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평점 :
'모든 것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episOde,4 이석원_ 보통의 존재

이 책은, 어떻게 관심이 가게 되었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가도 생소했고, 산문집도 즐기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서 나의 손은 사락사락 종이 넘기는 소리를 연주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책을 구입하면, 앞 표지의 뒷장에 구입날짜를 써 놓는다. 그리고 그것은 그날에 대해 그리 긴 작문을 하지 않아도 그때의 감정의 소리들을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꽤 유용한 일기장이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의 연주에 마음을 맡기고 있을 그즈음 나는 , 문장의 음율 하나하나가 다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마음이었다,
이석원의 독백은 나의 독백,
이석원의 방백은 또한 나의 방백,이라고 느끼는 이 묘한 카타르시스
나의 생각을 같은 의미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라고 느끼게 될 때면, 정말이지 하늘아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적어도 이석원만은 같이 있어 주지 않던가,
라며 그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크로스를 맺고 싶어지는 이 순간,
1. 나는 언제나 손을 잡았을 때 아무런 느낌이 없으면 그것으로 사랑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한번도 열정이 없어진 사랑을 이어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공공연히 나의 사랑의 유효기간은 3개월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기도 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라구?
덜컹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하이파이브 크로스!
사랑의 유효기간, 이라는 것에 골몰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마음 속 깊이 소통했던 사람들과 만났다 헤어지고 만났다 헤어지면서 그 과정 속에는 어떤 유효기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인연이 그거 밖에 안된다는 것과 같은 말은, 우리의 유효기간은 이거 밖에 안된다는 것,
그것은 문득 서울우유를 먹다가도 생각했다. 이제부터 제조일자와 유통기간을 모두 확인하세요,라는 친절한 광고 멘트를 떠올리니 다시 어디선가 사람과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제조일자와 유효기간을 모두 염두해두세요, 라는 말이 어디선가 친절하게 들리는 듯도 했다,
그 시간을 벗어나면 결국은, 부패되는 것일까, 신선함을 자랑했던 이 우유처럼,
누군가를 만날때 그 사람과의 소통가능한 제조일자와 원활한 소통이 지속가능한 유효기간을 확인하고 만남을 이어간다면, 우리의 시간은 부패되지 않고 기억의 보관함에서 신선하게 유지 될 수 있을까, 라고 입가에 우유의 흔적을 남긴채 생각한다.
물론, 어림없는 소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좋은 기억만 간직하길 바라는 나의 부질없는 이기심,
어쩌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두려워진 나약한 이기심, 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맨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의 손이 꽤 인상적이었다, 피아노를 쳤다고 했다, 때문인지 사물을 집는 손가락이 섬세하고 길었으며, 손바닥은 머리 위에서 내리는 눈이 한아름 담길 만큼 컸다, 내 손은 차가웠고 그래서 그의 손은 따뜻했다,
니 손을 잡아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
라고 말을 했던 것 같다, 유효기간이 지나 서서히 부패되는 과정의 독특한 냄새를 풍기려 할즈음, 나는 그렇게 말을 꺼냈다, 우유 속 응어리진 하얀 단백질처럼 어느새 마음속에 자리잡은 뭉텅거리던 그 말을 나는 목구멍에서 부드럽게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껍데기만 남았다,
내용물이 버려진 빈 각을 재활용 할 수 있을지는 이제, 각자의 몫으로 남았다,
영원히 부패되지 않을 그 무엇으로 담겼으면 좋겠다, 아니다, 오래도록 먹을 수 있는 콜라나 사이다가 담겼으면 좋겠다, 아니다, 니가 좋아하는 레몬에이드나 아메리카노가 담겼으면 좋겠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뿐이다,
2. 타인을 사귈 때에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어떤 동기에서 동력을 받아 행해지게 될까. 고통이란 매우 강력한 사랑의 촉매제로 작용한다. 자신을 평화롭게 하는 이에게는 결코 간절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고통으로 자극받게 되면 엄청난 정열을 품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고통은 지극한 이해를 부르기도 한다. 잘못은 상대방이 했는데 정작 나는 어떻게든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고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나 자신을 설득하고 나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상대로 인해 생겨난 분노의 감정이 상대방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판단을 바꿔놓는 이 아이러니.
이 문장 또한 역시, 그때의 나로 돌아가게 했다,
고통받기 때문에 이해하려는 것인지, 이해하려고 하기때문에 고통받는 것인지,
이 고리의 연속순환이 시작되면서, 나는 이해와 오해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걸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와 함께한 시간을 이해한 것일까 오해한 것일까,라고 물고 늘어지게 될쯤,
3. 연애란?
누군가의 필요의 일부가 되는 것
그러다가 경험의 일부가 되는 것
나중에는 결론의 일부가 되는 것
나중에는, 두서없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석원이 말하는 그 결론의 일부를, 두서없이,
이것은, 그저 그때의 나를 이해하기 위한 하릴없는 짓거리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말이다,
너나 나나 결국은, 보통의 존재니까,