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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episOde,9 조너선 사프란 포어_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_ 넌 운전사와 농담을 했지만, 속으로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운전사를 웃겨야 할 만큼 넌 고통스러웠던 거야.
묘지에 닿아 빈 관을 내렸을 때, 너는 상처받은 짐승이었어.
아직도 그 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고 있어.
그 소리는 바로 내가 사십 년간 찾아 헤맸던 것, 내 삶과 자서전이 되길 바랐던 것이었어._
검색창에 '드레스덴 폭격'을 넣었어,
검색창에 '9.11테러'를 넣었어,
말려 올라가는 사진들.
말려 올라가는 활자들.
그리고,
풀려 떨어지는 사람들.
풀려 떨어지는 폭탄들.
나는 그 곳에 있어,
그 곳은 내가 살고 있는 우주를 벗어난 느낌이었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그 곳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졌어, 오로지 존재하지 않는 껍데기들의 천지였어,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어, 껍데기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어,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무엇을 위한 것이었어,라고 물었어,
다물 수 없는 입으로
실리와 명분의 존재는 인간의 존재를 넘어설 수 있는 거라고, 껍데기들은 대답했어,
굳게 다문 입의 누군가는
입 다물어, 라고 매섭게 소리를 쳤어, 그 소리 너머
나는 이 곳에 있어,
'여러 조건들이 맞아 떨어진 지금의 우주'에 나는 있어, 그러니까
'여러 조건들이 맞아 떨어진 지금의 우주'에 나는 존재하고 있어,라니
이게 다 무슨 의미일까,
한 번의 클릭,
검지 손가락 관절의 짧은 움직임만으로
지나가버린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 그러나 지나가버린 시간을 바꿀 수는 없었어, 당연한 소리지
그렇다면 다가올 시간도 앞서갈 수는 없지만, 다가올 시간을 바꿀 수는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거지,
뒤를 돌아보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않아, 그래 오스카, 너의 말처럼 '부츠가 무거워' 졌어,
나는 살아지고 있는 것일까,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_ 누구나 가끔은 그냥 사라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잖니,
우리는 모든 규칙들로 생활을 더 쉽게 만들려고 애썼고, 힘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들려고 애썼어. 하지만 무와 존재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어, 아침이면 무인 꽃병이 잃어버린 누군가의 기억처럼 존재의 그림자를 던졌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니, 밤이면 손님용 침실에서 무인 불빛이 무인 문 아래로 흘러나와 존재인 복도를 물들였지, 무슨 말을 하겠니. 무심코 무를 가로지르지 않고서는 존재에서 존재로 나아가기가 어려워졌단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집은 존재보다 무에 가까워졌어, 그 자체로는 문제 될 것이 없었어, 잘된 일일 수도 있었지, 그것이 우리에게 구원이 될 수도 있었어. 하지만 우리는 점점 악화되어 갔단다. 어느 날 오후 작은 침실의 소파에 앉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내가 존재의 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_
존재의 섬이라구?
무로 둘러싸인 존재의 섬,이라니
나는 살아지고 있는 것일까,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일련의 사건들이 고리에 고리를 엮어서 하나의 존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거야, 일련의 사건들의 순환은 나를 만들었어, 일련의 사건들의 순환으로 태어난 내가 또 하나의 존재를 만들어가고 있어, 나는 존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야,
다시 핀셋을 집어 존재라는 기준점을 나에게서 사건으로 옮겨 보면,
다시 결국 ' 여러 조건이 맞아 떨어진 지금에 우주'에
있어, 나는
_ 너를 볼 때면, 내 삶이 이해가 되었어. 너란 존재를 이 세상에 있게 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이 다 필요했던 거야. 세상에 네 노래들. 내 부모님의 삶도 이해가 되었어. 조부모님의 삶도. 언니의 삶까지도. 하지만 난 진실을 알고 있었지. 그래서 이토록 슬픈 거야.
지금 이 순간 이전의 모든 순간이 바로 이 순간에 달려 있어. _
내가 살아내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필요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흔들리는 가지를 겨우 모래밭에 꽂아놓고는 참아낼 수 있는 거니,
삶의 페이지들을 단 한쪽이라도 찢지 않을 용기가 있는 것일까,
타자를 두드리는 이 순간도 결국은 필요할 수 밖에 없었던 거라고 말해줘,
말을 하지 못한다면,
손바닥을,
왼손,
오른손,
_ 그날 밤만 밤이었던 건 아니니까.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니?
나는 몸을 모로 누이고 언니 옆에서 잠들었지.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할머니가._
보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