고 바람이라도 불어서 물결이 넘실거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차오른다, 뗏목이 뒤집어질 듯 책 넘김이 빨라진다, 스스로 물결을 일으켜보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상하다,

감정이 바다라면 그것을 분출해 내는 파동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사람은 담고 있는 많은 것을 밖으로 표출해 내지 않는다, 주변의 영향에도 흔들림이 없다,
이대로 파동의 크기는 한결같을 것이다,

나는 물질을 거두어 들이고 수면 아래를 들여다 보기로 한다, 손가락을 모아 두 눈 주위로 동그랗게 말아 쥔다,
그러고 보니, 저기 저 심연에 무언가 가라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사람은 대필작가이다, 타인의 인생을 활자로써 대신 살아주어야 하는 사람,
그는 자신의 활자를 소설로서 담아낼 수 없고 그에게 의뢰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설을 활자로서 뱉어낼 수 없어 맺어진 편이하지만 묘한 관계,



나이가 마흔쯤 되면 버릇이 옹이처럼 삶에 박힌다. 무심코 반복되는 그것들 속에 욕망도, 상처도, 사는 방식도 다 들어 있다. 생계 문제로 벌이는 게 아닌 한 도둑질도 연쇄살인도 결국엔 버릇이다. 그러니 삶을 바꾸려면 버릇을 바꾸어야 하는데, 버릇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라 먼저 바꿀 수가 없다. 나이 사십을 넘긴 사람에게 버릇을 바꾸라고 할 때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그는 많은 시간동안 타인의 삶을 가능한 실제와 맞물릴 수 있도록 재구성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 것이라고, 버릇인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사건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조금은 타인과 다른 공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아내와 태인이, 그들과 숨 쉬던 공기들은 들숨이 되어 곧장 폐로 빨려들어가지 않는다, 곧장 날숨이 되어 연기처럼 흩어지지 않는다,
그 단어들은 심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머리에서 문장으로 재배열되고 재배열되고 다시 재배열되어 침착하게 날숨으로 뭉쳐진다,
내가 심연에서 보았던 것은 뱉어내기 어려웠던 한 줌의 숨덩이들이 아니었을까,

나의 그 곳을 향한 아릿한 응시는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켠 몽롱한 시선일 것이라 생각한다,
심연에서 수면 위를 바라보는 그는 과연 뜻밖이었다, 라고 생각할까,


두둥게둥실,
수면 위를 찰랑거리는 뗏목과 나,는


며칠 후, 일상에 존재한다,
그를 만나기 전, 그리고 만나고 난 후에도 물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의 뜻을 마지막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연까지 들어가는 수고로움을 하지 않았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편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편이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드니까,

그것은 책꽂이의 세번째 칸 여섯번째 책으로 꽂힐 만한 이름으로 그 곳에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니까 말이다,





episOde,11 임영택_ 아홉번째 두번째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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